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북한은 해방 후 불행하게도 민주주의의 다원적 정치문화를 경험치 못한 채 이른바 인민민주주의란 낯선 정치체제를 도입했다. 조선조 500년의 왕조 질서, 그 후 일제의 폭압적 식민지 통치만을 겪다 급조된 공산 정권을 수립한 것이다. 남한은 그래도 4월 혁명에서부터 87 민중 항쟁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의 과정을 체험했다. 학생, 시민들은 반독재 민주화 과정을 통해 피를 흘리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를 체득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지원으로 탄생한 김일성 정권은 인민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대상으로만 삼았다
광주광역시가 북한 조선인민군 행진곡과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을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해 논란을 빚고 있다.정율성은 6.25전쟁 전후 중국에선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뽑혔고, 북한에선 영화로까지 제작된 인물이다. 1939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고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위문공연단을 조직해 전선에서 북한군 위문활동을 했다. 그가 작곡한 ‘조선인민국 행진가’는 남침 행진곡으로 쓰였으며, 전쟁 내내 북한군 사기를 북돋웠다.광주시는 동구 불로동 일대 878㎡
6.25 전쟁 포성이 멈춘 지 70년이 지났다. 남북한은 정전협정 체결일인 27일 각자의 방식으로 정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엔 참전국 정상들과 노병들을 초청해 고마움을 표했다. 노병들은 “참전은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결정”이라며 대한민국의 발전에 감격했다. 이날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선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트루먼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두 사람은 정전 직후 한·미 동맹을 맺고 대한민국 번영의 주춧돌이 됐다. 북한은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코로나19 이후 닫았던 국경을 열고 초청한 중국·러시
장순휘 정치학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무려 1129일간의 동족상잔이었으며, 북한 김일성의 전쟁범죄로 시작된 ‘남침전쟁’이었다.다가오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제70주년이 되는 날이다. 돌이켜보면 과연 정전협정이었나 할 정도로 ‘정전’에 회의를 품게한 것이 사실이다. 정전의 사전적 의미는 ‘교전 중 어떤 목적을 위해 한때 서로 교전을 중지함’이라고 정의돼 있으나 끊임없이 70년간 교전해왔기 때문에 유감스러운 단어다.정전협정문 ‘서언’에는 “최후적인 평화적
장순휘 정치학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과거 2020년 10월 23일 중국 시진핑의 6.25 전쟁 관련 망언이 있었다.시진핑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식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이라고 지칭하며, “중국인민지원군(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이 북조선의 요청을 받고 참전해 승리를 거뒀다”고 억지 주장했다. 당시 강경화 외교장관은 문재인 정권의 무대응(無對應)을 항의하는 질의에 “제반 사항을 고려한 판단”이라는 국격 없는 발언으로 어영부영 넘어간 적이 있었다.문재인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올해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난 지 430년이 되는 해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계속된 전쟁은 한·중·일이 싸운 ‘동아시아판 세계대전’이었다. 조선왕조는 1392년 건국 이래 큰 외침(外侵) 없이 200년간 태평 시대를 누렸다. 그런데 100년간의 전국(戰國)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4월 13일에 조선을 침략했다. 이는 해양세력의 대륙세력에 대한 최초의 도전이었다. 전쟁 초기엔 일본과 조선의 전쟁이었지만, 이윽고 명나라가 참전해 국제전쟁
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외교는 국가이익에 우선한 소리 없는 전쟁이다. 중국도 한국은 소위 가까이하기에는 먼 당신이다. 체제가 다르고 국민 수준, 경제발전 정도가 차이 난다.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완전히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경도된 국가다. 적이라고 표현만 안 했다. 중국과 유사시 전쟁의 상대 당사국임을 상정하고 있다. 특히 군사적으로는 물과 기름 같은 관계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은 6.25전쟁에서 중공군의 참전으로 통일의 기회를 상실했다.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의 승리로 미국과 싸워 이겼다
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영화의 문화 전도성을 뛰어넘는 장르는 없다. 음악이 있어 감성을 자극하고 격렬하게도 한다. 때로는 침묵적 사변적으로 바꾸어내는 상상 이상의 힘이 있다. 끝이 아니다. 극이 있어 연출을 통한 배우의 말과 행동이 주는 신선함, 자극성 등등이 활동사진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스크린의 배경과 각각의 장면들이 영화 팬들에게 주는 임팩트는 개개인에게 심층적으로 전착된다. 종합예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음악, 미술, 극, 배경 등 모든 것이 영화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할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휩쓸면서 미국문화 전파
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오는 8월 공영방송 KBS는 11명 이사 선임이 있을 예정이다. KBS 구성원은 ‘공정성’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실제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한다. 이들은 이사 구성에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여야가 동수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가능하면 지역 대표성까지 포함시킨다면 이사 구성에서 ‘공정성’ 논란이 적게 된다. 이사 구성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지금까지 정파성의 논란은 일상화됐고, 정권의 나팔수, 부역자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7월 1일 KBS는 수신료 52% 인상(월 2500원→3800원)이라는
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중국의 국가주의는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復興)이라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오늘도 진군한다. 해괴망측(駭怪罔測)한 국가주의는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말로 포장된다. 도대체 이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인지 자본주의 국가인지 명확하지 않다. 등소평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그들의 본심을 드러내고 있다. 일체의 논쟁을 단번에 정리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이 말은 현재 중국의 지도자들이, 그리고 인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한 예측이 가능하다.다소 쳐지면서도 미국에 맞서는 힘의
