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독도는 우리 땅인데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하면서 독도에서 훈련하려고 하면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해요?” “쏴버려야 하지. 안 쏘면 대통령이 문제 있어요.” 어떤 신부가 이른바 시국미사라는 자리의 강론에서 내뱉은 자문자답이다. 말인 즉은 참 속이 시원하다. ‘쏴 버려서’ 일본군이 순순히 물러가고 다시는 독도를 넘보지 못하게 된다고만 할 것 같으면 아닌 게 아니라 쏘아버리면 시원할 것 같다.

성직(聖職)에 종사하는 신부의 입에서 의외로 가볍게 나온 말 같긴 하지만 그도 세속의 북새통을 사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쌀밥에 김치 된장 고추장을 먹고사는 똑같은 한국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의 말은 어쩔 수 없는 그 같은 숙명적인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것은 팔이 반대로 젖혀지지 않고 안으로 굽혀지는 이치와 같은 인지상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의 뜨거운 조국애도 엿보인다. 세속의 상식과 논리에만 매달리는 입장이 아님에도 세속인들과 정서를 교감하고 있는 것은 그의 인간애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흠잡을 데가 별반 없다.

그런데 그의 그 다음 말은 성직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관점과 여망에 비추어 적잖이 아쉽고 안타깝다. “NLL(북방한계선)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해야겠어요? 북한에서 쏴야죠. 그것이 연평도 포격이에요.” 참으로 기가 막힌다. 어떻게 이런 말이 태연히 나올 수 있나. 더구나 성직자는 사실이 그렇기도 하지만 국민의 정신적, 영적 지도자라는 일반의 인식을 피해가기 어렵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이런 얼토당토않은 말이 나왔으니 숱한 국민이 입이 벌어지지 않는 충격을 받았을 것은 자명하다.

국민은 싸움질만 하는 정치인들을 걱정한 지 오래다. 이제는 성직자들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해야 하게 생겼다. 종교는 세속인의 영적 안식처이자 정신적 의탁처인데 그마저도 믿고 기댈 수 있는 곳이 되지 못한다면 이는 걱정 정도가 아니라 국민의 슬픔을 깊게 하는 일이다. 성직자는 하늘의 일, 땅의 일을 잘 구분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존경받는 성직자라면 하늘의 일, 땅의 일을 잘 구분하는 명철(明哲)로 땅의 일에 대해 말하려거든 하늘과 통하는 이치와 사리로 진실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성직자를 바라보는 국민의 관점이며 기대이고 여망이라고 믿는다.

NLL이 남과 북의 경계선으로서 갖는 정당성을 부인하는 극히 일부의 잘못된 시각은 북이 기습적으로 쳐내려온 남침(南侵) 6.25 한국전쟁을 북침(北侵)이라고 우기는 발상과 궤를 같이 한다. 그들은 ‘UN군 사령관이 임의대로 해상에 그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효력을 갖는 경계선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소위 ‘항미원조(抗美援助)’ 참전군인 중국의 인민해방군 사령관 ‘팽 더 화이(彭德懷)’가 NLL을 그었어야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말인가.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가 북의 수중에 떨어졌어야 한단 말인가. 어떤 형태로든 합의 없이 어느 일방의 마음대로 경계선을 그을 수도 없었을 것이지만 어떻든 UN군 사령관이 유효한 경계선을 그어 저 많은 크고 작은 전략적 요충점에 있는 섬들이 우리 수중에 있게 된 것은 다행이 아닌가?

한미 군사훈련을 시비하는 것은 훈련과 관련한 선후의 실체적 사실(Fact)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나타낸다. 북의 호전성을 드러내는 도발이 선행되지 않았거나 선행되지 않는데도 과도하게 군사훈련이 이루어진다면 시비거리가 될 수 있다. 핵을 가진 저들의 도발성은 소련 중국도 우려하고 있는 상황 아니었는가. 저들의 도발적 군사 동향에 뒤따라 우리가 움직였으며 움직인다고 봐야 진실에 가깝지 우리의 군사적 동향이 저들의 도발적 대응을 부르고 긴장을 조성한다고 하면 세계 어느 곳, 어느 사람에 대고 말해보아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서처럼 얻어맞은 뒤에서야 사후약방문(死後藥房文) 격으로 이루어진 서해상의 한미 군사훈련을 북이 쏴 버려야 할 대상으로 얘기한다면 이는 심각한 방향착오다. 뿐만 아니라 북에 비하면 가히 낙원이라 해야 할 이 땅에 몸은 살면서 정신적 좌표(座標)는 엉뚱한 곳에 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의 정신적 고향이 북인가 남인가를 알 수가 없다.

연평도 포격 도발을 정당한 짓이라고 보는가? 연평도 주민과 연평도 주둔 군인들의 죽음과 섬이 불타는 광경을 못 보았는가? 전쟁이 장난인가? 천안함 수몰 장병 유족들의 울부짖음을 못 보았는가? 국제적인 전문가를 동원한 과학적인 조사로 밝혀낸 북한의 폭침 소행을 아직도 의심하는가? 불필요한 의심은 죄악 아닌가? 왜 그래야 하는가? 이 부정확하고 불량한 지식의 연원(淵源)은 도대체 어디인가? 북한의 민생고와 인권 유린, 강제 수용소, 세계의 골칫거리인 핵개발, 권력 세습, 무력 도발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왜 입도 뻥긋 못하는가?

성직자의 한 마디는 신도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인 영향력과 파급력이 크다. 부정확한 말을 해 평지풍파를 일으켰거든 뒤늦게라도 바로잡아 거두어들이는 것이 옳다. 그것은 하늘에도 땅에도 결코 용서 못 받을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종교가 세속의 일에 지나치게 깊이 뛰어 들어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하면 세속에 오염돼 간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게 되면 존경을 잃기 쉽다. 더군다나 성직자의 말이 부정확한 것이거나 소수의 편향된 시각을 반영할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국민에게 널리 물어보아라. 일각의 침소봉대와 달리 민주주의 쇠퇴를 걱정하는 국민이 많은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 현장과 사회 각 분야의 불법과 ‘떼 법’에 진저리를 치며 걱정하는 국민이 대다수 아닌가. 야당에서마저 대선불복을 선언한다거나 대통령의 퇴진을 노골적으로 외치는 것에는 국민 여론에 비추어 엄두를 못내는 판인데 성직자들이 앞장서 ‘대통령은 퇴진하라’고 하는 것은 왜 그러는 것인가? 지금은 유신시대도 군사독재 시대도 아닌데 국내외 예민한 과제들이 산적한 상황에서 누구 좋으라고 정치 사회 갈등을 선봉에서 증폭하려 하는가? 국민에게 다시 물어보아라. 성직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 문제로 행동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국민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는지를 알아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은 정치 사회 갈등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이런 때에 덩달아 갈등 조장자로 나서기보다는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 아닌가. 그런 일을 성직자들이 해주면 안 되는 것이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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