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홍수영-유영선 기자]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이사·발행인이 사계절 중 하나인 ‘봄’을 빗대어 “봄 같지 않지만 봄은 분명히 왔다”며 모든 생명이 새롭게 돋아나는 다른 차원의 시대가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추운 겨울을 이기고 핀 목련화와 인동초(忍冬草) 같이 참 생명의 봄을 알리는 ‘한 사람’이 있다”고 강조했다.올해로 창간 15주년을 맞은 천지일보는 12일 오후 2시~5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봄(春)-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열었다.이 발행인은 이번 특강의 주제인 ‘봄’의 형이상학적 의미에
흔히들 말한다. 역사는 밤에 일어난다고, 또는 산에서 시작해서 산에서 끝이 난다고 말이다. 이 같은 말이 괜히 있는 것일까. 주지해야 할 것은 구전돼 오던 모든 이야기는 아무 때에나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인들이나 각 종교의 경서나 인류 또는 민족마다 전해온 구전들은 한때를 만나고 당했을 때 그때 그 시대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해당된다는 점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를 보다 정확히 인식시켜 주는 경서의 한 구절이 있으니, 범사엔 목적이 있고, 기한이 있고, 목적을 이룰 때가 있다고 한 바로 그것이다.필자는 가끔 전국에
소(牛), ‘소’하면 일을 떠오르게 하고 나아가 일꾼을 연상시키는 가축(家畜) 즉 육축(六畜: 소, 말, 개, 돼지, 양, 닭) 중 하나다.이렇게 접근하다 보니 우리가 말하는 소는 농부(주인)의 손에 이끌려 ‘밭 가는 소’가 아닌 ‘소같이 일하는 사람’을 이면에 두고 있었으니, 그 소는 소가 아닌 소같이 일하는 충직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이 대목에서 놓쳐선 안 될 깨달음이 있다. 밭 가는 소가 스스로 하는 게 아니고 주인(농부)에 의해 부려지듯이, 소 같은 사람 역시 누군가(주인, 농부)에 의해 부려진다는 사실이다.그래서인지 소는
만물(萬物)은 거저 있는 것일까. 만물을 지은 이가 있으니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만물을 지으신 이는 조물주(造物主)가 되고, 지음 받은 만물은 피조물(被造物)이 된다.지음 받은 피조물 즉, 만물은 두 가지가 있으니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즉, 눈에 보이는 것은 육의 세계 곧 육계(肉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영의 세계 곧 영계(靈界)라 일컫는다.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또한 신(영)의 영역에 있으니 하나님 역시 영(靈)이시다.주지하다시피 영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만질 수도, 냄새도 없으나 분명한 것은 존
비산비야(非山非野)라 했던가. 그렇다면 저 산과 들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인산인해(人山人海)라 했으니 눈에 보이는 만물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만물을 가리키고 있으니 곧 사람이며, 이 사람들은 약속으로 된 사람들이다.이들은 현세(現世)가 아닌 내세(來世) 곧 오는 세상의 주인공들이다.온 만물이 기대하고 고대해온 바는 바로 이들의 출현이며, 내세를 약속으로 기록해 놓은 종교의 경서 또한 매일반이다.내세는 왜 이들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지금까지 온 인류가 살아온 세상 곧 현세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이라 할까.그것은
지금의 때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한 뜻을 세우시고 긴긴 세월 일해오시다가 그야말로 이제 목적한바 한 뜻을 이루는 때이다.이를 일컬어 성경에선 범사엔 목적이 있고 기한이 있고 정한 때(時)가 있다고 미리 알려왔다. 뿐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은 목적한 바를 행하여 이룰 때가 되면 반드시 한 사람을 택하게 되니 곧 천택지인이며 하나님이 택한 종이며 약속한 목자다.하나님이 택한 목자를 통해 한 뜻을 이루기 위해선 먼저 선행돼야 할 게 있다.그것은 바로 전문용어로 ‘계시(啓示)’다. 계시란 ‘열어서 보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
지구촌은 지금 아비규환 그 자체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전쟁과 평화를 생각해 본다. 전쟁과 평화, 이 두 단어는 극과 극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러시아의 레오 톨스토이(1869~1877)는 그의 걸작 중 ‘전쟁과 평화(나폴레옹 전쟁 중의 러시아 상황을 그리고 있는 작품)’라는 소설을 출간하므로 세계적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전쟁과 평화, 어쩌면 이 두 단어는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중대하고 가치 있는 숙제가 아닐까 싶다.인류가 걸어온 길은 바로 이 두 단어와 함께해왔다면 틀림없을 게다.이 두 단어는 다르게 ‘삶과 죽음’이라는 단어
