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유봉진, 강화 남구역 교인 모아3월 18일 독립만세 부르며 행진강화 각처에 군중 1만명 이상독립 위해 모두가 한마음 돼34살 유봉진(劉鳳鎭)은 전등사에 가까운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01번지에 살면서 은(銀)세공을 업으로 하고 있던 예수교 권사였다. 이전에 구한국 군인이었던 그는 조선독립을 간절히 바라며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자 했으나 안중근 의사에게 선수를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3월 8일 같은 길상면 선두리 출신으로 연희전문
독립운동 상징 서대문형무소감옥부터 사형장까지 보존돼독립 열망, 의지 느낄 수 있어[천지일보=임혜지 기자]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임정) 100주년이다. 100년을 맞는 만큼 그 역사의 시간을 되짚어 보고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시민들의 역사순례 기행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에서도 3.1운동, 임정 100년 역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경찰에 의해 수감됐던 곳, 서대문형무소(사적 제324호)다.기자는 환한 봄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지난 12일, 독립운동가를 감금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장지락, 영원히 잊혀질뻔한 독립운동가조국 위해 모든 것 던진 혁명가한국 정부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장지락(張志樂)이 중국 혁명의 수도 옌안에서 님웨일즈, 즉 헬렌 포스트 스노우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영원히 잊혀진 독립운동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잊혀질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였다. 남한에서는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그들이 숙청했던 옌안파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가 한국 독립운동의 방편으로서 신명을 바쳐 헌신했던 공산혁명 중국에서는 스파이 혐의로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님 웨일즈(Nym Wales)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장지락)을 주인공으로 한 ‘아리랑’이란 책 저자로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진 미국의 여류 언론인이자 작가이다. 그녀의 남편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는 ‘중국의 붉은 별(1937)’이라는 책을 써서 서방세계에 처음으로 1930년대 중국 대륙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공산혁명과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등 지도자들에 대해 알렸다.마오가 이끄는 혁명세력은 중국 남부 농촌지역에서 세력을 키워가다가 장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언론은 대중소통의 중요 수단이다. 국가의 주권이 침해당하고 국가의 기능이 위축된 상황에서 언론은 국권회복운동에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데 더욱 중요하다. ‘황성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는 한말 애국계몽과 국권회복운동에 그러한 역할을 했었다. 1910년 일제가 강제병합을 한 이후 조선총독부 어용신문 ’매일신보‘ 외에 한국인의 모든 신문‧잡지는 폐간되었다. 깜깜한 암흑시대가 시작된 것이다.TV는 물론 라디오 방송도 없었던 3.1운동의 시간 중에 대중과의 소통을 위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2018년 11월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이 되는 달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오스만 제국(현 터키 전신)이 동맹하여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1917~1918), 일본 등 연합국을 상대로 벌인 세계전쟁이다.1914년 7월 28일 일어나 꼭 100년 전인 1918년 11월 11일까지 4년 3개월 2주일 동안 전개된 이 전쟁은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와 태평양 제도, 중국 산동반도 등 동서양 각지에서 벌어진 역사상 최초의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한 한 조선인 안중근이 만주 하얼빈 역에 잠입했다. 