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지난달 필자는 여성들이 가장 존중받고 살았던 신라국 고도 경주를 다녀왔다. 선덕여왕과 관련 있는 ‘향가’ 취재를 위해서였다. 향가 제목은 ‘풍요(風謠)’로서 영묘사(靈妙寺)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묘사는 바로 선덕여왕이 세운 절로 알려진 유적으로 본래는 신라 불교의 시원지인 이차돈의 순교지 흥륜사다.왜 신라 사람들은 이 향가를 ‘바람의 노래’라고 했을까. 풍요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라 가요다. 지은이를 알 수 없으나 양지(良志)가 영묘사의 장육존상(丈六尊像)을 만들 때 부역 온 성내 남녀들이 불렀다는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주선 이백은 겨울이 싫었다. 추위로 방안에 갇혀 사는 일상이 즐겁지 않았던 것인가. 따사로운 봄, 복숭아꽃 피는 도원경과 호수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시인의 기대는 꽃 피는 봄이었다. ‘춘야 봄밤 도리원에서’란 시에는 시인의 심경이 짙게 나타나 있다.‘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네/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 덧없는 인생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림이 얼마인가/ 옛 사람이 촛불을 잡고 밤놀이를 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네/ 따뜻한 봄날은 안개 낀 경치로 나를 부르고/ 대지는 나에게 문장을 빌려줌에랴…(하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태화관(泰和館)에 모인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서를 읽었다. 육당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 그 첫머리는 바로 ‘오호 애재라’였다. 이 뜻은 ‘아 슬프도다’가 아닌가.1백여년 전 일제 강점기 식민지가 돼 자유가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이 내뱉은 호소는 ‘슬프도다’였다. 민족적 비통함이 뼈에 사무친 절규였다.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는데 왜 필자는 3.1 기미독립선언문구 첫 머리를 다시 되뇌이고 싶은 심경인가. 이런 감정이 필자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중국 고대 동진시기 축영대 미인의 설화는 남장 여인의 비련을 담고 있다. 여자들은 공부를 깊게 할 수 없어 미인은 남장을 하고 서원에 입학해 양산백이라는 청년을 만난다. 양산백은 그녀가 여자인 줄 모르고 친숙한 벗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여자는 사랑의 감정이 생겨 자신의 여동생이 있는데 소개해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그러나 집안에서 혼사를 주관한 양산백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됐다. 그가 현령이 돼 임지로 가는 날 여자는 자결해 남자가 지나는 길에 무덤에 묻혔다. 광풍이 불어 양산백이 말에서 내려 잠시 쉬는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통영에 살던 한 꼬막 채취 어부는 1973년 북한 경비정에 납북됐다. 그는 30년 동안 북한에서 살다 탈출, 지난 2003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납북 당시 생후 백일도 안된 딸은 어엿한 성년이 됐고 꽃 같았던 아내는 중년의 나이가 됐다.고향에 돌아온 기쁨도 잠시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의 생사가 걱정됐다. 북한당국은 그를 강제노역에 종사시키면서 정착하도록 결혼을 시켰다.30년을 북한에 살았으니 자식도 생겼다. 어부는 북한을 탈출하면서 북한 아내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딸을 두고는 혼자 갈 수 없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삼성그룹을 세계 1위 기업으로 키운 고(故) 이건희 회장에 대한 새 칭호가 눈길을 끈다. 유력 경제학자들이 바로 고인을 ‘경제사상가’로 호칭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 경영자 가운데 ‘사상가’라고 지칭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미국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로저 마틴 교수는 고인을 ‘전략 이론가(Strategy Theorist)’이며 ‘통합적 사상가(Integrative Thinker)’였다고 평했다. ‘이 회장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보유한 전략 이론가였으며, 통합적 사고를 기반으로 창의적 해결책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정치를 하는 데는 진실이나 정의가 반드시 민심을 지배하지 못한다.’ 그만큼 민심 얻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지난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 보선에서 공익제보자 여당 김태우 후보가 정치 초년생이며 경찰 간부 출신인 민주당 진교안 후보에게 큰 표 차로 패배했다.