지구촌 많은 사람(신앙인 또는 종교인)들이 ‘종교(宗敎)’를 말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종교를 아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기독교 경서인 계시록엔 천상천하 그 누구도 아는 이가 없다고까지 못 박고 있을 정도다.그 이유는 성경의 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은 성경을 알 수 있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도록 기록했기 때문이다.절대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구약과 신약을 일컬어 ‘봉한 책’이라 한 이것이다. 봉한 책이란 글(문자)은 읽을 수 있겠지만 그 글 속의 참뜻(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생각과 사연)은 알고 깨닫지 못하도록 기록돼 있다는
[천지일보·천지TV=김미라 기자] ※본 영상은 2018년 5월에 촬영한 영상으로 천지시론에 게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됐습니다.우리나라는 참으로 아름답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라에 태어나 살고 있는지는 눈으로, 발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실감이 나지 않을 것이다. 지역들이 저마다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으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움!그곳에서 나서 터를 일구며 사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그 아름다움과 함께 늘 같이해 온 이야기가 있으니 그 또한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는 먼 훗날을 기약한 소망 섞
세상에는 표면과 이면이 있고, 겉과 속이 있고, 거짓과 참이 있다. 중요한 것은 전자에 속해 살아가야 하는 때가 있고, 후자를 깨달아 살아가야 하는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정해 놓은 세상은 이 두 가지다. 이 두 가지의 세상은 사람이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창조주께서 정해 놓은 기한과 때가 있으며, 그 정한 때가 차면 정한 사람을 통해서만이 알 수 있게 했다.이것이 계시(啓示)며, 계시시대며, 참 종교(宗敎)의 시대다.따라서 그 정한 때가 되어 정한 사람을 통해 알려주기 전에는 천상천하 그 누구도
1부 전쟁편 2부 평화편 지난 호엔 전쟁을 다뤘다. 전쟁의 원인은 인생들의 욕심이 낳은 패권에서 기인됐으며 결국은 재앙으로 마감돼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즉, 수많은 약속(협정, 조약 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그 무엇도 지켜지지 않았고 해결될 수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사람의 고안(考案)으로는 전쟁을 종식시킬 수도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도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지구상의 전쟁종식과 평화세계는 요원하다는 말인가. 전쟁을 종식시키고 세계평
세상에선 흔히 삼재(三災)를 말한다. 이 ‘삼재’는 세 가지 재앙을 말한다. 세 가지 재앙은 곧 물(수재), 불(화재), 바람(풍재)을 말하며, 들 삼재 눌 삼재 날 삼재 등으로 구분한다. 민간에 내려오는 이 삼재 풍습은 언젠가 인류에게 진정한 삼재가 닥칠 것을 미리 보여 준 예언적 성격이라면 과연 얼마나 믿을까. 이 삼재의 참뜻은 창조주 하나님이 인류에게 난세 곧 말세에 나타날 유일무이한 구원의 처소 곧 십승지(신천지 12지파)를 찾아가게 하는 하나의 징조요 하늘의 재앙이다. 따라서 이 삼재의 참뜻은 성경을 깨닫지 못하면 알 수
흔히들 진리를 말한다. 과연 ‘진리’가 뭔지 알고 말하기나 하는 걸까. 이를테면 밭에 콩씨를 심었으면 콩이 열리니 이것이 진리며,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넘어가니 이것이 곧 진리며 만고의 이치다. 이처럼 진리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고, 나아가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할 수 없다.세상적 차원뿐만 아니라 종교적 차원에서도 들여다보자.종교마다 경서가 있고, 자기 종교가 주장하는 경서(약속)가 없다면 애초부터 그 종교는 종교가 아니었다.어쨌든 경서에 기록된 말씀(약속)을 일컬어 ‘진리’라 한다. 기독교에서도 불교(眞理=金剛)에서도 공히
