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산불을 포함한 전국 산야는 봄꽃 대신 거대한 불꽃으로 뒤덮였다. 통계가 밝히듯이 또 우리 눈으로 직접 목도했듯이 유례없는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보금자리는 물론 이제 막 한 해 농사를 시작한 농토마저 폐허로 만들었다. 그동안 애써 살아온 삶과 그 삶의 흔적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정부의 잘못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고 밖에는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 강풍과 영동지방의 지형이 갖는 특수한 현상이 화를 더 키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문대통령의 민관군 총동원령은 더 큰 재난의 위기를 멈추게 하는 데 적절한 조치였다. 뿐만 아니라 산불로 인한 재난기간에는 정쟁을 멈추자는 황교안대표의 발언은 물론 여야 지도부의 일치된 목소리는 한층 고무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는데 기여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국민총화’, 국민이 화합하면 그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진리를 말이다.

원래 우리 민족은 위난이 닥칠 때마다 혼연일체가 되어 슬기롭게 극복해 온 위대한 민족이다. 반면 평시에는 하나 되지 못하고 분란과 분열로 위난을 자초해 왔던 어리석은 민족이기도 하니 우리는 어쩌면 양면성을 가진 민족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그 후자의 때요 현실이 아닌가 싶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경서의 교훈처럼, 지도자의 우매함이 도를 넘을 때 백성과 나라의 운명은 위험에 처해진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누차 밝혀 왔듯이, 통치자의 제 일 덕목은 역시 국민 통합이다. 자기 논리와 주장과 철학이 아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기 생각과 주장이 지나치게 분명하다 보면 백성과 다투고 싸우는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자기주장과 자기만족을 위한 통치일 뿐 백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정책이 되고 오히려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한다. 

통치와 백성들의 삶에는 예행연습이 허락되지 않으며 그저 삶이라는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이 한 점을 위정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자신들의 욕심이 눈을 가린 것이다. 나와 우리 외는 모두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절대적 가치관과 잣대로 매사를 응시하게 되며, 정의와 도덕이 마치 나와 우리만의 전유물로 착각하기에 이르렀으니 교만이 하늘을 찌른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신이 아닌 이상 ‘완벽’이라는 단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과 단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교육이 있고 신이 주관하는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함에도 문재인 정부는 정치와 제도를 바꾸자는 슬로건을 배척하고, 과거 정권을 적폐로 간주하고 청산이라는 슬로건으로 문재인호의 닻을 올렸다. 바로 이것이 도끼로 제 발을 찍은 격이며 자충수가 됐다. 

왜일까.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며 우리의 힘으로는 완전해 질 수도 없다. 적폐청산의 그 칼끝은 부메랑이 되어 이제 자신들을 향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요즘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 답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했고, ‘도토리 키 재기’라 했으니 바로 그 답이다. 

역대 정권 가운데 현 정부만큼 남의 허물 잡기에 앞장서 왔던 정부가 또 있었던가. 이제 내 자신이 가장 비겁하고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는 민낯을 들어내고 말았다.

과거 정권들의 부패를 두둔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분명 적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적폐를 어찌 사람의 계산과 판단으로 청산할 수 있겠는가. 반면교사 삼아 제도를 개선하고 교육하고 고쳐나가는 일 뿐일 텐데 말이다. 또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먼저 변화되면 세상이 변화 된다”는 말이 있다. 적폐를 진정으로 청산하고 싶다면, 또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그 길에서 멀어질 때만이 가능하다.

국민화합 대신 청산과 편견과 편향의 늪에 깊이 빠져 서로 죽이기를 앞장서는 이 나라의 정치 위정자들 앞에 불어 닥친 화마(火魔)는 분명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옥석구분(玉石俱焚,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고 둘이 다 멸망당함)’ 즉, 임금이 덕을 잃고 다스리면 그 화가 불보다도 더 큼을 말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과거 조상들은 가뭄 화마 홍수 전염병 등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으면 임금이 나라를 잘못 보살펴서 하늘로부터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하늘은 자기만의 정의보다 갈라질 대로 갈라진 이 나라를 화합시키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민심이 곧 천심’, 그 하늘은 바로 백성이다.

그토록 염원하는 통일, 우리의 소원인 통일도 마찬가지다. 남쪽도 하나 되지 못하면서 어찌 남북이 하나 되길 바랄 수 있겠는가. 남쪽 백성은 적을 만들고 북쪽 정권과 하나 되자는 모순의 논리다. 이치와 순리부터 바로 세우자. 잘못했어도 내 백성이고 우리다.

금번 화마가 쓸고 간 아픔을 온 국민이 하나의 지도자 아래 국민총화로 이겨내야 하듯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 역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지도자의 덕목이 작용할 때만이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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