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북한은 해방 후 불행하게도 민주주의의 다원적 정치문화를 경험치 못한 채 이른바 인민민주주의란 낯선 정치체제를 도입했다. 조선조 500년의 왕조 질서, 그 후 일제의 폭압적 식민지 통치만을 겪다 급조된 공산 정권을 수립한 것이다. 남한은 그래도 4월 혁명에서부터 87 민중 항쟁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의 과정을 체험했다. 학생, 시민들은 반독재 민주화 과정을 통해 피를 흘리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를 체득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지원으로 탄생한 김일성 정권은 인민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대상으로만 삼았다. 김일성은 자신의 항일 빨치산 경력을 정권 쟁취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공산 정권 수립 초반부터 김일성은 반외세 자주화의 기치로 주체사상을 통치 이데올로기화했다. 김일성의 항일운동 경력은 백두 혈통으로 미화돼 세습 기제로 활용되며 오늘에 이르렀다. 북한에 중국의 마오쩌둥이나 베트남의 호찌민 정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습 체제가 정착된 배경이다.

북한식 세습 체제가 착근되는 데는 중소 국경의 지정학적 위치도 한몫했다. 소련군 장교 출신 김일성은 북한 공산 정권 수립 과정에서 스탈린의 막대한 도움을 받았다. 소련이 초기 김일성 정권 탄생의 아버지 역할을 했다면 중국은 6.25전쟁 시 어머니 역할을 했다. 6.25전쟁 시 중국의 ‘항미원조’는 북한을 지켜준 최후의 토대가 됐다. 강 하나가 경계인 대국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도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의 핵이나 인권 문제에 관한 대북 제재에서 안보리 거부권을 통해 북한을 옹호하고 있다. 역사에서 가정법이 성립되지 않지만 장제스가 집권했더라면 북한 공산 정권은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북한 정권 수립 후 경제적·외교적 위기가 역설적으로 북한식 세습 통치를 가능케 했다. 북한은 정권 수립 초반 공업적 토대와 사회주의식 동원 체제의 장점을 살려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사실 1974년 이전까지만 해도 북한 경제는 남한을 앞질렀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남북 간 1인당 국민총생산(GNP) 규모는 40대 1의 격차로 벌어져 있다. 북한의 경제적 위기는 ‘고난의 행군’에서 보듯이 수많은 주민을 아사시켰고, 주민들의 내부적 불만은 탈북 사태로 이어졌다.

북한에서 4대 세습자로 등장한 김정은 총비서의 딸 김주애를 지칭하는 칭호가 기존 ‘존귀하신 자제분’에서 ‘조선의 샛별’로 바뀌면서 북한 내부적으로 우상화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후계자 임명 과정으로 본다. ‘조선의 샛별 여장군’ 칭호는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의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열린 기념강연회에서 등장했다. 지난달 2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당 조직지도부는 지난 23일 평양시 당,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간부 대상으로 ‘만리경 1호’ 성공 기념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에서는 “최고존엄의 담력으로 적대 세력들의 군사적 기도를 상시 장악하는 정찰위성이 우주에 배치돼 조선에 우주강국 시대가 열렸다”라며 “우주강국 시대의 미래는 ‘조선의 샛별’ 여장군에 의해 앞으로 더 빛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선의 샛별’은 김일성 북한 주석의 초기 혁명 활동을 선전할 때 사용되던 칭호다. 김 총비서도 어린 시절 북한 내부에서 ‘샛별장군’으로 불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주애는 지난해 11월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장에 김 총비서와 함께 등장했다. 당시에는 ‘사랑하는 자제분’으로 지칭됐으나, 이후 지난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건군절) 75주년을 기념한 연회에서는 ‘존귀하신 자제분’으로 호칭이 격상됐다. 김 위원장의 경우에도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이 악화했던 2009년 우상화신격화 작업이 시작됐다. 김정은의 등장 과정이 가파른 데로부터 북한이 약간의 혼란을 겪은 교훈을 바탕으로 4대 세습은 일찌감치 토대를 닦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초 24세의 김정은에게 ‘김대장’이라는 칭호를 주고 갑자기 ‘발걸음’이라는 노래를 전국적으로 부르게 강요하면서 우상화, 신격화가 시작됐다. 특히 10대의 김정은 딸을 위성 발사 성공과 결부시켜 우상화 신격화를 시작한 것이 뉴패러다임으로 세습정치에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 인민들이 제아무리 순진해도 4대 세습까지 용인할 양들이 아니란 사실을 김정은과 노동당은 알아야 할 것이다. 4대 세습은 곧 ‘死代세습’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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