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와 어지러이 싸우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누구와 그 무엇과 어떻게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싸워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돌팔매질하며 정신없이 싸우며 살아야 하는 얄궂은 세상에 한 줄기 희망의 빛 되기를 자처하고 다짐하며 출범한 천지일보가 열한 돌을 맞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성인이 남겼고, 또 역사적 교훈이 있고, 인생의 길표가 되는 종교가 있고, 상식이 있지만 세인심폐(世人心閉) 즉, 아무 소용없게 된 세상의 끝자락에 와 있다.

무지와 거짓과 편견과 독설과 남 탓이 난무한 작금의 현실이 바로 세상 끝자락의 실상(實狀)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희망과 기쁨과 칭송이 자자한 글을 도저히 써 내려갈 수 없는 이 아픈 현실이 세상의 끝자락에 와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판을 위한 비판도, 칭송을 위한 칭송도 돼선 안 되는 것이 오피니언들의 글이 돼야 하기에 더더욱 이 현실이 참으로 가슴 아픈 이유다. 이러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도 깨닫는 이 하나 없는 안타깝고 답답한 세상의 한 중심에 지금으로부터 십일년 전 구월 천지일보는 그 첫발을 내디뎠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배가 되어 언제 폭풍우가 몰아닥쳐 순식간에 파도가 집어삼킬지도 모를 상황을 견뎌 이겨내며 오늘을 일궈 낼 수 있었던 데는 그나마 애독자분들의 진심 어린 사랑과 채찍과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굳게 믿는다.

미약한 가운데서도 중도의 사명이 곧 언론의 사명이라는 초심을 잃지 않고 버텨온 데는 세상의 중심이 되고 기준이 돼야 한다는 사명 때문이었다. 개념과 원칙 없는 세상에서 개념과 원칙과 기본부터 짚어주고 일깨워야 하는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그래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과 같이, 하늘은 천지일보 기자들의 노고를 외면하지 않았으며 칠흑 같은 세상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서광(曙光)이 되게 했고, 나아가 샛별이 되게 했고, 까마득한 날에 새벽이 왔음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되게 했다. 

중도(中道),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개념인 이것이며 저것이다. 나아가 확고부동한 마음의 중심이다. 다시 말해 옳고 그름과 맞고 틀리고를 분명히 하는 도(道)의 개념에서 기인된 것이기에 정도(正道)며 진리(眞理)다.

그러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일까. 우선 내 자신이 중도에 서야 하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간할 수 있는 안목과 그 안목을 기르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하니 그것이 곧 이치다.

설상가상으로 이 어지러운 지구촌에 찾아온 코로나19라는 재앙은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의 일상을 한순간에 바꿔 놓았으며, 인생과 인류의 흐름을 정지시키며 더 이상의 진보(進步)를 허락하지 않고 강제로 멈춰 세워 버렸다. 이러한 하늘의 응급조치는 과연 우리 인생에게 무엇인가를 알리고자 하는 경종이거늘 아무도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은 채 아니 못한 채 그저 발등에 떨어진 불똥에 놀라 호들갑 떨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편리추구와 욕망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 있고, 나아가 우주만물의 섭리이자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기에 이르렀다. 심각한 것은 순리의 거역을 넘어 역리(逆理)를 좇는 일에 앞장서 즐거워하는 지경에까지 와 있으니 하늘은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겠는가. 

하루아침에 하늘이 내린 금번 코로나19라는 재앙은 무지한 인생들로 하여금 이 같은 진리를 반드시 깨달으라는 지엄한 시대적 명령이 아닐까.

하지만 이처럼 인류의 운명을 좌우할 중차대한 고비를 만났지만 인생들은 하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뿐더러 깨달으려 노력조차 하지 않으니 오히려 이같이 악한 세상에 만족하는 것인가.

왜 그럴까. 답은 자명하다. 자기 생각과 익숙한 자기 삶에 염색되고 골몰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같은 현상은 실제 죽음이 찾아와도 남 탓만 하고 원망할 뿐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 글을 마치려함에는 이처럼 악한 세상과 악한 날이 찾아왔을 때, 이 현실을 알려주고 고쳐주고 지도할 것을 명받은 언론이 바로 천지일보라는 사실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깜깜한 세상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의 사명이 천지일보가 가야 할 길이며, 우여곡절을 겪고 세상에 우뚝 서야만 했던 이유였으며, 천지일보의 숙명이기도 하다. 폭풍우를 만나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배라 할지라도 저 피안의 세계에 안착하는 순간까지 방향키를 굳게 잡고 힘차게 노를 저어 갈 것이다.

천지일보는 애독자 여러분들의 끊임없는 사랑과 지도편달을 기대하며 언론의 사명 곧 중도의 길을 묵묵히 이어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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