오전 9시 30분께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열차에서 내려 러시아 사열을 받았다. “탕. 탕. 탕.”일본인들 틈에 섞인 안중근은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브라우닝제 반자동권총 M1900으로 저격했다. 안중근이 쏜 일곱발 중 세발은 수행비서관 모리 타이지로우(森泰二郞), 하얼빈 주재 일본 제국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안동현에서 횡도촌은 5백리가 넘는지라. 입춘이 지났어도 만주 추위는 조선 대소한(大小寒) 추위는 비(比:비교)치도 못하는 추위이다. 노소 없이 추위를 참고, 새벽 4시만 되면 각각 정한 차주(車主: 수레 주인)는 길을 재촉해 떠난다.”‘서간도 시종기(始終記)’는 유명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1876~1930) 선생의 아내 이은숙 여사의 회고록이다. 위의 내용은 1911년 1월 9일 독립운동 기지개척을 위해 우당 선생 6형제가 전 재산을 팔아 압록강 건너 안동현에서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헌법이란 그 나라 국가와 국민이 함께 추구할 가치와 사회 운영 원칙을 담은 국가의 최고법이다. 지난 7월은 대한민국 입헌민주정치 70주년 기념의 달이었다.배경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광복을 맞았다. 이전의 대한제국은 일본의 강제병합으로 35년 전에 사라졌다. 3.1운동 이후 중국 땅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해방의 순간까지 있었으나, 막상 해방이 되자 건국의 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미국 소련 등이 승인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김태규, 3대째 교역자 배출한 기독교 집안 출신한국의 요단강 세례 때 개종한 김이련의 손자父 김병농 목사, 장로교 개척사의 중요한 인물김태규․박애신, 결혼 앞두고 3.1운동 일어나시아버지 이어 신랑 김태규 옥바라지까지독립운동하는 남편 생각하며 모진 고생 참아1919년 3월 1일 3.1운동이 일어나던 그날 아침 서울의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출발한 안동행 첫차가 밤이 이슥해서야 압록강 철교를 건너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린 개성 남문교회 전도사 김지환(金智煥)이 주변을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독립운동가 김필순의 아들 김염아버지 죽음으로 시작된 더부살이영화배우 꿈꾸며 상하이로 건너가중국에서 ‘영화 황제’ 칭호 얻기도중일합작 영화에 출연 강요 ‘거절’중일전쟁 후 상하이에 극단 조직김염(金焰, 중국발음 진옌)은 소래마을 출신 최초의 근대 의사 김필순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김필순이 만주 서북부 치치하얼에서 1919년 9월 1일 41세의 나이에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그는 10살이었다.생전의 아버지는 병원을 하여 번 돈 전부를 독립운동에 썼다. 끝이 보이지
역사는 기록된다. 역사는 미래를 바라볼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겨진 유물은 그 당시 상황을 말해 주며 후대에 전해진다. 이 같은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 보관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장소가 박물관이다. 이와 관련, ‘이달에 만나본 박물관’ 연재 기사를 통해 박물관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한글창제 원리 훈민정음 보호일제 우리말 말살정책에 저항민족교육 요람 보성학교 보존독립정신 바탕 문화유산 수집[천지일보=손성환 기자] K-POP 그룹 방탄소년단(BTS) 등으로 인해 외국인들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달 초에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서상륜-서경조 형제, 소래마을서 전도1884년, 주민들 초가집 예배당 마련공식 선교사 입국 전 세운 ‘솔내교회'한글성경은 한국의 기독교 신앙뿐만 아니라 개화와 문맹퇴치에 큰 기여를 하였다. 최초의 성경 번역은 포르투갈 또는 프랑스 신부가 중국에서 4복음서의 구절을 발췌하여 해석을 붙인 모습으로 나왔다. 성경 자체를 온전하게 번역하여 펴낸 최초의 것은 1882년에 만주에서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가 주관하는 가운데 서상륜, 백홍준 등이 번역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이며, 3
