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사람에 대한 평가는 지위와 역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여 년의 언론사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일선 기자, 부장, 편집국장 등을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기자에서 시작해 편집국장까지 모두 거친 필자는 지위와 역할에 따라 필요로 하는 능력이 어떻게 다른지를 경험했다. 일선 기자는 순발력과 기동성이 요구됐고, 부장은 기자들의 기사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방향을 제시해야 했고, 편집국장은 전체적인 신문의 논조를 제시하고 왕성한 추진력과 기획력을 갖춰야 했다.

스포츠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본다. 선수, 감독, 프런트, 단장, 대표이사 등은 모두 제각기 맡은 역할과 지위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 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 선수는 부단히 자신의 실력을 연마해 자신의 가치를 올리고 팀에 기여해야 하고, 감독은 선수들의 실력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종합적인 판단과 안목으로 팀을 이끌어나가야 할 것이다. 선수단을 지원하고 효율적인 경영을 도모하는 프런트와 단장들은 비즈니스 마인드를 철저히 갖춰야 한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프로팀의 경우는 특히 경영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기 힘든 것도 아마도 맡은 바 역할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주말 심야영화로 브래드 피트 주연의 야구영화 ‘머니볼’을 봤다. 두 아들과 아내와 함께 분당 동네 인근의 극장에서다. 강의하는 학생들에게 ‘머니볼’을 보고 리뷰한 내용을 리포트로 제출하고 발표하라는 과제를 부여한 터여서 관심있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미 프로야구 오클랜드 어슬렉티스 빌리 빈 단장의 실화를 소재로 한 ‘머니볼’에서도 지위와 역할에 따라 사람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빌리 빈은 고교시절 최고의 유망주였다. 명문 뉴욕 메츠에 1라운드에 지명될 정도로 타격, 수비, 주루 플레이 등 모든 면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았다. 헛스윙으로 잦은 삼진을 당하며 타격에 자신감을 잃게 된 빌리 빈은 점차 잊혀가는 선수가 됐다. 프로선수로서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다.

선수로서 성공을 하지 못한 빌리 빈은 프런트로 전환해 몇 년간의 스카우트를 거치며 오클랜드 단장에 취임하면서 발상의 대전환을 하게 된다. 선수 때는 공수주 3박자를 갖춘 선수를 최고로 쳤던 빌리 빈은 통계학과 수학을 접목시킨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를 이용해 출루율과 장타율을 기준으로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방법으로 팀 운영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최고의 팀 뉴욕 양키스의 1년 예산에 3분의 1정도밖에 돈을 쓸 수 없는 가난한 구단이 기존 전략으로 맞섰다가는 패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었다. 빌리 빈으로서는 오클랜드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던 셈이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값비싼 선수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돈은 얼마 안 들지만 팀에 필요한 실속 있는 선수로 팀 구성을 바꾼 것이다.

그의 계획은 기존 프런트와 스카우트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안타와 홈런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고 운영하던 여러 스카우트와 일선 코칭스태프들은 그의 새로운 실험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반대하며 팀을 떠나기도 했다. 100m도 제대로 뛰지 못하는 100kg 이상의 거구도 뛰어난 선구안과 단타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선수로 선발할 정도였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빌리 빈 단장의 판단과 결정은 옳았다. 오클랜드팀은 2002년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20연승의 대기록을 세워 새로운 야구역사를 썼으며 4년연속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다혈질이고 괴팍하며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오지 않으면 거침없이 욕설도 퍼붓고 인사를 단행하는 빌리 빈 단장은 개인적인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수 때 올라운드의 실력을 갖추고도 성공하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을 떨치고 나왔던 것이 성공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단장으로서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투자해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된 틀을 깨고 가려져 있던 음지의 기록들을 면밀하게 분석해 새로운 선수 선발의 프레임을 만들었던 것이다.

‘머니볼’은 전통과 인습에 갇혀 있던 조직을 깨기 위해 리더가 고뇌와 결단을 행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최고 명문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1250만 달러(약 140억 원) 거액 스카우트비를 거절하고 오클랜드를 고수한 빌리 빈 단장의 마음은 영화 속에서 외동 딸이 통키타를 치며 불러주는 영화 주제가 ‘the show’ 가사 일부에 잘 나타나 있었다.

“하늘의 태양은 뜨거워요. 마치 큰 스포트라이트처럼. 사람들은 표지판을 따라가죠. 동시에 말이에요. 이건 우스운 일이에요. 아무도 모르죠. 그들이 그 쇼의 티켓을 가졌단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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