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文明), 이 문명의 뜻을 보면 글월 문(文)에 밝을 명(明)으로 ‘글로 세상을 밝힌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보면 그 글은 이 세상의 글이 아닌 하늘의 글이 된다. 즉, 하늘의 뜻이며 하늘의 사상으로 온 세상을 밝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이 대목에서 문화(文化) 역시 글로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뜻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늘의 글로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문화의 근본은 곧 ‘하늘 문화’다.인류는 거듭돼 온 문명의 발달로 인해 오늘날과 같이 질 높은 삶을 가져 올 수 있었다. 물론 그 질 높은 삶이란 이면적이며
요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5월의 수난사’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뉴스의 중심에 서 있다. 먼저는 지난 12일(불기 2563년 사월초파일) 경북 영천시 은해사를 찾아 봉축 법요식에 참석해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합장하지 않는 등 관불의식을 거절해 지금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어 황대표는 18일 광주 5.18행사에 참여했지만 광주가 반기지 않는 손님 1호 리스트에 올라 곤혹을 치러야만 했다. 광주 얘기는 후일로 미루기로 하고 법요식에서 합장하지 않고 관불예식을 따라하지 않은 죄로 나라 안에서 있어지는 소모전과 같은 갑론
북한은 지난 4일에 이어 9일에 또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반도 정세는 다시 요동치고 있다. 4.27판문점선언 1주년이 갓 지나고, 미국 비건 협상대표가 한미일 안보회의 차 방한해 있고, 문재인 대통령은 식량지원을 미국과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년 특별대담을 4시간 앞둔 시점에 보란 듯이 재차 미사일을 발사했다.수많은 약속과 협정과 선언 등이 무색할 정도로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이라는 전통적 본색을 드러내며 또다시 한미의 허를 찔렀고, 멘붕을 안겼다. 북한의 속내를 급하게 분석해보자면 미국과는
외세의 침략이 무서운 게 아니라 당쟁과 부패가 더 무섭고 위험하다는 말처럼 온 나라가 혼수상태다.지도자의 제일 덕목은 국민통합이다. 이 국민통합을 위한 지도자의 첫 걸음은 협치다. 문대통령은 2년 전 대통령 당선 취임사를 통해 “나를 지지한 사람은 물론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천명했다.하지만 지난 2일 원로들과의 만찬에서 원로들이 협치를 주문하자 문대통령은 한마디로 거부했다. 이유는 적폐청산이 전제돼야 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원로들의 충정어린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원로들의 이 같은 주문은 이 나라
세상은 혼탁하다. 무엇인가 아주 많이 섞여있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란 말처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일 뿐 진리와 정의는 찾아 볼 수 없다. 왜 이럴까. 하지만 세상은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인식 없이 그저 무감각할 따름이다. 세상이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갈 길을 알리고 지시하는 생각 즉, 영성(靈性)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종교가 살아야 내 자신이 살고 이웃이 살고 사회가 살고 나라가 살고 인류가 산다는 말이 있다.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한다. 이 말은 창조주가 지으신
“3월은 모춘(暮春)이라 청명(淸明) 곡우(穀雨) 절기로다.” 이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의 3월령이다. 모춘은 늦은 봄이며, 청명은 24절기의 하나로 춘분과 곡우사이로 4월 5일경이며, 곡우는 24절기의 여섯째로 봄의 마지막 절기며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이 윤택하여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절기의 때는 양력 4월로서 지금의 때를 노래한 것이다.그러고 보니 어릴 적 시골풍경이 새록새록 살아나며 밭에 나가 씨를 뿌리던 동네 어른들의 모습들이 오버랩 된다. 경작하는 농부는 이른 아침 밭에 나가 씨를 뿌리기 위해 묵은 밭을 갈아엎고 돌을 제
35년이라는 기나긴 날이 지나서야 일제 식민치하에서 벗어났지만, 또 다른 열강들에 의해 이 한반도는 다시 동족상잔이라는 기막힌 비극을 맞이해야 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우리로 하여금 남과 북이라는 분명한 이분법적 사고를 탄생시켰고, 이는 조금만 생각이 다르고 이상하면 ‘빨갱이’로 몰았고, 나아가 연좌제까지 등장함으로써 우리는 모순된 사상의 늪에 빠져 사상과 이념의 노예로 긴긴 세월 살아올 수밖에 없었으니 속박은 이어져 왔고 진정한 광복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분명 헌법으로는 사상과 양심과 표현의 자유가 명시돼 있지만, 명문화된 실정
