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단식’은 생명의 원천인 곡기를 끊는 행위다. 죽음까지 각오하는 극단적인 투쟁방법의 하나다. 우리 역사를 보면 단식으로 죽은 충절 인물이나 애국지사가 많다. 일제 강점기에는 강직한 유림들이 일제에 대한 항거의사로 단식, 목숨을 버렸다.

강원도 횡성이 고향인 이반계(李攀桂)는 고려 말 예부상서를 지낸 인물. 조선이 개국하자 두문동(杜門洞)에 숨은 72현 중 한 분으로 원주 치악산 사전리에 은거했다.

태종이 총애해 우의정으로 불렀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다. 왕의 행차가 집 앞에 당도했을 때 마중 나가지 않고 곡기를 끊어 목숨을 버렸다. 태종이 절의를 가상히 여겨 경원군(慶原君)을 봉작했다고 한다.

한말 면암 최익현 선생은 의병을 일으키다 일본 관헌에게 체포돼 대마도로 압송됐다. 선생은 일본 간수가 주는 밥을 먹지 않았다. 면암은 며칠을 버티다 그만 옥중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청주 낭성면 유학자였던 소당 김제환 선생은 한일합방 때 곡기를 끊고 세상을 버렸다. 제자들은 선생의 죽음을 의로운 ‘단식 절사’라고 애도했다.

단식으로 열녀의 길을 택한 여인들이 많다. 안동 임동면 속리에는 의성김씨 열녀각이 있다. 그녀는 임진 전쟁 때 의병을 일으킨 학봉 김성일의 누이로 남편이 죽자 음식을 전폐해 목숨을 잃었다.

조선 선조 때 송강 정철은 전라감사 시절 강아라는 남원 기생을 사랑했다. 송강의 ‘강’과 아기씨 ‘아자’를 따 ‘강아’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 송강은 그녀의 얼굴이 아름다워 ‘자미화’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송강은 강아가 있는 남원을 자주 찾았다. 송강이 변방으로 좌천을 당했을 때는 강아가 남장을 하고 만나러 갔다. 여인들의 외지출입이 어려웠던 시대였으나 강아의 송강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다.

송강이 후에 세상을 떠나자 강아는 지금의 연인의 고향인 고양으로 온다. 그리고 묘소에서 움막을 짓고 풀을 뽑으며 살았다. 그런데 강아는 아픈 가슴을 억제하지 못하고 곡기를 끊었다.

그녀는 수일 동안 단식을 하다 묘소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송강의 유족들이 무덤에서 죽은 강아를 보고 열녀라 칭송하고 송강 묘소 곁에 무덤을 만들어 줬다.

이재명 야당 대표가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단식 이유를 ‘현 정권의 퇴행과 폭주’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뜬금없는 단식이 자신에 대한 구속영장을 피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 나라 사정이 일제 강점기 같은 상황인가. 현 정부가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독재 정권인가. 국회다수당으로 야당을 탄압하고 무리하게 국정을 추진하고 있는가.

독주와 폭주라는 지칭은 반대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들어야 하지 않을까.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의원 감싸기에 급급하다. 헌정사에 지금의 야당과 같은 이미지가 실추된 정당을 본적이 없다.

정치인의 단식이 의롭게 보이려면 투쟁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지금 이 대표는 성남시절 엄청나게 많은 불법혐의 등으로 법의 심판대에 서 있다. 검찰은 곧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소리가 들린다.

야당 대표가 굳이 단식을 한다면 ‘사즉생’ 각오가 서야 한다. 저녁 10시면 귀가하는 ‘단식 쇼’라면 국민들에게 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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