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횃불 든 유관순, 태극기 든 안중근… 남산서 만난 호국영웅들
[쉼표] 횃불 든 유관순, 태극기 든 안중근… 남산서 만난 호국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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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조선신궁’ 설치됐던 남산
3.1운동기념탑서 백범광장까지
피나는 독립운동사 고스란히

호국영령에 제사 지내던 장충단
일제, 일본인 추모 시설로 바꿔
민족정기 말살 현장 생생히 증언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의 혼을 느끼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싶다면 서울의 명소 남산으로 떠나자.

남산은 일제 때 신사참배의 본거지인 ‘조선신궁’이 설치됐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중구청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인 ‘이야기따라걷는중구’ 남산 스토리 코스는 호국정신을 주제로 한 도보 여행길을 소개하고 있다.

남산 스토리 코스는 총 5.57km다. 3.1독립운동 기념탑→유관순 열사 동상→장충단공원→남산골 한옥마을→남산케이블카→남산봉수대/N서울타워→안중근의사기념관→백범광장으로 코스가 이어진다. 무리가 있는 거리는 아니다. 걸어서 움직일 만하다. 안내 홈페이지엔 85분이 걸린다고 한다.

3.1독립운동기념탑. ⓒ천지일보(뉴스천지)
3.1독립운동기념탑. ⓒ천지일보(뉴스천지)

◆3.1독립운동기념탑

코스 시작점은 3.1독립운동기념탑이다. 남산공원 내 국립극장 바로 아래 있다.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지배에 저항해 한민족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만세운동을 벌인 것을 기념해, 1999년 3월 1일 만세운동 80주년을 맞아 건립됐다. 비가 내리고 추운 날씨 속에서도 기념탑의 자태는 의연했다. 높이는 19.1m.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의미한다.

기단(基壇) 오석판(烏石板)에는 비폭력 평화운동정신인 3·1독립선언서를 새겼다. 전면에는 원문, 좌·우측에는 한글 및 영문, 뒷면에는 기념탑 건립 취지문과 건립 개요, 헌시를 새겼다. 기념탑에는 하늘(天)·땅(地)·사람(人)과 천도교, 기독교, 불교 연합의 상징인 3개의 기둥축을 세워 우주를 의미하는 삼태극(三太極)을 원구로 구성하고, 그 위에 동서남북 4방위를 조형화하여 우주로 비상하는 민족웅비(民族雄飛)의 상을 설치했다.

기념탑 주변의 소나무들이 모습이 특이했다. 기념탑쪽으로 하나같이 구부러진 모양이 마치 기념탑을 참배하는 듯했다.

유관순열사 동상. ⓒ천지일보(뉴스천지)
유관순열사 동상. ⓒ천지일보(뉴스천지)

◆유관순열사 동상

3.1독립운동기념탑을 지나 아래 쪽으로 더 내려가면 유관순 열사 동상이 보인다. 유관순 열사는 17세의 나이로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다. 동상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 주관으로 1970년 태평로에 건립됐다가 1971년 현재의 장충동 남산공원 장충자락으로 이전됐다.

동상의 유 열사는 횃불을 든 모습을 하고 있다. 일제로부터 독립하겠다는 민족의 간절한 염원이다. 동상 기둥엔 남녀 독립운동가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거나, 일본 경찰에 체포돼 밧줄에 묶인 모습 등이 6개의 부조(斧藻)로 그려졌다.

장충단 공원. ⓒ천지일보(뉴스천지)
장충단 공원의 수표교. ⓒ천지일보(뉴스천지)

◆장충단 공원

장충단은 을미사변과 임오군란, 갑신정변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과 충신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1900년부터 매년 봄과 가을마다 제사를 지냈으나, 1908년부터는 일제로부터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압력에 직면했다. 결국 1910년 장충단 제사는 폐지되고, 1919년 공원으로 개원했다. 일제는 장충단 공원에 운동장을 만들고,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뿐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한 사찰인 박문사도 지었으며, 일본군 영웅의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한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책략인 셈이다. 일제가 장충단 공원에 세운 동상과 건물은 광복 후 모두 철거됐다.

공원 안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장충단비와 수표교를 비롯해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이준열사 동상, 만해 한용운 시비, 사명대사 동상 등도 있어 민족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공원으로는 안성마춤이다.

남산골 한옥마을. ⓒ천지일보(뉴스천지)
남산골 한옥마을. ⓒ천지일보(뉴스천지)

◆남산골 한옥마을

한국의 옛 주거지 모습을 간직한 남산골 한옥마을은 서울 도심 속에서도 전통의 멋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1998년 조성된 남산골 한옥마을은 한옥 5동, 전통공예관, 천우각, 전통정원, 서울남산국악당, 서울천년 타임캡슐광장으로 구성됐다.

