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은 역경에 강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는 힘이 있다. 국가존망의 위험 속에서도 반전을 이룬 역사가 많으며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힘차게 일어선 경우도 많다.

6.25 동족 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못살았던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선진국이 되지 않았나. 한국민은 실패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DNA를 가진 강인하고 멋진 민족임이 분명하다.

그동안 말도 많고 세계로부터 준비 소홀로 질타를 받던 잼버리 대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태풍 카눈 덕분인가. 세계 잼버리 청소년들은 새만금을 탈출, 전국으로 분산되면서 그래도 남은 며칠 한국의 전통문화와 인정을 체험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최고의 압권은 마지막 날 상암구장에 집합한 4만여 잼버리를 위한 K팝 공연이었다.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이날 축제에서는 K팝 가수들이 나올 때마다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고 야광등을 흔들었다.

‘아이 저스트 원 츄 콜 마이 폰 롸잇 나우(I just want you call my phone right now~지금 당장 내 핸드폰으로 전화해줘)’ 아이돌 그룹 뉴진스가 히트곡 하입보이(Hype Boy)의 유명한 후렴구를 부르기 시작하자 스카우트 단원 4만명의 떼창이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세계 잼버리 청소년들의 얼굴에는 초반 새만금의 힘겨운 빛은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이들은 한국에 대한 감동을 잊지 않겠으며 다시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아흐메드 알헨다위 세계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은 폐영식에서 ‘그 어떤 잼버리 여정에서도 이렇게 많은 도전과 극한의 기상 환경을 맞은 적이 없다. 도전에 맞서 창의력과 회복력을 보여준 이 경험이 더욱 값지다. 우리는 되돌아왔고, 잼버리는 재결합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독일, 호주, 스페인,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위스, 영국 등 여러 나라도 잼버리 폐영 이후에 한국에 더 머물며 문화체험을 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K-팝 등 한류가 서구 선진국 청소년들에게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가 며칠 사이 이런 기적적인 위기 대응능력을 연출할 수 있을까. 태풍 카눈을 극복하고 대회를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은 희생적인 공직자들과 대기업, 자원봉사자 등 국민들의 애국적인 협력의 소산이다.

전라북도 인근 지자체가 발 벗고 나섰으며 기업들도 적극 참여, 각종 물품을 지원했다. 국가적 위기로 보고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윤 대통령의 단호한 결단과 한덕수 총리가 현장을 떠나지 않고 보여준 세심함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듯하다. 새만금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총리가 직접 청소하는 모습을 공직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공직자들은 한 총리의 이런 겸허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군수, 시장, 도지사, 장관들도 권위만 찾지 말고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진정한 공복 자세가 어떤 것인가를 자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제 대회가 끝났으니 냉철하게 뒤돌아봐야 할 시간이다. 특히 주무 관서인 지방자치단체의 활동영역에 관한 평가와 감사가 있어야 한다. 천문학적 혈세가 제대로 집행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부정이 밝혀지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잼버리 같은 국제 행사를 치르면서 국가 체면을 구기는 모양새는 답습하지 않아야 겠다’는 반성이 있어야만 한다.

이번 대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음에 치러질 국제 행사는 더 정밀한 준비와 사전 점검이 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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