지구상엔 수많은 종교가 있다. 그런데 이 ‘종교(宗敎)’란 무엇일까. 우선 알기 쉽게 직역하면 ‘하늘의 것(비밀)을 보고 들은 자가 가르친다’는 뜻이다.다시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의 뜻과 목적이 있다. 이 뜻과 목적은 이룰 때까지 알 수 없게 감춰져 있는 비밀이다.또 이 예언(약속)은 성취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예언하는 때가 있고, 성취되는 때가 있다. 즉, 기한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 기한이 차면 목적이 이루어지는데, 이룰 때는 먼저 봉한 책(예언)을 열어 이루어야 하고, 이룰 때는 그 이룬 것을 한 사람(천택지인)에게
왠지 5월하면 마냥 기분이 좋다. 이렇게 좋기만 한 5월이 벌써 중반을 넘어간다.푸른 초장에 육축(六畜)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가적(牧歌的) 풍경은 사뭇 아름답다는 표현을 넘어 마치 천국의 모습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물론 아주 더 많이 아름답겠지만 말이다.이 5월이 좋은 이유는 또 있다.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있기 때문이다. 1년 12달 중 경축일 등 공휴일도 많지만, 이 5월만큼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고 격식 있는 기념일 보다 한번 쯤 내 가족과 부모와 스승의 소중함과 그 가치와 내 자신의 내면
‘격물치지(格物致知)’라 했다. 이는 중국의 사서 중 대학에 나오는 말로서 ‘사물의 이치를 연구해 자기 지식을 확고히 한다’는 의미다. 또 ‘지즉위진간(知則爲眞看)’이라 했다. 이는 ‘내가 참으로 알 때 비로소 보인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 할 찌니라(롬 1:20)”라고 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며, 그 속에 담긴 참뜻이 따로 있음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인
‘조선’은 곧 ‘고요한 아침의 나라(일명 해가 일찍 뜨는 나라, 해 돋는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성계가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세운 이씨 조선 이전에 이미 최초 고대국가 ‘조선’이 있었다. 후에 이성계에 의해 다시 조선이라 명명되므로 고대국가 조선은 ‘고조선(古朝鮮)’이라 부를 뿐이다. 어찌 됐든 이 같은 사실로 보아 분명 우리 민족은 ‘조선’으로 시작해 조선으로 이어져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다.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조선을 조선인보다 더 아끼고 사랑한 푸른 눈의 외국인들
약 1400년 전, 중국 당나라 태종 때의 예언서 추배도가 있다. 당시 관상학자 원천강과 천문학자 이순풍이 함께 지은 책으로 60가지가 예언돼 있으며, 매 내용마다 삽화와 참언으로 돼 있고 시기를 계산할 수 있는 육십갑자(六十甲子)까지 표시돼 있다.하지만 이 추배도는 오랜 세월 금서(禁書)로 여겨져 왔으며, 금서가 된 이유가 예사롭지 않다.한마디로 예언마다 너무 정확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다.예를 들면, 당에서 금기시된 여 황제 등극(측천무후), 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패망, 덩샤오핑 등장 등 예언마다 적중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
누구를 막론하고 삶의 무게를 느낄 때마다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게 있다.현실과 현세가 아닌 또 다른 이상의 세계(이상향, 유토피아, 낙원)를 꿈꿔 본 적이 있을 게다. 이 이상향을 다르게는 ‘무릉도원’이라 불러왔다.삼천리 금수강산 아니 지구촌 그 어디를 가든 마치 선계(仙界)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곳이면 의례히 ‘무릉도원’이라는 지명이 붙어있다.그 유례를 살펴보면, 무릉도원은 중국 도연명(陶淵明, 시인)의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시(時)에 나오는 가상의 선경(仙境)으로서, 중국 후난성의 한 어부가 발견했으며, 복숭아꽃이 만발한
이천년 전 유대 땅엔 성자(聖子) 예수님이 임해 오셨다. 이 일은 인류사이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이며, 이 사건을 통해 종교를 넘어 인류의 기원이 바뀌었다. BC(기원전)에서 AD(기원후)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해 하나님은 구약성경을 통해 자기 백성 곧 선민인 유대인(육적 이스라엘)들에게 철두철미하게 약속으로 미리 알려줬고, 선민 이스라엘은 오실 이(메시아)가 오시면 영접하겠노라고 이마에 붙이고 목에 걸면서까지 언약이행 할 것을 약속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약속대로 당연히 오실 이 곧 약속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