강원도 홍천군 통쾌한타격 ‘비비탄 서바이벌’7가지 경치 즐기는 ‘플라잉짚’가리산레포츠파크서 일상 탈출뛰고 소리치니 ‘스트레스 탈탈’[천지일보=이승연 기자] 서 있기만 해도 땀방울이 주르륵 흐르는 폭염. ‘미션을 완수하세요’라는 명령과 함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전투 음악이 서바이벌장을 가득 메운다. 투명 고글이 장착된 헬멧에 방탄조끼까지 갖춰 입고 있었지만 긴장감에 폭염은 잠시 머릿속에서 잊힐 정도다. 몸을 한껏 낮추고 적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탕탕탕, 탕탕탕탕’ 비비탄 총알이 사정없이 날아든다.빠르게 탄약고에 몸을 숨기자
글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 김필순 형제, 집안의 노비들 해방배재학당 졸업 후 통역•교수 활동안창호에 신민회 비밀본부 내줘 간도 통화현으로 건너가 병원 개업헤이룽장성으로 옮겨 독립군 도와일본 첩자에 의한 독살로 생 마감외국 선교사들이 황해도 장연의 소래마을에 오면 신약성경을 번역했던 서상륜, 서경조 형제의 집이나 김판서 댁이라 불리는 김윤오(金允五, 容淳)의 집 사랑채에 묵었다. 김윤오 집안은 서울에서 큰 부자로 살다 고조부 대에 낙향하여 소 60마리를 도지로 주었고, 소래마을 불타산 앞 부채꼴
이정은 박사, (사)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사)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1915년 4월 독일, 영국군에게 최초로 독가스 사용1916년 6월 영국, 솜(Somme) 전투에서 18대의 전차 등장승전국 일본, 우리 독립운동 입장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1914년 6월 28일 발칸반도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 거리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 총격으로 오스트리아군의 대연습을 참관하기 위해 사라예보를 방문하던 오스트리아-항가리제국의 황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 대공과 조피 대공비가 숨졌다.
“평양의 명소 연광정에서 대동강을 끼고 부벽루에 오르다 보면 한-양옥 절충의 우람한 조선집이 나타난다. 아름드리 기둥에는 주홍칠을 하고 벽마다 그림을 그려놓은 이 집이 당시 팔도에 유일했던 평양 기생학교다.” -이규태 역사 에세이 中- “놀이터의 노래에 목이 쉬어/ 돌아와서 화가 나 함부로 뜯는 가야금이여 줄이 끊어지도록 뜯으며/ 뜯으며 이 밤을 새일 거나” - 놀이터의 노래에, 장연화(1920년대 평양기생)-[천지일보=백은영 기자] 한옥과 양옥을 절충한 듯한 모습의 평양기생학교 전경이다.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곳답게 건물이 크고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평양’하면 ‘냉면’이라는 말이 떠오르듯, 그리 멀지 않던 과거에는 ‘평양’하면 ‘기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기생 혹은 기녀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도 만연하지만, 당시 기생은 춤과 노래뿐 아니라 시서화(詩書畵)에 능해 고관대작이나 상류층 인사들과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거문고와 가야금 등 악기를 다루는 것에도 능해, 교양 정도에 따라 명기(名技)로 알려진 초일류 기생들도 많았다. 또한 기생을 ‘말을 할 줄 아는 꽃’ 즉 ‘해어화(解語花)’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그들
건축물마다 검소한 기풍 눈길퇴계 품격·선비정신 서려 있어입구 길목엔 공자 후손 기념비[천지일보=임문식 기자] 낙동강 상류가 유유히 흐르는 안동호가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영지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아늑한 골짜기엔 우리 정신문화의 성지인 도산서원(陶山書院)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옛날 유학자들이 낙동강물을 내려다보며 시상을 떠올렸을 법한 그 자리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도산서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유학자이자 선비인 퇴계 이황 선생의 흔적이 서린 곳이다. 퇴계 선생은 1561년(명종 16) 도산서당을 건립해 후학들을 가르쳤
일제 ‘조선신궁’ 설치됐던 남산3.1운동기념탑서 백범광장까지피나는 독립운동사 고스란히호국영령에 제사 지내던 장충단일제, 일본인 추모 시설로 바꿔민족정기 말살 현장 생생히 증언[천지일보=임문식 기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의 혼을 느끼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싶다면 서울의 명소 남산으로 떠나자.남산은 일제 때 신사참배의 본거지인 ‘조선신궁’이 설치됐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중구청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인 ‘이야기따라걷는중구’ 남산 스토리 코스는 호국정신을 주제로 한 도보 여행길을 소개하고 있다.남산 스토리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