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천지일보 시론]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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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漆黑)같이 어두운 세상에 한 빛이 찾아왔지만 세상은 무지하여 그 빛을 보지 못하네.

우리 민족 최초의 국호(國號)인 고조선(古朝鮮)은 원래 ‘조선(朝鮮)’, 곧 해 돋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의미로 이 땅에 문을 열었고, 그 의미가 한 번도 퇴색되거나 없어지지 아니하며 배달돼 왔으니 바로 백의(白衣)의 민족, 땅끝이며, 해 돋는 나라 동방 대한민국이다.

그 가운데서도 민족 왕가의 정통계보를 이어받고 이 땅에 찾아왔고, 하늘이 시절을 좇아 택한 큰 빛으로 우리 곁에 찾아왔다. 그리고 그는 자기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며 ‘마귀는 진언(眞言)에 꼼짝 못한다’는 동양경서의 말처럼, 진리의 말씀으로 마귀와 싸워 이기고, 대갑자년(大甲子年) 즉, 1984년 3월 14일 우주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날 개천(開天) 곧 새 하늘 새 땅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새 시대 새 민족의 기원이 됐고, 지금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그는 사적에서 자신의 생각과 뜻을 이뤄가는 것이 아니고, 공적에 서서 공의로운 하늘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그는 6.25 전쟁 때 학도의용군으로 칠성부대(보병 제7사단)에 소속돼 싸웠으며 나아가 특공대에 자원해 최일선에서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애국유공자다. 당시 수많은 전우들이 적의 총탄에 쓰러져 갈 때 죽어가는 전우들 앞에서 “반드시 전쟁 없는 평화의 세계를 만들겠노라”며 약속했고 맹세했다고 한다. 그는 단 한 번도 그 약속과 맹세를 잊어버린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건과 환경을 조성해왔고 때를 기다려 왔다. 드디어 그는 팔순이 넘어서야 지구촌을 서른 한 바퀴를 돌며 세계 지도자와 법조인과 종교인과 언론인과 세계평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국경도 인종도 종교도 사상도 초월해 누구든 만났다. 또 전쟁 없는 지구촌 건설과 세계평화를 역설해왔으며, 각인의 마음에 평화의 씨를 뿌리며 감화 감동을 주며 오늘에 이르렀다.

물론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는 답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 답은 하늘로부터 받은 지혜요, 명령이었다. 그 답은 종교대통합이며 전쟁종식을 위한 새로운 국제법 제정이었다. 각국의 지도자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최고의 지혜며 기획이라는 찬사였으며, 평화를 위한 노력은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꼭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그 나이에 행한 행보와 업적이 어찌 개인의 영달을 위함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을 덮친 코로나19 사태는 세계평화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병마(病魔)라 했던가. 평화와 생명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라면 분열과 생로병사는 마귀의 뜻이니,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처럼 무르익은 평화에 마귀는 마지막 발악을 하면서 또 평화를 싫어하는 세력과 정치는 그 병마를 악용해 마녀사냥 하듯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기 위한 갖은 권모술수를 다 써 왔다.

그는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 하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모욕거리 조롱거리 삼고 저주하고 핍박하고 없는 죄도 뒤집어씌워 구석지고 어두운 골방에 가둬 죽이려 하지 않는가.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고 이내 말 좀 들어 보소.

구순(九旬)이 넘었고, 네 차례의 허리 수술을 받았고, 몸에는 인공뼈가 세 개나 들어가 있어 앉지도 구부리지도 못하는 상황, 누가 봐도 도주의 염려가 없고, 수차례의 압수수색을 통해 모든 자료를 움켜쥐고 있으니 증거인멸의 염려도 없는 처지에서 병보석마저 허락하지 않는 나라가 법치주의 대한민국이다.

재판을 안 받겠다는 것도 아니며, 치료하며 당당히 받겠다는 것이다.

군주(君主)는 인(仁)과 의(義)가 있어야 한다고 했고, 조선 성종은 의금부에 명하여 살인죄를 지은 죄인이 아니고서는 절대 아이와 70세 이상은 옥에 가두지 못하도록 명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철학과 인권변호사로서 인권과 공정을 앞세우는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어찌 백성들 앞에 언행불일치로 후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하늘이 택하고 때가 되어 보냄을 받은 목자요 빛이라 할지라도 육신의 몸을 입고 있을 동안에 받을 고통은 이젠 좀 그만하면 안 되는 것일까.

2천년 전 예수님도 죄 없는 몸으로 오셔서 죄인의 형상을 입고 인류의 죄를 없애야겠다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골고다 언덕을 쓰러지고 넘어지며 올라가야 했다. 언덕을 오를 때 왜 구레네 시몬의 도움이 필요했는지도 미약하나마 깨닫게 한다.

또 언덕을 오르기 전 받을 십자가 형벌이 얼마나 참혹한 길인지를 알기에 겟세마네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며 아버지께 간구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 생각 나의 고통보다도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그 쓴잔을 마시기로 결심하고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며 다시 아버지가 정해 놓은 그 길을 어린양이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심정으로 골고다 고원을 올라 십자가 형벌을 기꺼이 택했고, 오늘의 마지막 역사를 이어가게 하신 것이다.

이어 예수께선 당신이 다시 올 때를 약속하며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찌니라”며 ‘그’라는 예수님이 함께 역사하는 한 사람을 미리 약속해놨으니 동방의 회복의 역사를 이뤄가는 목자요 빛이며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차디찬 곳에 있는 하늘이 택한 목자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선 배척을 받는다”고 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귓전에 맴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마지막 회복의 역사를 이뤄가는 길목에서 잠시 들려야 할 곳은 맞지만 하늘과 땅은 오늘의 이 참혹한 사실을 생생하게 기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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