이번 총선은 여야 사활을 걸다시피 한 총력 대결로 비쳤다. 그래도 여당은 이재명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기대를 하고 김 후보를 특별 사면하면서까지 재출마시켰다. 이것이 국민에게 첫째 독선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 아닌가.여당이 패배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후 법적으로 공용화한 것은 459년 후인 대한제국 고종 9년(광무) 1905년이었다. 고종황제는 칙명을 통해 모든 관공서의 공문이나 서식을 한글로 쓰라고 명을 내렸다.언문이라고 비하해 안방 여인들의 내간으로만 사용하던 한글이 제대로 국문으로 대접을 받은 것이다. 우리글이면서 역대 임금들의 유시나 선비들의 상소, 저서에 한글 쓰기를 꺼려 했다.그런데 첫 한글 공용 이후 조선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바로 비분강개한 충정공 민영환공의 자결이었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한국의 산천을 답사하다 보면 무릉리, 도원리라고 하는 이름이 많다. 굽어진 강을 끼고 높이 솟은 산, 봄이면 복숭아꽃이 피는 곳에는 이런 이름이 붙어있다. 충북 괴산 청천면 도원리에는 삼국시대 큰 절터가 있다. 마을 입구에 긴 장대석에는 옛날 사람들이 ‘무릉’ ‘도원’이라는 한문 표지석까지 만들어 놓았다.무릉도원이라는 표현은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처음 지은 글이다. 한 어부가 꿈속에 배를 타고 동굴에 들어갔는데 복숭아꽃이 만발한 신비한 마을을 발견한다. 그곳은 세상과 다른 풍경이었으며 사람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삼국 중 가장 문화가 발전했던 백제의 멸망은 지금도 아쉽기만 하다. 마지막 의자왕은 신라군이 탄현을 넘고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대군이 기벌포에 상륙할 때까지 왕도 사비가 무너지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부여는 그리 높지 않은 부소산 남록에 형성된 도시다. 사방을 백마강이 에워싸고 있지만 동쪽 능사가 있는 동쪽이 취약하다. 이곳에 긴 나성을 쌓았지만 신라군 5만 대군을 막기에는 너무 취약했다.그래서 충신 성충은 동쪽 탄현을 지칭하며 백제군이 절대 넘지 못하도록 간언한다. 그러나 의자왕은 공연한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우리 사회에서 스승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도대체 이 나라는 자식들만 중요하고 학교 선생님들은 발등의 때만도 못한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한 학부모는 ‘우리 아들은 왕의 기상을 타고났으니 왕처럼 예우해 주고 말도 공순하게 해 달라’는 특별한 사신까지 썼다.세상에 자기 자식이 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을까. 한 자녀를 키우는 대부분 가정에서는 엄마들의 애정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딸이 중하면 선생님도 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선생님들도 모두 귀한 가정의 자녀로 태어나 열심히 공부해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단식’은 생명의 원천인 곡기를 끊는 행위다. 죽음까지 각오하는 극단적인 투쟁방법의 하나다. 우리 역사를 보면 단식으로 죽은 충절 인물이나 애국지사가 많다. 일제 강점기에는 강직한 유림들이 일제에 대한 항거의사로 단식, 목숨을 버렸다.강원도 횡성이 고향인 이반계(李攀桂)는 고려 말 예부상서를 지낸 인물. 조선이 개국하자 두문동(杜門洞)에 숨은 72현 중 한 분으로 원주 치악산 사전리에 은거했다.태종이 총애해 우의정으로 불렀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다. 왕의 행차가 집 앞에 당도했을 때 마중 나가지 않고 곡기를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이판사판’이란 막다른 지경에서 어찌할 수 없게 된 형편을 뜻하는 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삶이 어렵다 보니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 듯한 절박한 사람들이 횡행하는 이판사판 풍속도를 보여주고 있다.‘이판사판’이란 본래 불가의 설화에서 생겨난 말이다. ‘이판(理判)’은 불가에 입문해 도를 닦는 일을 말하며 스님을 ‘이판승’이라고 한다. ‘사판(事判)’은 ‘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스님을 가리킨다. 이 일을 수행하는 승려를 ‘사판승’이라고 한다. ‘이판’ ‘사판’은 사찰을 운영하는 데 있어 효율적인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우리 역사에서 생전과 사후에 ‘성왕(聖王)’이라고 불리는 분은 백제 성왕뿐이다. 성왕은 왜 생전에도 백성들로 하여금 성왕이라고 불렸을까. 성왕은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줄인 말로 불교 흥업의 제왕에게 붙여주는 최고의 호칭이다.전륜성왕은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야 왕조시대 아쇼카왕(Asoka)을 지칭한다. 