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양심’이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네
[천지일보 시론] ‘양심’이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기독교인의 경서인 성경에도 기록돼 있다. 2000년 전 유대 땅에 오신 예수는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것이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라고 자부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은 것에 대해 ‘장로들의 유전’을 범했다며 꼬투리를 잡자 그들에게 건넨 말이자, 제자들에게 따로 그 비유를 설명해주신 내용이다.

항시 그 마음이 배배 꼬여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 상대방을 짓밟고 넘어뜨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든 존재하는가보다. 옳은 말을 해도 자신들이 갖고 있는 얄팍한 지식의 잣대로 그것을 제멋대로 재단하고 난도질하는 것이 마치 의(義)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인류는 지금까지 그런 사람들로 인해 분쟁과 분열, 전쟁의 역사를 거듭해왔다고 하면 과언일까.

과연 2000년 전 예수가 했던 말처럼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 맞다. 눈이 영혼의 창이라면, 입은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통로다. 사람이 자기의 생각하는 것이 부지불식간에 그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그 본색은 숨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륜도, 인륜도, 도덕도 땅에 떨어진 지 이미 오래다. 듣기에도 끔찍한 일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일어나고 있으며, 이미 그런 일에는 면역이 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는 세상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불의를 보면 분연히 일어났던 민족이다. 불의와 맞설 수 있는 유전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義)를 따르고자 했던 민족이었기에 그 숱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었다. 또한 이 불의와 맞서기 위해 사상과 이념, 종교를 떠나 하나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또 하나가 되었기에 일제의 무력 앞에서도 당당하게 ‘대한 독립만세’를 외칠 수 있었다.

정의를 부르짖고 옳음을 외치던 민족이었건만 어느 순간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고, 내 생각과 다르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는 못된 습관이 들어버린 것인가.

그 어느 사건·사고이건 안타깝지 않고 분노하지 않을 사건이 있겠는가마는 최근 일어난 사건 중 택시 기사에게 욕설을 하며 동전을 집어던진 사건이 국민들의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30대 승객의 심한 욕설과 함께 그가 던진 동전에 맞은 뒤 숨진 70대 택시기사의 사연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단 이번 사건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그저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아무 여과 없이 표출하는 것, 그것이 타인을 향한 폭언과 폭행이라면 이는 이번 사건과 같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 위도 아래도, 존경과 존중도, 배려와 희생도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과연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일까. 과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당사자 스스로에게도 행복한 삶일까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역지사지라 했듯 같은 상황을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야 한다. 섣부른 판단이고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반대의 입장이 되면 더욱 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쪽의 입장에 처해있든 인간다움을 포기하고, 상식이라는 것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자기 아집만 있는 사람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될 뿐이다. 세상법의 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심판을 받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대대손손 그 이름이 회자되며 심판받고 저주받는다. 2000년 전 예수를 판 가룟인 유다는 지금까지도 그 죄의 값을 받고 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발생했던 사건이었지만 지금은 종교 여부를 떠나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를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가까이 우리나라만 봐도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최악의 매국노 이완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지엽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 훗날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 당장 자신의 기분에만 신경 쓰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사람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타인을 공격하고 짓밟는 사람들. ‘양심’이라는 것이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들에게 ‘양심’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들도 돌이켜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의인들이 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가 아닌가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