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소통의 문화는 급속도로 진보해 가고 있다. 문명의 이기(利器)는 언론과 소통의 틀마저 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작금에 있어 언론의 역할을 일정부분 대신하며 그 틈새를 공략해 언론과 소통의 한 축이 돼 버린 유튜브 문화를 언급해 보고자 서론을 조금 길게 시작했다.

이 시대 소통은 지상파와 케이블 나아가 아이피티브를 주류로 여겨왔다. 문명의 진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급기야 새로운 장르 곧 유튜브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소통문화의 진보는 세대와 계층과 진영을 초월해 너도나도 유튜브 동영상에 몰입하는 그야말로 ‘유튜브 시대’를 출현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문명이 발달한다 해도 언론과 소통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아니 변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그러하기에 유튜브 문화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은 이 때, 유튜브 문화가 가져온 순기능과 역기능을 진단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소통과 소재와 제작에 구애를 받지 않으며, 할 말을 솔직하고 시원하게 가감 없이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해 사실을 가감 내지 왜곡된 방향으로 옮기는 경향이 지배적이며, 일방적 진영논리로 편협 된 세상을 견인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는 동전의 양 면으로 우리 앞에 와 있다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유튜브 문화가 제동장치와 제재기능과 자성 없이 이대로 굳어진다면 세상은 난잡해질 뿐더러 급기야 분열과 균열의 아이콘으로 세상은 혼란 속으로 빠져 들 것이 불 보듯 훤하다.

이 같은 현상은 오늘의 우리로 하여금 역기능이 아닌 순기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됐다. 그 고민은 다름 아닌 언론의 참 역할로 그 중심을 잡아줘야만 하며, 그것이 이 시대 언론의 절대적 사명이기도 하다.

그 중심은 바로 가운데 중(中)이 아닌 마음의 중심(中心)을 뜻하는 중도(中道)의 길인 것이다. 다시말해 어느 쪽도 아닌 어정쩡한 중도가 아니며, 어디도 치우치지 않은 사실 곧 팩트며, 바른 쪽 곧 옳은 쪽의 정도(正道)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홍카콜라’와 ‘알릴레오’가 유튜브 내지 유튜브 정치의 심벌이 됐다. 이 두 가지 유튜브는 흔히 보수와 진보라는 양대 진영의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차기 대선 후보로 지목받는 지도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소통문화라기보다 자기 홈그라운드에서 진행하는 일방적 전달이며 강요며 주장에 불과하다. 여러 말이 필요 없이 이 두개의 동영상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의 현주소며 나아가 미래인 것이다.

대한민국 지도자의 덕목 중 제 1번은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대동단결’이 돼야 한다. 그런데 어떠한가. 지도자들은 진영논리와 자기와 자기편의 주장을 여과 없이 내 뱉으며 국민을 두 패로 갈라놓고 있지 않는가. 보고도 모른단 말인가.

그리고 자기와 자기편은 보호하고, 상대는 죽이고, 국민을 두 가지 국민으로 가르는데 유튜브는 절대적 도구가 되어 톡톡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의 결과는 바로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는 자각을 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지도자의 덕목은 가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로 모으는데 모든 정열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유튜브는 바로 모으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구가 돼야 하며, 나아가 언론 역시 사실과 정론직필이라는 정도와 중도의 길을 모색할 때라는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래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