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최근 일본에서는 결혼식이 아닌 ‘이혼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혼식은 이미 2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지난 3월 대지진 이후 급증했다고 한다. 이혼을 결심한 부부는 일가친지가 참석한 가운데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결혼반지를 함께 망치로 부수는 의식을 치른다. 마치 결혼식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이혼식 뉴스를 듣고 나서 필자는 잠시 우리나라의 이혼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과거와 다르게 이혼이 흔해진 지 한참이다. 이혼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고, 각 부부 간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과 사정 또한 다르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의 경험과 시각에서 바라보는 이혼의 심리학적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고자 한다.

첫째, ‘징벌(punishment)’이다. 징벌이란 말 그대로 옳지 않은 일을 하거나 죄를 지은 데 대해서 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배우자의 부정 또는 외도를 경험했을 때 주로 취하게 되는 형태다. 감히 나를 두고서 다른 여성(또는 남성)과 바람을 피다니 용서할 수 없다는 심리다.

둘째, ‘취소(undoing)’다. 그동안의 결혼 생활을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의미가 크다. 이러한 결정은 대개 짧은 결혼 생활 끝에 이루어지곤 한다. 신혼여행을 갔더니 연애 시절 알았던 모습과 전혀 다른 말과 행동을 보였다고 하소연한다. 신혼여행지에서 서로 심하게 다투면서 상대방 집안의 비난마저 덧붙인 다음에는 영락없이 이혼 도장을 찍는다. 또한 결혼 후 1~2년을 지내보니까 결혼 전 꿈꾸고 기대했던 남편(또는 아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전혀 다른 모습의 배우자를 보게 되었다고들 불평한다. 그러니 무조건 이혼이다.

셋째, ‘탈출(escape)’이다. 흔히 악몽 같았느니 또는 지옥 같았다고 표현하는 결혼의 경우다. 많은 경우 학대하는 배우자가 배후에 있다. 또는 의처증이나 의부증이 심하거나 사사건건 간섭, 구속, 잔소리를 해대는 배우자에게 질린 나머지 이혼을 선택한다. 어떤 부인은 필자에게 상담 중 “저는 부부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습니다. 폭언도 듣고요. 처음에는 모멸감과 수치심이 들었는데, 이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삶의 목표입니다”라고 했다. 마침내 이혼에 성공한다. 기쁨도 잠시, 허탈감과 지나간 세월에 대한 탄식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 후유증에 시달린다. 이러한 경우 배우자에 대한 생각 자체를 회피한다. 상담 중에 과거 얘기가 나오면 갑자기 불안 반응을 보이면서 몸서리를 치거나 눈물을 흘린다.

넷째, ‘혐오(disgust)’다. 흔히 성격이 서로 안 맞아서 또는 생각과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등의 이유로 이혼하는 경우다. 서로 사랑할 때는 상대방의 행동이 다 곱게 보인다. 그러나 사랑이 식으면서 상대방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가령 옷을 옷장에 잘 넣지 않고 침대에 걸쳐 놓는 등의 사소한 습관을 배우자가 지적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지적을 나는 비난 내지는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제는 내 차례다. 상대방이 샤워를 한 다음 욕실 바닥에 항상 물이 흥건히 젖어 있는 것을 비난한다. 이쯤 되면 서로의 못마땅한 생활습관뿐 아니라 말투와 행동, 지출 내역 등으로까지 갈등 전선이 확대된다.

오랜 기간 서로 다투다 보면, 상대방을 싫어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혐오의 감정이 든다. 혐오의 대상과는 함께 살 수 없다. 그래서 이혼이다. 이혼의 심리적 이유들을 이와 같이 네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다.

더 많은 이유들이 분명히 있고,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잡다단하게 작용해서 이혼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혼을 충동적으로 결정하기도 하지만 대개 실제의 진행 과정에서 이혼을 철회하거나 또는 오히려 사이가 좋아지는 경우도 꽤 많이 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기에 이혼은 사실 사랑의 종말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랑의 종말은 누가 내리든 간에 서로에게 깊은 상처와 후유증을 안겨다 준다.

따라서 필자는 주장한다. 결혼을 신중하게 하세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말이다. 이혼을 하려거든 신중하게 심사숙고해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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