윤용호 소설가
결국 나의 주선으로 A는 그 여자를 만나보게 되었다. 이후 한 달쯤 지난 뒤였다. A가 시무룩한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왜, 일이 잘 안 돼?”
이미 그녀와 몇 번 데이트를 가졌던 A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문젠데?”
내가 다그치자 녀석은 처량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의 손을 들어보였다.

“이 몽둥이 같은 손 때문이야. 어느 날 우린 자연스레 손을 잡게 되었는데, 우악스런 내 손바닥을 만져본 그녀가 깜짝 놀라지 뭔가.”

A는 그게 예전에 배구를 열심히 한 영광의 상처라고 대수롭지 않게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여자는 이상하게도 불안해하며 계속 긴장하는 눈치를 보였단다. 뿐만 아니라 그 뒤부터 그녀는 그를 만나는 걸 노골적으로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여자를 마음에 들어 했던 A는 일이 이렇게 되자 죽을 맛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굳게 다져먹고 그녀를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따졌단다. 앞으로 나를 만나지 않아도 좋으니 갑자기 자신을 피하려는 이유나 좀 알자고.

“그래, 대답을 들었어?”
나의 물음에 A가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의 표정은 처량하기가 그지없었다.

“내 손이 자기 남편 손과 꼭 닮았다는 거야. 남편한테 자주 폭행을 당했던 그녀로서는 무쇠 같은 손을 보면 본능적으로 공포심을 느낀대나 어쨌다나. 그래서 나를 볼 때마다 자꾸만 남편 손이 떠올라 싫다는 거였어.”
그 말을 듣자 나는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맞아, 그녀의 남편이 북한 최정예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했어.”
나는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그 부대가 얼마나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는지 잘 알고 있었다. 훈련의 기본은 주먹단련부터라고 했다.

그 과정은 이렇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나무 몸통을 맨손으로 때린다. 아침저녁으로 5000번을. 이렇게 하면 하루만 지나도 주먹은 쥐기조차 힘들 만큼 탱탱 붓는다. 하지만 훈련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날마다 이런 식의 단련이 이어진다. 그 다음에는 양철 깡통의 뚜껑을 따서 올려놓고 뾰족한 부분을 계속 타격한다. 그 충격의 결과로 부은 손이 피고름 칠갑이 되면 다시 소금더미에 주먹질을 해댄다. 마치 생선을 소금에 절여 부패를 막듯 상처 부위가 썩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이런 식의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손은 어느새 쇳덩이처럼 단단해지는 거지. 벽돌 정도는 비스킷처럼 여길 만큼 말이야.”
나는 A를 마주보며 폭풍군단의 손무기 단련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생각해봐, 그 무쇠 같은 손에 반복적으로 구타를 당했다면 얼마나 끔찍하고 힘들었겠어. 그녀도 귀순 첫째 원인을 바로 남편의 폭력이라고 꼽았잖아. 그러니 그녀가 너의 손을 보고 지레 공포심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르지.”

나의 말에 A는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동안 그러고 있던 A가 돌연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더니 뚜벅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나의 전 아내도 나한테 정말 공포감을 느꼈던 걸까?”

A의 갑작스런 물음에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네놈은 딱 한번밖에 손을 휘두르지 않았다며? 단 한번 맞았다고 모든 아내가 이혼을 감행한다면 우리나라 남자 홀아비 되지 않을 놈 하나도 없겠다. 그건 터무니없는 엄살이라고.”

“그래, 분명 그렇지? 그지?”
나의 두둔에 A는 비로소 멀겋게 웃었다. 그러고는 현역 시절 영광을 안겨주었던 손이 이제는 흉기가 되어버린 현실에 그는 넋이 나간 듯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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