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래도 봄은 봄이다
[천지일보 시론]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래도 봄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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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추위가 물러가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이처럼 대자연의 섭리는 숭고할 따름이다.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뜰 앞의 봄 길잡이 목련화는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이는 한갓 계절을 이긴 겨울을 넘어 새 시대의 선구자에 빗댄 가곡 목련화의 싯귀를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봄기운을 만끽하며 마음껏 기지개를 펼 수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왜일까. 밀려오고 또 밀려오는 미세먼지 때문이다. 코로 숨 쉴 수 없고, 입으로 마실 수 없는 공기가 연일 힘들게만 한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닌가.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니다’는 의미다.

문명을 낳은 주체가 그 문명의 이기로부터 생산되는 생활환경으로 인해 받는 역습이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은 빛과 비와 공기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찾아온 공기는 살리는 공기가 아닌 죽이는 공기가 되고 말았다. 마스크 없이는 살아 갈 수 없고 공기청정기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며, 이는 자업자득이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인류 역시 부지불식간에 ‘송구영신(送舊迎新)’함으로 계절의 봄이 아닌 시대적 봄과 함께 그 생명력이 우리 곁에 홀연히 찾아와 그 생명의 기운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물론 ‘지즉위진간(내가 알 때 비로소 보인다)’이란 말처럼, 알아야 시대를 보고 분별할 수 있지만 말이다.

송구영신은 ‘호시절(好時節)’이라 했던가. 또 호시절이기에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즉, 좋은 시절이 찾아왔기에 좋은 일에는 반드시 홍수를 이루듯 나쁜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악한 기운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찾아온 시대적 봄과 봄을 통해 얻는 생명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춘래불사춘’ 즉, 봄이 왔어도 미세먼지에 갇힌 봄을 느끼지 못하듯, 세상의 사상과 철학은 온갖 헛된 속임수로 다가와 허무한 생각을 낳으며 온 인류를 혼탁케 하고 나아가 혼란에 빠뜨리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봄의 전령사 초미세먼지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 했던가. 자신들의 느낌과 생각과 이념과 사상으로 고착된 철학으로 세력을 만들고, 그 세력은 자신들만의 정의라는 굴레를 씌워 상대를 판단하고 심판하는 저주의 지구촌을 만들어가고 있다. 뿌연 미세먼지와 같은 말·말·말에 갇혀 지구촌은 지금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으며 목이 말라 지쳐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딘가에 맑은 샘과 같은 참과 진실과 진리가 솟아나고 있지는 않을까. 어딘가에 그 샘이 있기에 우리가 지쳐가는 가운데서도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찾아야만 하고 두드려야만 하고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찾고 두드리고 구하는 그 곳에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있고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성인들의 입을 빌려 오늘날 이 한 때를 알려 왔고, 또 자자손손 이어오며 잊지 않고 부르게 한 그 구전(口傳)들이 노래가 되고 오늘날 이 강산 위에 이루어져 현실이 돼 눈앞에 나타나도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무지무각한 신세가 다 되고 말았으니, 이는 생각과 사상과 이념과 철학의 종말을 맞은 것이다. 이제 아낌없이 다 버려야 하는 이유며, 새 것으로 새로운 세상을 바라봐야만 하는 이유다.

정의는 그 어떤 이념과 사상으로 무장된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러하기에 더더욱 독점해서도 아니 된다. ‘백성이 곧 하늘’이라는 말처럼, 하늘이 정한 길이 곧 정의며, 그 정의의 길은 민의와 합의가 만들어낸 총화며 우리가 함께 가야 하는 길이다.

그 옛날 선지자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오늘을 기약할 수 있었듯이, 이 시대 선지자 선각자된 시대의 스승들 또한 포기하지 말고 알려야 하고 가르쳐야 하니 시대적 운명이고 숙명이고 사명이다.

‘춘래불사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섭리 가운데 찾아온 봄과 생명은 참이며 진실이니 어찌 하겠는가. 그래서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는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필요했고, 지금 찾아온 봄과 또 봄과 함께 온 생명을 목 놓아 부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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