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한국역사문화연구회고문

 

이번에 발견된 추사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써준 발문. 가운데 대자는 예서이고 양쪽에 행서로 된 협서가 보인다. 당나라 구양순, 저수량과 배경민비 등 명필들의 서법에 관한 추사의 견해를 붙인 것이다.(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 2021.3.26
이번에 발견된 추사 김정희가 김석준에게 써준 발문. 가운데 대자는 예서이고 양쪽에 행서로 된 협서가 보인다. 당나라 구양순, 저수량과 배경민비 등 명필들의 서법에 관한 추사의 견해를 붙인 것이다.(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 2021.3.26

대자는 고졸한 예서… 당나라 서법 설명

당대 유행하던 예서체 협서는 행서로 써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자인 역관 김석준(金奭準, 1831~1915)에게 써준 ‘배경민비첩발문(완당전집 권 6)’의 대련 한 면이 낙질로 발견됐다.

서울의 한 개인이 소장한 이 유묵은 34㎝x152㎝ 크기로 중국산 홍지인 만년지(紅紙.萬年紙)에 쓰여 진 것이다. 표구도 최근의 것이 아니며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가운데 예서 대자로 ‘삭풍추수최야청(朔風秋樹催夜淸)’이라고 쓰고 양 옆으로 행서체로 위에서 아래로 쓰는 방식인 종서로 협서를 썼다. 오른쪽 상단 위에는 추사의 전서 방형 인장인 ‘묵연(墨緣)’을 찍었다.

이 글씨는 그동안 인사동 갤러리 등 여러 곳을 전전한 유묵인데 정확한 고증이 없어 여태 진위논쟁이 있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글씨를 접한 필자는 대자 예서가 추사 김정희가 써온 한나라 금석문에서 임모한 것이며, 추사의 생존 시기 청나라 명필들이 써온 예서의 격을 담고 있어 진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제자인 김석준은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에 본래 추사의 수제자였던 이상적의 제자였으나 만년에 추사가 기거했던 과천 초당에 자주 들러 글씨를 배웠다. 김석준은 역관으로 중국을 자주 드나들며 이상적처럼 추사에게 문방사우 전적을 선물했으며 추사는 고마운 표시로 많은 글씨를 써 주기도 했다. ‘완당집’에 “석준이 내가 써 준 대소글씨를 종의 어깨가 무겁도록 상자에 가득 지고 갔다”고 술회한 내용을 보면 김석준이 추사의 많은 진묵을 얻어간 것으로 생각 할 수 있다.

당나라 태종대 세워진 ‘배경민비’ 탑본. 추사의 제자 김석준은 이 탑본을 추사에게 보이고 발문을 부탁했다.(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 2021.3.26
당나라 태종대 세워진 ‘배경민비’ 탑본. 추사의 제자 김석준은 이 탑본을 추사에게 보이고 발문을 부탁했다.(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 2021.3.26

이 추사 발문은 김석준이 중국에서 얻어 온 두루마리로 된 고대 수나라 무관 ‘배경민비(중국 산서문희현 배백촌 소재) 탑본’을 보여주고 발문을 부탁한 것으로 종이도 중국 홍지를 사용했다. 중국 기록에 따르면 배경민(?~596)은 북주(北周)의 무관이었으나 수나라 개국이후 익주총관 사마(司馬)가 되어 서남지역의 민란을 진압하다 순절한 인물이다. 장자 배희재가 당태종 대 병부상서에 올라 가문을 빛냈다. 배경민 비는 정연한 행서체로 당태종(637) 때 이백약(李百葯)이 비문을 짓고 김부원 외랑이 글씨 쓴 것을 각자하여 세웠다.

세로로 쓰여 진 발문은 가운데 ‘삭풍추수최야청(朔風秋樹催夜淸, 찬바람에 단풍잎이 맑은 밤을 재촉하고)’을 고졸한 예서로 쓰고, 그 옆에 행서체로 당나라 구양순, 저수량과 배경민비 등의 서법을 협서로 설명하고 있다. 이 내용은 ‘완당전집 권6 제발(題跋)’에 등재되어 있는 ‘제김군석준소장배경민비첩후(題金君奭準所藏裵鏡民碑帖後)’ 내용 중 첫머리 부분으로 협서 내용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저 당나라 한 시대의 글씨는 모두 구양순파가 아니면 저수량파이다. 구와 저는 당나라 금석에 보존된 것이 하나 하나 들 수 없을 정도이다. 저파는 설직과 창정이래로 역시 서너 사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데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배경민비, 정객면 등이며 안진경 같은 이는 저수량으로부터 변하여 한 격을 표출했다. (중략)”

추사의 진적을 잘 살피면 한자라도 서법에 어긋난 것이 없다. 서법에 없는 이상한 글씨들은 후대에 잘 모르는 이들이 창작한 위작일 가능성이 크다. 추사의 서체를 연구하는 전문가들 가운데 추사는 추사체를 창안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필자도 동의한다.