강원산불을 포함한 전국 산야는 봄꽃 대신 거대한 불꽃으로 뒤덮였다. 통계가 밝히듯이 또 우리 눈으로 직접 목도했듯이 유례없는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보금자리는 물론 이제 막 한 해 농사를 시작한 농토마저 폐허로 만들었다. 그동안 애써 살아온 삶과 그 삶의 흔적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정부의 잘못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고 밖에는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 강풍과 영동지방의 지형이 갖는 특수한 현상이 화를 더 키웠기 때문이다.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문대통령의 민관군 총동원령은 더 큰 재난의 위기를 멈추게 하는
평화, 이 평화는 인류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보편적 가치다. 그러함에도 이 지구상에는 위력과 거짓이 만연할 뿐 평등도 평화도 없으니 어찌된 일인가. 평화와 생명대신 전쟁과 죽음이 일상이 된 세상을 살아가는 현실이 참담하다.어쩌면 인류는 다툼과 분쟁과 전쟁으로 점철돼 온 역사며, 한 번도 평화의 세상이 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젠 평화보다 전쟁이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되고 나아가 관성이 돼 전쟁은 영원할 것이란 자기 최면(催眠)에 걸려 인류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평화는 그저 요원하기만 한 하나의 꿈이라 여기게
인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흘러가는 것일까를 묻는 것이다. 창조주의 섭리 가운데 흘러가는 역사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분명 성서에는 모든 것은 기한이 있고 목적이 있다고 했다. 조선 중기 유학자이며 천문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서기동래(西氣東來)’라는 말을 미리 남겼다. 무슨 말인가. 서쪽에서 시작한 것이 동쪽으로 온다는 얘기며, 그 오는 때가 됐고 그 목적 또한 이루어지고 있지만 무엇이 오며 왜 오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가 없으니 그야말로 역설이다.길고 긴 세월을 보내며 창조주의 기막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분들은 어릴 적 누구나 들어본 메시지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먹기 위해 사는 것도, 살기 위해 먹는 것도 아닌, 미래에 대한 꿈과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기성세대는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그 같은 희망을 안겨주려 애를 썼으며, 어쩌면 초등 중등교육의 목표이며 제일 덕목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청년은 곧 미래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에게 꿈이 없다면 이 나라 또한 미래가 없어진 것이다. 적어도 이 나라는 한 번도 이런
3월은 근대사적으로 볼 때 괄목할 만한 사건이 꽤 많은 달이다. 우선 109년 전, 치욕의 강제병합을 1년 앞두고 안중근 의사는 민족의 독립과 동양평화 나아가 인류공영을 위해 1909년 10월 26일 할빈 역에서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뤼순감옥에 투옥된 후, 그 이듬해 1910년 2월 14일 사형이 선고되고, 다음 달인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됐다. 안 의사는 차디찬 감옥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조선의 독립은 물론 동양 평화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에 대해서도 동양의 평화를 해쳤기
‘도이모이(베트남경제개방혁신정책)’, 1인 1당의 공산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이끌어 성공한 지구상 유일한 나라 오늘의 베트남을 상징하는 용어다.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 남북전쟁, 중국과의 전쟁(같은 공산국가 간의 전쟁) 등 외세와의 처절한 피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끈질긴 인내심과 자긍심으로 이겨낸 민족이다. 즉,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전쟁을 치른 미국과도 하루아침에 손을 잡았고, 1인 1당 공산체제이면서도 자유경제체제를 받아들이는 등 전형적인 실리주의 국가다.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본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지난달 2
