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우린 그가 어떤 요술을 부리고 있는지 이미 다 파악했습니다.” 나는 지그시 웃었다. “아니, 그런데도 왜 그냥 둬?” 내가 계속 웃음을 보이자 아버지는 더욱 혼란스런 모양이었다. 나는 쉬 대답을 않고 아버지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백발과 자글자글한 아버지의 주름살이 내 가슴에 짠하게 와 닿았다. 이 땅에 이민 온 뒤로 아버지는 마음 편하게 쉬어본 날이 도대체 며칠이나 될까? 오로지 가족의 생계와 안정, 그리고 자식 교육을 위하여 일만 하신 분이 아버지였다. 묵묵히 소처럼.

하지만 나는 아버지처럼 되기는 싫었다. 황소걸음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빨리 승부를 걸어 한밑천 잡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의 목표는 3천만 달러입니다. 이 액수만큼만 따면 사내는 더 이상 카지노 출입을 하지 않을 겁니다.”

“뭐? 그러면 이게….” 아버지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아버지도 사태를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오랜 동안 이방인 생활을 하다 보니 아버지도 눈치 하나는 남다른 분이니까.

“방금… 우리라고 했냐?” 아버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혼자 하기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만일 들키면….” 아버지는 아들이 벌인 이런 위험천만한 게임에 마음이 편할 까닭이 없을 텐데도 생각보다 담담했다.

“완벽한 공모니까 괜찮을 겁니다. 나를 포함한 우리 팀 5명과 게임장의 핏 보스와 딜러 3명, 그리고 게임을 하는 사내, 이렇게 10명이 똘똘 뭉쳤으니까요.”

“고객 감시 카메라를 장악한 팀과 게임장 실무자들과의 결합이라. 환상적이기는 하네. 아, 이제야 사내가 왜 바카라 게임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군. 조작된 카드를 한 슈만 사용하면 되니까. 신통술은 그 카드에 있었구먼.”

“이해가 빠르시네요. 핏 보스만 묵인하면 딜러가 ‘탄’ 카드를 바꿔치기하는 거야 아무 일도 아니거든요. 카메라가 그 장면을 잡아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렇다면 베팅 액수와 인원을 더 늘리고 출입 횟수도 많게 하면 목표액이 훨씬 증가하고 또 시간도 앞당길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는 하지 않은 거지?”

“그게 다 안전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저는 확률적으로 가장 뒤탈이 없고 성공적인 방법을 제 수학적 능력으로 계산해낸 거죠. 가령 베팅 금액과 게임 인원을 더 늘리면 그만큼 눈에 띄는 위험도가 높아지게 되어 있어요. 또한 출입이 너무 잦아도 주목을 받기가 십상이고요. 그래서 MIT 출신인 저가 필요했던 겁니다.”

“하면, 끝까지 성공할 것 같으냐?”

“하도록 해야죠. 기필코! 이것은 바로 저의 꿈이니까요.”

나는 단정적으로 말하며 의지를 드러내보였다. 아버지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이 떠오른 건 바로 이 때였다. 그 희미한 미소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어쩌면 아버지 또한 마음속 깊은 곳에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그래, 아버지는 다만 그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오신 것뿐이야.’

한발 더 나아가 비로소 나는 깨닫게 되었다, 카지노 털기란 일상을 개미처럼 사는 모든 사람들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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