한옥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연못 청학지와 그 곁으로 천우각이 있다. 한옥은 모두 다섯 채다. 삼각동 도편수 이승업 가옥, 삼청동 오위장 김춘영 가옥, 관훈동 민씨 가옥,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옥인동 윤씨 가옥이 있다. 과거 서울 곳곳에 있던 한옥을 이전·복원한 것이다. 아주 낡은 옥인동 윤씨 가옥을 제외하고, 나머지 가옥들은 원래 집 부재 그대로 이전했다고 한다.

남산 케이블카에서 남산을 내려다본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남산 케이블카에서 남산을 내려다본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남산 케이블카

남산 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라갈 수 있는 교통수단은 단연 남산 케이블카다. 1962년 운행을 시작한 한국 최초의 여객용 케이블카다. 대인 기준 왕복 티켓은 8500원, 편도 티켓은 6000원이다. 36개월 유아에서 초등학생까지는 각각 5500원, 3500원이다. 케이블카는 10분마다 출발한다. 케이블카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산 아래 풍경이 순식간에 눈에 들어온다. 산 중턱 쯤 올라가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펼쳐졌다. 같이 탑승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동영상으로 촬영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남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605m다. 초속 약 3m로 움직이는 케이블카는 3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남산봉수대. ⓒ천지일보(뉴스천지)
남산봉수대. ⓒ천지일보(뉴스천지)

◆남산봉수대 / N서울타워

남산에 오르는 수고를 생략(?)하고 도착한 정상엔 봉수대 터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팔각정 옆에 위치한 봉수대는 1394년에 만들어져 1895년까지 사용됐다. 원래 남산에 5개소가 있었는데, 1개소만 복원돼 지금의 자리에 있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봉수 제도는 국가의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변방의 긴급한 소식을 중앙이나 지방 기지에 알리는 동시에 해당지방의 주민에게 알려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사용됐다. 횃불과 연기를 이용했던 봉수 제도는 해상과 육상을 구별해 해상의 경우 평상시에는 1거, 왜적이 해중에 나타나면 2거, 해안에 가까이 오면 3거, 접전 시에는 4거, 육지로 침입하면 5거로 했다. 육지의 경우는 적이 국경 밖에 나타나면 2거, 변경에 가까이 오면 3거, 국경을 침범하면 4거, 접전 시에는 5거를 올리도록 했다. 봉수대는 갑오개혁 다음 해인 1895년, 전화가 도입되면서 사용이 폐지됐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천지일보(뉴스천지)
안중근의사 기념관의 안중근 의사 모형. ⓒ천지일보(뉴스천지)

◆안중근의사 기념관

N서울타워에서 산책로를 따라 남산도서관 방향으로 내려가면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옆에 안중근 의사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직후 태극기를 펼친 모습이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제국 말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민족의 영웅이다. 2010년 새로 건립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안 의사의 단지 동맹을 상징하는 12기둥 형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전시실엔 안 의사의 출생과 성장 과정에서부터 항일운동과 하얼빈 의거, 이토 히로부미 처단과 순국 등 안 의사의 생애 전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지하 1층 제1전시실은 안 의사의 국내 교육활동과 국채보상운동 전개 등 국내 활동 모습을 담고 있다. 안 의사를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인 참배홀도 있다.

1층에 마련된 제2전시실은 안 의사의 해외활동과 의병투쟁 과정을 자세히 담았다. 안 의사가 거사를 치르기 전 11명의 동지들과 손가락 절단으로 단지동맹을 맺은 동의단지회도 눈길을 끈다. 모형으로 된 단지도 볼 수 있다.

2층에 있는 제3전시실에선 하얼빈 의거 순간을 담은 모형과 함께 안 의사의 법정투쟁과 옥중 집필 활동, 순국 순간까지 보여주고 있다.

백범광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백범광장의 백범 김구 동상. ⓒ천지일보(뉴스천지)

◆백범광장

백범광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백범(白凡) 김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1968년 8월 건립됐다. 남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산중턱에 자리잡은 이곳은 원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동상이 있던 자리였다. 4·19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허물고 1968년 8월 백범광장을 조성했다.

김구 선생은 청년시절부터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일본군에 쫓겨 만주로 피신해 의병단에 가입했고, 3·1운동 후에는 중국 상하이[上海]의 임시정부에 참여했다. 광복 후인 1949년 암살됐다.

백범광장 안에는 백범 김구 동상, 김유신 장군 기마상, 성재 이시영 동상, 조지훈 시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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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숙 2017-12-11 15:43:22
이분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 나라가 있는겁니다 고맙고 자랑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