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 이일주 교수

지난 10월 1일 북한 주민 11명이 소형 어선을 이용해서 동해상을 거쳐 남측으로 와서 탈북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북한에서 귀순해 온 주민들은 지난 9월 27일 고기잡이배를 가장해서 밤늦게 북한해안을 출항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니 5일간의 밤낮을 항해하여 우리 측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들이 귀순에 성공한 것은 배에 위성항법장치(GPS)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처음 가거나 잘 알지 못하는 길을 힘들이지 않고 쉽게 안내를 받아 찾아갈 수 있는 내비게이션의 주요 장치인 GPS가 이제는 북한 주민이 탈북할 때 도우미 역할까지 하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든다.

자동차에 주로 부착하여 시간과 연료를 절약하면서도 목적지를 쉽게 찾아 갈 수 있도록 하는 내비게이션은 이제 생활의 필수품이 될 정도로 요긴하게 쓰인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안내 버튼을 누르면 침착하면서도 밝고 친절한 목소리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안내를 해 준다.

중간에 목적지를 바꾸거나 휴게소에 들러 자동차의 시동을 껐다가 다시 출발하더라도 짜증을 내거나 귀찮다고 하지 않고 여전히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안내를 원하지 않으면 시끄럽게 하거나 운전을 방해하지 않는다. 혹시 안내를 하는 길을 벗어나면 얼마 앞에 가서 유턴하라고 하고, 그 안내도 무시하고 가면 경로를 다시 탐색하여 다른 길로 가도록 안내해 준다. 결코 화를 내거나 안내를 중단하지 않는다.

끝까지 참으면서 목적지까지 가도록 최선을 다한다. 목적지에 가서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는 것과 같이 안내 종료멘트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이와 같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다 보면 문득 자녀의 인생항로를 안내하는 부모들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알고 언제든지 친절하게 도와줘서 큰 힘을 얻게 하는 부모가 있는데 이들이 바로 내비게이션 부모라고 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 부모(navigation parents)는 결코 자녀에게 불필요한 요구를 하거나 과다한 기대를 하여 긴장하게 하지 않는다. 언제나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자녀 스스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성취해 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준다. 그렇지만 내비게이션은 간혹 오작동이 있다고도 한다.

고속도로에서 안내를 받아 가는데 갑자기 유턴하라는 멘트가 나와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는 사람도 있고, 서울 도심에서는 절벽 길로 직진하라는 안내가 나와 당황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부모 중에도 간혹 오작동하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자녀가 어려울 때는 제대로 도와주지 않으면서 실패하면 야단만 치는 부모도 있을 것이고, 부모의 말을 듣고 하는 일이 오히려 낭패를 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우리 주변에는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도 있다. 헬리콥터 부모란 언제나 자녀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자녀 곁을 맴돌면서 잔소리를 하는 부모를 뜻하는 신조어인데, 1991년 뉴스위크지에서 Ned Zeman이라는 사람이 처음 소개한 말이라고 한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의 학교까지 찾아가 자녀가 부탁하지도 않은 것을 교사에게 요구하여 자녀와 교사를 당황하게 하기도 하고, 자녀의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간섭을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심지어는 자녀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대학이나 학과 선택, 졸업 후 직장이나 배우자 선택까지도 모두 조종하고 싶어 한다. 이런 부모의 자녀는 늘 감시받는 느낌이 들어 불쾌하고, 부모가 또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항상 불안하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늘 부모의 눈치를 보면서 의존하게 된다. 이런 자녀는 청소년기에 가서도 자아정체감이 확립되지 않아 인생의 가치관이 혼미하게 될 수도 있다. 성인이 되어 결혼한 뒤에도 부모의 간섭으로 잘못하면 부부가 이혼할 수도 있다.

자녀를 위한 좋은 부모의 상(像)을 이야기 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헬리콥터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오작동하지 않는 정품 내비게이션 부모가 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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