예서를 추사 김정희가 임모한 것을 비교한 것이다. (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 2021.3.26
예서를 추사 김정희가 임모한 것을 비교한 것이다. (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 2021.3.26

배경민비 발문에 보이는 예서 대자를 고찰하면 ‘朔’자는 한나라 육체 한인명(韓仁銘)에서 임모한 글씨다. 당나라 명필 안진경도 이렇게 썼다. 한인명은 동한(東漢)시기 175년 11월 22일 각자 명문이 있으며 한나라 순환관리인 한인의 사적을 기록한 비문이다.

‘風’은 마왕퇴면수(馬王堆帛書)에 나오는 고졸한 예서 風자를 임모한 듯하다. ‘마왕 퇴 한나라 묘3호분’에서 출토된 유물로 매우 귀중한 고 예서를 보여주고 있다.(马王堆帛书为马王堆汉墓三号墓中出土的帛书)

‘秋’는 불화 변을 앞에 둔 것으로 언뜻 보면 추사의 창작체로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 와당글씨에서 이와 같은 자가 나타나며 고대 전서에서도 火변을 앞에 쓴 것이 보인다. 추사와 동시대 살았던 청나라 명필 손균(孫均), 추사가 가장 많이 인용한 진공이(陣恭伊), 오예(吳譽) 등도 추사와 같은 화변을 뒤집은 형식으로 추자를 썼다.

‘樹’자도 추사의 창작 글씨가 아니다. 원나라 명필 조맹부(趙孟頫, 1254~1322), 내현(乃賢, 1309~?)이 이렇게 썼다. 가장 현대적 감각에 미치는 ‘催夜淸’도 동한(東漢) 조전비(曹全碑), 중국의 명대 문징명(文徵明), 청대 등석여(鄧石如), 하소기(何紹基) 조지겸(趙之謙)이 즐겨 쓴 예서와 비슷하다.

추사의 진묵을 보기란 참으로 어렵다. 우리나라 유명 박물관에 소장된 추사글씨라고 하는 작품가운데는 위작이 많다. 추사의 글씨를 감정 할 때 오만한 안목이나 즉흥적인 감정에 치우치면 분명 그릇된 판단이 나올 수 있다.

동한 시기 서협송이라고 불리는 황룡비. 추사 김정희는 황룡비를 주로 임모했으며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 2021.3.26
동한 시기 서협송이라고 불리는 황룡비. 추사 김정희는 황룡비를 주로 임모했으며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 2021.3.26

서법도 중요하려니와 글자의 원형을 고구하는 데도 주안을 둬야 한다. 추사는 자신이 생각나는 대로 붓을 놀리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고법에 따라 정연하게 글씨를 썼다. 추사의 정연한 예서는 동한 시기 서협송(西狹頌)이라고 불리는 황룡비(黃龍碑)를 임모한 것이 주류다. 이것이 추사 임서(臨書)의 진면목이다. 때로는 일부 전문가라는 이들이 가짜라고 단정 지은 작품가운데 훌륭한 진품이 있으니 잘못된 감정이야말로 값진 문화재의 훼손이 아닐 수 없다.

갑골문자에서부터 한대 고비, 와당 등 여러 금석에 이르기까지 부단히 섭렵한 추사의 진묵을 가리려면 해박한 지식과 노력이 따라야 한다. 필자 또한 아직도 초보수준으로 밤새 공부해도 아는 것이 많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사계 제현의 질정을 바란다.

동한 조전비. 이번에 발견된 글자 중 가장 현대적 감각이 나타나는 '최야청'은 동한 조전비의 글씨와 비슷하다.(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 2021.3.26
동한 조전비. 이번에 발견된 글자 중 가장 현대적 감각이 나타나는 '최야청'은 동한 조전비의 글씨와 비슷하다.(제공: 이재준 전 충북도문화재위원) ⓒ천지일보 2021.3.26

추사 과천 초당의 제자 김석준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서예가. 자는 희보(姬保), 호는 소당(小棠)·효리재(孝里齋)·묵지도인(墨指道人)·연백당(硏白堂),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부친은 역관(譯官)인 김계운(金繼運)이며, 모친은 한양유씨(漢陽劉氏)로 유운길(劉運吉)의 딸이다. 당대에 명성을 떨친 서예가 김계술(金繼述)의 종질이며, 현기(玄錡)와 이상적(李尙迪)으로부터 시를 배웠고, 같은 역관이였던 오경석(吳慶錫)과 서화교류가 긴밀하였다. 역과(譯科)에 올라 역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래 만년에 벼슬이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는 것 이외에는 생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진 사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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