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손 이야기 2(上)
[미니픽션] 손 이야기 2(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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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호 소설가
A는 내 친한 친구다.
A는 예전에 프로배구선수였다. 지금은 은퇴하여 모 대학 배구 감독을 맡고 있지만, 현역 시절에는 파워 있는 공격수로 상당히 이름을 날렸다. 특히 그는 스파이크를 양손으로 모두 때려낼 수 있는 ‘스위치 센터’여서 주목을 받았다.

언젠가 나는 녀석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만져보니 손바닥이 돌처럼 딱딱했기 때문이다.
“뭐야, 이건! 숫제 몽둥이 같잖아.”
“그래야 잘 때릴 것 아니냐.”

A가 웃으면서 한 대거리였다. 하긴 녀석의 말에 의하면 연습 스파이크 양이 하루 평균 500개가 넘는다고 했다. 그런 생활을 일상으로 해왔으니 손바닥이 무쇠솥뚜껑처럼 될 수밖에!

하지만 A는 어느 날 갑자기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예기치 않은 부상 때문이었다. 연습 도중 삐끗한 발목이 어이없게도 회복 불가능한 인대 손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스파이크나 블로킹을 무시로 해야 하는 공격수는 높은 점프가 생명인데, 발목 문제로 이 점프가 불가능해진 탓이었다.

그 바람에 A는 결혼한 지 1년밖에 안되는 아내와 결별까지 해야 했다. 불운한 은퇴로 실의에 빠진 그는 한때 술에 절어 지낸 적이 있었다. 그러자 행세께나 하는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이혼을 종용했던 것이다. 좋은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은 게 그한테는 오히려 독이 된 셈이었다.

A의 실수라면 취중에 딱 한번 아내에게 손찌검을 날린 게 전부였다. 이걸 처가 쪽에서는 꼬투리로 삼았다. 특히 그의 손위 처남과 처형이 앞장을 서 부추겼다. 싹수가 노랗다는 판단이 서면 아직 딸린 애가 없고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갈라서는 게 앞날에도 유리하다는 말로 동생 등을 떠밀었던 것이다. 물론 남편한테 한번 얻어맞았다고 줏대 없이 그네들 말을 순순히 따른 그의 아내한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혼은 A에게 또 하나의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 충격은 오히려 그의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새옹지마의 효과도 없지 않았다. 이후, 그는 마음을 다잡아 술을 끊고 후배를 양성하는 지도자의 길로 나섰으니까. 현재 그가 맡고 있는 배구 팀은 대학 리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아직 나이가 창창한데, 새로 가정을 꾸려야지.”
나는 A가 새 삶에 충실하자 홀아비로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워 은근히 재혼문제를 입에 올려보았다. 녀석이 혼자가 된 지도 벌써 3년이 지난 터였다.

“사실 옆구리가 시려서라도 마누라가 필요하긴 한데, 혹시 또 기가 센 친정붙이들을 만날까봐 지레 겁이 나.”
A의 반응으로 보건대 그도 아내의 필요성은 느끼나 전 아내의 식구들한테 당한 괴로움이 여태껏 악몽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예전에 처가 쪽한테서 당한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러자 별안간 내 머리에 뿅 하고 한 여자가 떠올랐다.

“하면, 아예 친정 식구가 없는 상대도 괜찮겠어?”
내 말에 A는 당장 관심을 보였다.
“어디, 고아 같은 여자라도 있어?”
A의 응수로 판단하면 녀석은 정말 피붙이가 전혀 없는 배우자를 진정으로 바라는 것 같았다.

“고아는 아니고…”
나는 ‘중앙합동심문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흔히 ‘대성공사’로 불리는 이곳은 탈북자들의 탈북 배경과 그 의도에 대해서 조사를 하는 기관이다. 1년 전쯤 조개잡이를 나왔던 북한의 한 동력선이 기계 고장을 일으켜 우리 쪽으로 넘어온 사건이 있었다. 이 낡은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모두 12명으로 여자 여덟에 남자 넷이었다. 그중에서 5명이 귀순의사를 밝혀 7명만 돌려보내고 나머지는 조사를 거쳐 대한민국 주민이 되었던 것이다.

“남은 사람은 이미 ‘새터민’ 적응교육도 마친 상태야.”
내가 소개하려는 여자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조사관으로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녀는 조신하고 진실한 데다가 학벌에 비해 머리가 총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도 매우 빨랐다.
“얼굴이 참하고 꽤 괜찮은 여자야. 너보다 두 살 아래니까 나이도 맞춤하고. 다만 이 여자도 한 번 결혼한 경험이 있어.”

구미가 솔솔 당기는지 A가 바로 물었다.
“왜 그녀는 돌아가지 않고 남은 거지?”
여자에 대한 조사기록은 아직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첫째 원인은 남편의 폭력이야. 결혼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그걸 여자 탓이라고 하며 남편이 자주 때렸나봐. 주사도 심하고. 두 번째는…”
거리낄 가족이 이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거였다. 그녀는 무남독녀였는데, 이태 전에 양친이 모두 돌아가셨단다.

세 번째는 역시 생활고였다. 그래도 먹고살 만하다면 또 모를까, 지금의 북한은 꼴이 말이 아니란다. 뭔가 희망이 있어야 집 생각이 날 텐데 기댈 언덕이 전혀 없다는 거다. 게다가 남한이 잘산다는 소문은 이미 암암리에 들은지라 이곳에서 새 삶을 시작해보려고 하는 것이 그녀의 잔류 배경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조사를 받을 당시 말투가 아주 조리 있고 논리적이었어. 시종일관 진솔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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