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지난 23일 중국관영 CCTV ‘신원리앤보’라는 매일 진행되는 정규뉴스에서 1950~2020이 쓰여진 배경을 삼아 연설하는 시진핑의 모습이 등장했다. 이 뉴스는 한국의 9시 뉴스 같은 것이다. 중국인들이 대부분 시청을 많이 하도록 매일 밤 중국시간 7시에 전국에 방송된다.각 지방 방송들도 그대로 받아 송출한다. 이 시간대에 TV를 보는 경우 다른 프로그램들은 많지 않기에 반 강제적으로 시청하게 된다. 시진핑을 중심으로 주석단에 7명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다 참석했다. 항미원조 70주년을 경축하는 연설이
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북한의 평양에 가면 항미원조(抗美援朝) 기념탑이 있다. 평양에서의 위치가 좋아 전망도 괜찮고 누구나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이다. 북한인뿐만 아니라 외국관광객들이 북한 여행할 때 단골로 들르는 명소이다. 당연히 중국인들도 북한 관광 상품을 사서 관광시 안내받는 필수 코스가 됐다. 그곳에 방문하면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기 선조들이 북한을 도와 이렇게 생존시켜 지금의 깨끗한 평양을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북한과 연대해 미국과 전쟁을 치러 승리했구나 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상징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지난 주 미국 대통령 최초로 북한 땅을 밟은 트럼프의 ‘영광’ 뒤에서 들려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비극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의 동결이라는 ‘참상’의 무대 뒤에서 재선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동결’이라면 이건 완전히 다른 말이다. 즉 단지 체제보장을 넘어 미국과 북한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요, 이는 한반도의 영구분단을 선포하는 대사건이다. 현재도 미국과 북한의 후견국가 중국은 심각한 무역전쟁을 진행 중이다. 이번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밑바닥엔
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과 중국은 ‘혈맹’이라고 곧잘 말하지만 진작 양 정상외교는 동맹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과거 마오쩌둥 주석은 1976년 사망할 때까지 단 한 번도 평양을 방문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아들을 ‘조선전쟁’에 파견해 희생시켰지만 그 희생의 원인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평북 대유동광산에 자리 잡고 있던 중공군 사령부의 팽더화이 사령관의 러시아어 통역으로 참전했던 마오쩌둥의 아들 모안영은 야간에 소등하고 갱도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김웅 조중사령부 북한 측 부사령관이 보내준 계란 8알을 몰래 구워
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지난 70여년 동안 북한에 우방인 중국이 우리에게는 적대국 내지 경쟁국가였다. 1950년 한국전쟁 시 우리는 통일을 눈앞에 두고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그 역사적 순간을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 것인가? 북한의 비핵화라는 역사적 전환기에 중국이 커다란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북한은 중국의 ‘안보완충지대’이다보니 자신들의 앞마당이 시끄러운 것을 참지 못하는 중국 때문에 과연 이번에도 어떤 장벽이 될지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비핵화를 위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최상현 주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체계 배치 결정에 그것을 반대하던 중국이 부리는 심통과 몽니는 세계적으로 그들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부추기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라 봐진다. 그들은 유엔 안보리에서 유엔이 금지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에 대한 규탄결의안이 채택되려는 것을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불만으로 무산시켰다. 이는 유엔에서 그들도 동의해 통과한 대북(對北) 제재안을 스스로 거스르는 자가당착이며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막중한 소임을 방기한 것이 된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북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
최상현 주필 강국들의 행동은 법에 앞서는 주먹과 같이 국제법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중국이 그 넓은 바다 거의 전부를 자기들 영해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는 해저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묻혀있다. 동시에 세계 상업 물류의 3분의 1 가량이 그 바다를 통해 이루어진다. 쉽게 말해 세계 여러 나라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그 바다를 자유스럽게 이용하지 못한다면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중국 일본도 그러하며 미국 역시 얼마간 그러하다. 이래서 이 바다는 역사상 가장 복잡한 영해분쟁으로 들끓는다.중국은
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해마다 우리는 6월이 오면 처절한 6.25 한국전쟁을 상기하며 당시 통일의 위업을 이루지 못한 한을 달래곤 한다. 바로 중공군 때문이었다. 만약 중국 인민해방군의 참전이 없었다면 우리 국군과 미군 및 연합군은 남침의 도발자 김일성을 북한 땅에서 몰아내고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한반도의 통일을 이룩했을 것이다.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이 추켜든 구호가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 즉 미국에 항거하고 북한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오늘날 이 구호가 ‘항한원조’로 바뀐 것은 아닌지, 최근 북한이 서해 NNL부근 어
최상현 주필 “독도는 우리 땅인데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하면서 독도에서 훈련하려고 하면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해요?” “쏴버려야 하지. 안 쏘면 대통령이 문제 있어요.” 어떤 신부가 이른바 시국미사라는 자리의 강론에서 내뱉은 자문자답이다. 말인 즉은 참 속이 시원하다. ‘쏴 버려서’ 일본군이 순순히 물러가고 다시는 독도를 넘보지 못하게 된다고만 할 것 같으면 아닌 게 아니라 쏘아버리면 시원할 것 같다. 성직(聖職)에 종사하는 신부의 입에서 의외로 가볍게 나온 말 같긴 하지만 그도 세속의 북새통을 사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쌀밥에 김치
장순휘 한국호국문화선양 협회 사무총장 최근 심각한 갈등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중국과 일본과의 댜오위다오섬(센카쿠섬) 영토분쟁에서 보여주는 중국 군사력의 시위양상은 결코 단순한 무력시위가 아니라는 것을 역사 속에서 감지할 수 있다.그 역사적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다는 치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facts)이다. 13세기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려고 출정했던 3차례 원정에서 실패했었고, 16세기 임진왜란도 결과론적으로 강화를 요청한 명나라를 보는 관점에서 패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