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강국들의 행동은 법에 앞서는 주먹과 같이 국제법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특징을 갖는다. 중국이 그 넓은 바다 거의 전부를 자기들 영해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는 해저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묻혀있다. 동시에 세계 상업 물류의 3분의 1 가량이 그 바다를 통해 이루어진다. 쉽게 말해 세계 여러 나라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도 그 바다를 자유스럽게 이용하지 못한다면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중국 일본도 그러하며 미국 역시 얼마간 그러하다. 이래서 이 바다는 역사상 가장 복잡한 영해분쟁으로 들끓는다.

중국은 이른바 자기들 맘대로 해괴한 남해 구단선(九段線)이라는 것을 그어 그 선 안에 들어오는 바다는 모조리 자기들 영해라 주장해왔다. 그 넓이가 350만 평방㎞에 달하는 남중국해의 거의 90%다. 구단선은 1947년 장제스(嶈介石) 국민당 정부가 그은 11단선이 원조다. 거기서 1953년 마오쩌둥(毛澤東)의 중화인민공화국 손에 의해 하이난도(海南島)와 베트남 사이의 두 개 선이 삭제돼 9단선이 됐다. 이 구단선은 베트남과 필리핀의 바로 코앞을 스치듯 그어졌다. 그렇게 남쪽으로 쭉 뻗어 내려가 종국에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영해에 닿아있다. 

이렇게 이웃나라들의 주장과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그어 놓은 영해 표시선이 탈이 안 붙을 리가 없다. 이 구단선이 살갗을 스치며 지나가는 모든 나라가 중국과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으며 심지어 타이완까지도 여기에 끼어있다. 이같이 복잡한 상황이지만 중국은 오불관언(吾不關焉), 법이 아니라 힘으로 이 바다에 대한 지배권을 굳혀가려 한다. 만약 태평양 국가임을 자처하고 태평양으로 외교 안보의 축을 옮긴(Pivot to Asia) 미국의 간섭이 없었다면 저 바다는 아마 벌써 아나콘다(anaconda)가 먹이를 삼키듯 조용히 중국의 입속으로 삼켜졌을지 모른다. 그 같은 짐작이 가능한 것은 미국의 간섭이 그들을 여간 귀찮게 하고 신경 쓰이게 한 것이 아님에도 집요하게 그 바다의 산호초 섬들을 인공섬으로 탈바꿈시키고 군사기지화 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등대도 설치해 최근에 가동에 들어갔다. 

미국의 첨단 정찰기는 상시 남중국해를 감시해왔다. 동시에 중국의 ‘기도’를 견제하며 항행의 자유를 확보한다는 구실로 폭격기와 항모 구축함 등을 보내 중국을 시험해오고 있다. 이 같은 해상 공중 전력은 얼마든지 레이더나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미-중 사이에 벌어지는 군사적 신경전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바다 밑에서도 은밀한 신경전은 뜨겁게 펼쳐진다. 어쩌면 핵폭탄까지도 적재했을 핵잠수함과 무인 잠수정, 무인 로봇들이 서로 쫓고 쫓기며 상대의 동정을 정탐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핵잠수함의 전력이 가공할 만하다는 것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핵잠수함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하는 데 실패해 그것이 불쑥 어느 나라 해군 기지에선가 괴물 같은 거대한 몸체를 드러낸 뒤에서야 그 존재의 암약(暗躍)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야말로 간담이 서늘해질 일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핵잠수함은 가끔은 한국의 부산항에도 나타나고 어떤 때는 일본이나 호주 인도양에서도 불쑥 떠오른다. 중국이 인공위성이나 여타의 그들 정찰 자산들을 통해 이들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면 그때마다 그들은 마음이 덜컹 내려않고 까무러치게 놀라는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떻든 이 같은 미국의 간섭과 치열한 견제에도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가 자신들의 핵심 국익에 관한 사안이라며 조금도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한국전쟁 때 그들의 인민해방군을 한반도에 파병한 소위 ‘항미원조(抗美援助)’ 전쟁을 들먹이며 미국과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는 지경이다. 굳이 샅바를 잡아보지 않아도 상대의 실력을 꿰뚫어보는 강대국들끼리의 전쟁이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지금 상황이 결코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만을 허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명백히 미국과 중국의 호흡은 거칠어지고 남중국해는 두 강대국의 험악한 조우(遭遇)로 뜨거워져 간다.

급기야 중국에 자신들이 점유하던 섬을 빼앗겼던 필리핀의 제소로 진행된 국제 재판에서 중국은 완패했다. 헤이그국제법정은 ‘남해구단선 내 수역과 자원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권리는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또한 ‘중국은 필리핀의 전통적 어장에서 그들의 조업을 방해하고 원유와 가스전을 개발하는 등 필리핀의 영토주권을 침해했다’면서 ‘중국이 인공섬을 조성한 암초들도 모두 영해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가질 수 없는 해양 지형’이라고 했다. 이 재판은 2013년 1월 필리핀이 중국의 일방적 영유권 주장이 근거 없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며 헤이그국제법정에 신청해 이루어졌었지만 중국은 이미 자신들에 불리하게 재판 결과가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최근 남중국해에서 해군 함정과 잠수함 폭격기 등을 동원해 사상 최대 규모의 실전훈련을 벌인 것이 그 근거다. 이는 말하자면 재판결과에 상관없이 남중국해를 실력으로 지배하겠다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 되며 그 같은 불리한 재판결과에 불복하겠다는 것을 사전에 예고한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재판 결과가 나오자마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예상대로 즉시 이 같은 재판결과를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나섰다. 그는 말하기를 ‘남중국해 도서는 예로부터 중국의 영토였으며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토주권과 해양 주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중재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판결이 최종적이고 중국과 필리핀 양쪽 모두에 구속력이 있는 것’이라며 ‘판결내용을 준수하고 도발적 언급이나 행동을 피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래서 남중국해 문제는 헤이그국제법정의 판결이후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남중국해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중국의 실력 지배가 강화될 것이 빤하고 국제 경찰 미국은 간섭할 근거를 얻어 더욱 적극적으로 중국의 기도를 저지하려 할 것이 자명하다. 이런 사태를 우리가 방관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생명선이기도 한 남중국해의 격랑(激浪) 밖에 우리가 서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않게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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