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 연구가

고구려 불교 도입 이후 최초의 가람은 ‘이불란사(伊弗蘭寺)’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보면 374(소수림왕 4)년에 아도(阿道)가 진(晉) 나라에서 왔으므로 이듬해에 초문사(肖門寺)를 지어 순도를 머무르게 하고,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지어 아도를 상주시켰다고 기록돼 있다. 한국불교사상 첫 사찰의 이름은 바로 이불란사다.

‘이불란사’라는 이름은 무슨 뜻일까. 언어학자들은 ‘이불란’이 토속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미륵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불(泥佛)은 흙으로 빚은 불, 즉 토제불로 해석해 온 것이다.

이불란사 불감(왼쪽), 이불란사 불감 명문(오른쪽)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1.6.8
이불란사 불감(왼쪽), 이불란사 불감 명문(오른쪽)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천지일보 2021.6.8

초기 고구려 불교 부처의 조성은 토제불이 많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이조불은 바로 평양 원오리 사지에서 출토된 것이다. 그리고 국내성 일대 지안이나 평양성 등 고(古) 절터에서도 토제불이 다수 발견됐다. 금동으로 부처를 조성한 것은 북위로부터 불경과 금동상들이 전래되고 왕실의 비호가 두드러진 5세기 이후 유행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 소개하는 불감은 토제(土製)로서 배면에는 모두 46자의 명문이 종서로 양출돼 있다. 즉 고구려 이불란사 명이 고졸한 예서로 나타나 주목된다. 명문은 ‘歲 太? 戊午七年大秦弗蘭寺高句麗 谷民勝東寘歲晏工目佛土御大渡愿固王域佛土千秋大定廏目大永祀’로 ‘세 태? 무오년에 고구려 곡민이 대진불란사를 지어 임금의 대도가 견고하고 천추에 안정하시기를 영구히 기원한다(의역)’는 내용이다.

불감은 3단이며 2단의 끝이 뾰족한 복련 대좌가 받치고 연봉형의 2중창을 만들었다. 넓은 감실 안에는 불좌상인 여래상 1구가 안치되어 있다. 불상의 존용은 후덕하며 안정되어 있는데 각부 조각이 정제돼 있고 아름답다. 이 불감의 크기는 높이 55㎝이며 대좌 폭은 35㎝, 뒷면 글씨 크기는 2x2㎝, 모래가 적은 경질이며 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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