비폭력으로 국토를 통일하고 가장 강력한 불교정토를 이룩한 영웅이다.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전륜성왕이 되고자 했던 왕이 많다. 신라진흥왕도 두 아들의 이름까지 전륜성왕의 아들 이름을 따랐다. 황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대한민국은 역경에 강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는 힘이 있다. 국가존망의 위험 속에서도 반전을 이룬 역사가 많으며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힘차게 일어선 경우도 많다.6.25 동족 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못살았던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선진국이 되지 않았나. 한국민은 실패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DNA를 가진 강인하고 멋진 민족임이 분명하다.그동안 말도 많고 세계로부터 준비 소홀로 질타를 받던 잼버리 대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태풍 카눈 덕분인가. 세계 잼버리 청소년들은 새만금을 탈출, 전국으로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지금 부안 잼버리대회의 실패는 국정 난맥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세계대회가 왜 가장 더운 시기에 하면서 나무 그늘 하나 없는 새만금으로 결정됐는지, 과거 정부가 경쟁도인 강원도를 배제하고 호남 우선 원칙의 시혜로 결정됐는지, 사전 충분한 도상 훈련 없이 적당주의로 강행했는지 따져볼 일이다.K-팝 신드롬으로 대한민국을 동경하고 아름다운 경치, 음식문화를 즐기러 온 세계 청소년들에게 쉽게 씻지 못할 충격과 실망을 줬다. 그늘막 하나 없는 초원, 37도를 웃도는 기온으로 천막 안은 가마솥이다. 배수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회초리는 한자로 ‘편태(鞭笞)’라고 쓴다.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드는 매’라 하여 회초리(回初理)가 됐다는 설도 있다. 회초리 하면 생각나는 고사의 주인공은 중국 한나라 때 효자 한백유가 아닌가 싶다.그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한테 회초리를 맞고 자랐다. 장성한 어느 날 맞은 회초리가 아프지 않았다. 백유는 어머니를 보고 슬피 울었다. 어머니가 이유를 묻자 효자는 어머니의 힘이 전보다 쇠약해진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아버지를 뜻하는 한자 ‘父(부)’도 한 손에 회초리를 든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학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우리나라 관광지가 지속된 불황으로 시름을 앓고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관광지마다 빛을 잃은 탓인지 침체국면이 심각하다. 3년여 코로나 여파로 피해를 입은 많은 지역이 아직도 회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중국도 들리는 소식은 심각하다. 유명 관광지의 행렬이 줄어들고 썰렁한 곳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인들이 큰 고객인 북경 상해 항주 등 대도시 골동시장도 폐업한 곳이 많다. 지금 도자기를 굽고 있는 최대 도자기 생산 지역인 경덕진의 상황이 궁금하다.중국의 불황이 동남아 관광시장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경청(傾聽)’이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이 우리 사회에 화두로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삼성 고 이건희 회장이 자녀들에게 ‘경청’이라 쓴 글씨를 나눠주며 특별히 당부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그런데 삼성그룹 연구소가 조직 내에서 ‘경청’의 긍정적 효과를 조사했는데 재미난 결과가 나왔다. 직장인 중 지시만 받고 일하는 경우 48%가 업무에 열의가 없으며, 완전히 몰입하는 경우는 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리더의 말에 절대 복종적 자세를 지닌 조직은 그만큼 능률도 안 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16년 전 공군 조종사로 근무하다 순직한 아들을 둔 엄마는 매일 같이 눈물로 시간을 보냈다. 남편마저 아들처럼 조국에 바친 탓에 슬픔은 더욱 컸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흐른 며칠 전 아들이 꿈처럼 살아 돌아왔다. 아들의 첫 말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엄마 인철이요. 보고 싶었어요… 엄마.”TV에서 이를 지켜본 많은 국민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의 KF-16 전투기 조종사였던 고 박인철 소령. 박 소령은 순직할 당시 꿈을 키우던 27세 나이였다. 그는 2007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