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文정부, 가치정립 통해 외교력과 통치력 가져 주길
[천지일보 시론] 文정부, 가치정립 통해 외교력과 통치력 가져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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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요즘 미세먼지라는 괴물에 뒤덮여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형체가 보이질 않는다. 출퇴근길은 마치 마스크 군단이 전선에 투입되기 위해 진용을 갖추고 대이동하는 모습을 방불케 한다. 국민들은 숨을 못 쉬겠다고 아우성이다. 언론은 매일 톱기사로 미세먼지에 사라진 한반도를 보도해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별 반응도 대책도 없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지극히 미온적 행정이며 외교며 지도력의 총체적 부실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진행형 중에 한 예다.

최근 ‘창어 4호’를 통해 달 뒷면까지 착륙해 우주강국 미국을 위협하며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중국은 미세먼지 관측기술만큼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가 보다. 이유인즉 한반도의 미세먼지는 서울이 그 원인이지 중국의 영향은 아니라며 오리발을 신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기술은 어디에 써먹을 건지, 아니면 고장이 난 것인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이웃 국가를 얕잡아 보는 건지, 참으로 지구촌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한중일 관계자들이 모여 대책을 강구하자고 해도 이를 회피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대한민국의 외교력은 어디로 사라졌고 속수무책으로 일관하며 국민들의 안위를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는 정부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오직 아는 것은 “평화가 경제다” “다 같이 잘 사는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등의 막연한 구호만 있을 뿐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순방 시 중국 경호원들이 대통령 수행기자들을 지척에서 무참히 폭행했어도 항의나 사과 한마디 요구도 받지도 못하는 정부를 이해해 줬고 기다려 줬지만 우유부단과 나약함과 무능과 통치력의 부재라는 총체적 부실함은 점입가경이다.

또 일련의 한일관계를 들여다보자.

위안부 ‘화해 치유재단’의 해체,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 판결, 사격 통제 레이더 조준 논란 등으로 일본 언론과 정부의 거센 반발을 가져오는 가운데 있게 된 신년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즉, 한일 간 불편한 관계는 한국 때문이 아니라 과거 불행했던 역사 때문이라면서 책임은 과거 역사를 고려치 않은 일본 정부 입장을 에둘러 비판하며 한일관계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국제관계 나아가 이웃국가 간의 관계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함수관계가 상존하고 있다. 국제관계를 대하는 자세가 개인의 감정을 표출하듯 성숙되지 못하고 노련하지 못하다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된다.

지울 수 없는 역사적 한일관계, 이 관계로 영원히 원수가 돼 살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 나라와 국민에게 실익을 줄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하는 자리가 바로 국가 최고 지도자의 자리다. 과거 일본의 만행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 않을 국민들이 어디 있겠는가. 대통령과 측근들만이 마치 애국자며 정의롭다는 선민의식은 중단돼야 한다.

치욕의 역사는 임진왜란과 구한말 일제치하만 있는 게 아니다. 정묘효란, 병자호란을 통해 겪은 역사는 차마 부끄러워 떠올릴 수조차 없는 치욕이다. 삼전도 굴욕을 잊었고, 수십만명 여인들이 포로로 끌려간 굴욕생활을 잊었고, 6.25때 북한군을 도와 남침한 중공군 인해전술의 역사는 역사가 아닌가. 편협된 역사관은 편협된 의식을 낳고 편협된 국민을 만들어 결국엔 국제관계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후진성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러한 길은 누가 만들어 가고 있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대북관, 대중국관, 대일본관의 중심에는 개인과 소속집단의 이해득실이 있어선 안 되며, 오직 그 중심에는 나라와 국민만이 존재해야 한다.

중국에는 저자세, 일본에는 저자세도 고자세도 아닌 감정표출의 자세, 과연 대한민국의 외교 내지 국제관계의 기조는 무엇인지 알 권리를 가진 국민들에게 소상히 밝혀야 한다. 밝히지 못한다는 것은 뚜렷하게 정립된 외교 전략과 철학이 서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현 문재인 정부는 자타가 공히 진보세력이라 한다. 진보라 함은 보수와 함께 국가가 경영돼 가는 데 있어 두 축이라 할 수 있다. 즉, 보수는 나라의 역사와 고유한 문화 나아가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라 함은 보수의 가치에 함몰됨으로 야기될 수 있는 국수주의 내지 폐쇄성을 차단하고 보다 나은 세상으로 발전 성장하기 위해 이해와 타협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는 이 둘 중 어느 한 쪽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치가 상호보완적 관계를 가지며 상존할 때 건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놓고 볼 때, 이 나라의 진보는 오히려 보수보다 더한 보수적 가치를 고수하며, 그 정체성을 상실한 체 그저 세력을 규합하는 깃발의 역할로 그 존재가치는 이미 상실된 지 오래다.

이제 새해를 맞아 새롭게 정립된 가치와 철학으로 중심을 잡고 자신들이 아닌 국민과 나라를 위한 분명한 외교력과 통치력을 발휘해 줄 것을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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