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미국이 태평양으로 다시 돌아왔다. 중동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한 발이 묶였었던 미국이다. 그 한 발을 빼어 태평양에 첨벙 내디뎠다. 그로 인한 파장(波長)이 심대하다. 태평양 연안 국가치고 그 파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특히 중국 연안에 와 닿는 파고가 심상찮다.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되는 분위기다.

중국은 세계 G2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국력을 바탕으로 인접 아세안 지역과 아시아 태평양 연안에서 확실한 패권국의 지위를 추구해왔다. 중국이 이룩한 대국굴기(大國崛起)의 추동력은 개혁 개방이다. 그 개혁 개방의 원조 덩샤오핑(鄧小平)은 ‘은밀한 힘 기르기’를 강조했다. 그것이 이른바 ‘빛을 가리고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를 가진 그의 교시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한마디로 강대국이 될 때까지 말썽부리지 말고 몸조심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이 드러나듯 그들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 체제가 들어선 2002년부터의 대외정책 노선인 유소작위(有所作爲)에 따라서다. ‘일이 있는 곳에는 적극 개입해 의지를 관철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 같은 정책 노선에 따라 중국의 목소리는 갑자기 거칠어지고 높아졌으며 전방위적으로 충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위안화 절상 압력을 놓고 미국과 벌이는 승강이는 현재 진행형의 심각한 국제 현안이다. 미국은 제값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위안화 때문에 중국과의 교역에서 큰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무역 적자가 중국에 첨단 제품을 팔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 상품의 수출 경쟁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맞선다. 이렇게 중국은 초강대국인 미국의 맞수가 되어 밀리지 않으려 한다. 중국은 또한 막대한 재정 적자가 만들어내는 미국 국가부채에 대해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다. 중국이 미국의 채권을 사주지 않으면 미국의 재정이 파탄 날 정도다. 이 같은 사정으로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향유해온 미국 달러의 위상은 심하게 흔들리게 됐으며 중국은 이를 이용해 자국의 위안화를 달러를 몰아내고 세계 기축통화의 귀하신 자리에 올려놓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게 볼 때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짧은 시간에 강대국으로 일어선 중국의 눈부신 국력의 약진과 그에 바탕을 둔 힘 실린 발언권은 실로 금석지감(今昔之感)을 자아내는 일이다.

미국과 중국의 힘이 부딪치는 곳은 통화절상과 무역마찰에 그치지 않는다.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이 기어이 한판 붙고야 말 것처럼 긴장의 파고가 높아간다. 남중국해는 연간 54조 달러어치의 물동량이 지나가고 280억 배럴에서 최대 2130억 배럴의 석유와 3조 8천억 입방미터에 달하는 천연가스가 묻혀 있으며 어족자원이 풍부한 천혜의 국제수역이다. 이 바다를 베트남에서는 동해, 필리핀에서는 루손해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영해처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대만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나라들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복잡한 수역이다. 사실 남중국해의 수역 대부분은 대만을 제외한다면 중국에서보다 이들 나라에서 더 가깝다. 그럼에도 중국은 탐욕스럽게 남중국해 전체에 대해 자국의 핵심 이익이 걸린 지역이라며 이들 나라들과 갈등을 빚고 있으며 미국에 대해서는 여기에 끼어들지 말라고 으르렁거린다.

그렇지만 미국은 자유통행권의 확보를 내세워 끼어들었다. 미국의 미래는 아시아 태평양과 아세안의 시장과 바다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미국은 끼어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 바다를 몽땅 중국에 내어준다면 이 지역 여러 나라들은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마침 이 지역 국가들이 중국의 ‘유소작위’의 공격적인 태도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미국의 개입을 반기고 있으므로 미국으로서는 다행스럽고도 자연스럽게 개입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일본도 천연자원의 보고인 이 바다의 분쟁에 숟가락을 들고 군침을 흘리며 끼어들었다. 역시나 자유통행권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 그 명분이다. 어찌 황금알을 품은 이 바다를 힘 있는 나라들이 가만 놓아둘 것인가. 이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그들 강대국들 사이에 이권 나눠 먹기의 흥정이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급기야는 한판 붙는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어떻든 지금의 중국은 미국의 항모 전단이 안하무인으로 중국 연안 가까이를 누비고 다니거나 결정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수역을 나 홀로 지배하는 것을 어쩔 방법이 없어 가만두는 그런 허약한 나라가 아니다. 국력이 커지고 그에 따라 첨단 군사력도 기른 중국이다. 그에 걸맞은 세력과 국익의 팽창을 꾀하고 제 몫을 챙기려하는 것은 국제 역학의 관점에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들은 힘의 과시에 주저하지 않는다.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위해 한국의 영해인 서해에 미국 항모가 진입했을 때 그들은 어떠했던가. 마치 자기들 영해에 침범이라도 해온 것처럼 격하게 반응하고 육상과 해상에서 대응 실사격 군사훈련을 벌이며 요란을 떨지 않았던가. 그런가 하면 일본과 영유권을 빚는 센카쿠열도에는 빈번하게 함선을 보내 일본을 자극한다. 미국이 대만에 첨단 군사 장비를 판매하는 것도 극력 반대해 미국이 중국의 눈치를 살피는 형편이다. 일본에서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잇는 미일 동맹의 대 중국 해상 봉쇄선인 제1열도선(列島線)은 중국 해군에 의해 뚫린 지 오래다.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의 후진 중국은 적을 광활한 국토로 끌어들여 지치게 해 싸워 이기는 ‘인민전쟁전략’을 구사했었다. 지금은 그때의 후진 중국이 아니다. 봉쇄선을 뚫고 태평양으로 진출해 누비는 ‘적극 방어 전략’을 그들은 시행 중이다. 이것은 미국과 미일동맹에 대한 도전 도전이다. 한국과도 무관한 일은 아니다. 만약 팽창하는 중국과 미국 간에 새로운 게임 규칙이 평화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조만간 어디선가 한판 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 장소가 남중국해가 될 것인가. 하지만 그들은 굳이 샅바를 잡아보지 않고도 실력의 우열을 가릴 수 있을 것이므로 벼랑 끝에서 으르렁거리다가 상생(相生)의 흥정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강대국들의 흥정과 농간에 필설로는 헤아릴 수 없는 피해를 입은 나라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있었던 일본 중국 러시아에 의한 국권 농단과 일제의 식민지배, 미국과 소련이 책상머리에서 줄자로 쭉 그은 38선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국토분단 등이 그것 아닌가. 강대국은 자국에 이익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제 의지대로 관철한다. 힘에 의한 게임, 이것이 국제질서에서 강대국의 규칙이다. 한국의 국익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두 나라 미국 중국이 부딪치면서 일으키는 태평양의 격랑에 눈을 뗄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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