어느덧 추위가 물러가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처럼 대자연의 섭리는 숭고할 따름이다.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뜰 앞의 봄 길잡이 목련화는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이는 한갓 계절을 이긴 겨울을 넘어 새 시대의 선구자에 빗댄 가곡 목련화의 싯귀를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봄기운을 만끽하며 마음껏 기지개를 펼 수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왜일까. 밀려오고 또 밀려오는 미세먼지 때문이다. 코로 숨 쉴 수 없고, 입으로 마실 수 없는 공기가 연일 힘들게만 한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닌가. ‘봄은 왔지만 봄이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기독교인의 경서인 성경에도 기록돼 있다. 2000년 전 유대 땅에 오신 예수는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것이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다.당시 종교지도자들이라고 자부하던 서기관과 바리새
내일이면 2월 14일, 이 날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 도마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며, 다음 달인 1910년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905년 을사늑약이 있은 후, 그 이듬해부터 시작한 계몽운동 나아가 독립운동의 연장선에서 계획된 사건 즉, 1909년 10월 26일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암살한 대가였다.31세 입지(立志, 뜻을 세우다)의 나이답게 하늘의 뜻을 세워 실천함으로써 짧고 굵은 생을 자랑스럽게 마감했다. 차디찬 감옥에서 죽음을
언론과 소통의 문화는 급속도로 진보해 가고 있다. 문명의 이기(利器)는 언론과 소통의 틀마저 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작금에 있어 언론의 역할을 일정부분 대신하며 그 틈새를 공략해 언론과 소통의 한 축이 돼 버린 유튜브 문화를 언급해 보고자 서론을 조금 길게 시작했다.이 시대 소통은 지상파와 케이블 나아가 아이피티브를 주류로 여겨왔다. 문명의 진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급기야 새로운 장르 곧 유튜브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소통문화의 진보는 세대와 계층과 진영을 초월해 너도나도 유튜브 동영상에 몰입하는 그야말로 ‘유튜브 시대’를 출현
지난 일요일 영하의 날씨에도 광화문광장에는 수만의 젊은이들이 피를 토하듯 청와대쪽을 바라보며 절규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규탄 및 한기총 소속 강제개종목사 규탄 집회였다. 한기총은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기관이며, 대부분 장로교를 중심으로 규합된 사설단체다. 사설단체에 불과한 종교단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구한말에서 오늘날까지 종교보다도 정치사에서 그 족적을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어두운 근현대사의 중심엔 늘 장로교와 그 장로교를 주축으로 한 한기총과 그 전신이 있었다.잠시 그 뿌리를 찾아가보면, 일제 침략사에서 치욕의
동방은 어디에 있는가. 인류는 왜 동방을 찾으려 하지 않는가. 이 동방에 관해선 약 6000년 전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시고 동방의 에덴에 그 지으신 아담을 거기 두시고 다스리게 했다는 내용으로 성경은 시작된다.흔히 성경은 인류가 반드시 읽어야 할 베스트셀러라 칭하고 있다. 성경은 기독교인들의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왜 온 인류가 읽어야 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와 그 창조주의 섭리 나아가 우리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어 하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경서의 뜻을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요즘 미세먼지라는 괴물에 뒤덮여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형체가 보이질 않는다. 출퇴근길은 마치 마스크 군단이 전선에 투입되기 위해 진용을 갖추고 대이동하는 모습을 방불케 한다. 국민들은 숨을 못 쉬겠다고 아우성이다. 언론은 매일 톱기사로 미세먼지에 사라진 한반도를 보도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별 반응도 대책도 없다.이는 문재인 정부의 지극히 미온적 행정이며 외교며 지도력의 총체적 부실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진행형 중에 한 예다.최근 ‘창어 4호’를 통해 달 뒷면까지 착륙해 우주강국 미국을 위협하며 최첨단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