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주선 이백은 겨울이 싫었다. 추위로 방안에 갇혀 사는 일상이 즐겁지 않았던 것인가. 따사로운 봄, 복숭아꽃 피는 도원경과 호수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시인의 기대는 꽃 피는 봄이었다. ‘춘야 봄밤 도리원에서’란 시에는 시인의 심경이 짙게 나타나 있다.

‘무릇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네/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 덧없는 인생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림이 얼마인가/ 옛 사람이 촛불을 잡고 밤놀이를 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네/ 따뜻한 봄날은 안개 낀 경치로 나를 부르고/ 대지는 나에게 문장을 빌려줌에랴…(하략).’

두보(杜甫)도 겨울이면 매양 그리워한 것이 봄이다. ‘겨울 풍경’이라는 시를 보면 첫머리부터 봄에 대한 동경이 넘친다. 그는 매화가 피어나는 봄을 상상하며 술을 마셨다.

‘하늘의 운이나 인간의 일이나 나날이 바뀌지만/ 동지에 양기가 생겨나니 봄은 다시 오겠지…(중략)…산도 한 겨울에 매화를 피우려 하는데/ 만물은 다를 게 없으나 고향만 다를 뿐/ 아이 불러 술 따라 한잔 들이키리라.’

조선의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은 남편을 잘못 만났다. 풍류아인 남편은 매일 기생집을 전전하며 시인을 외롭게 했다. 그녀는 겨울이 싫었다. 그녀의 시 ‘빈녀음’에는 겨울 밤 여인의 외로움과 한이 묻어난다.

‘어찌 인물이 부족하다 하시나요…(중략) 손에 쇠로 된 가위 잡았는데/ 밤이 추워서 열 손가락이 굳어 졌네요/ 남을 위해 시집갈 때 옷을 만들어 주지만/ 해마다 다시 독수공방만 하네요.’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欽)은 학자요 덕망이 있었다. 극심한 당쟁 속에서도 편협 되지 않은 처신으로 재상의 지위까지 올라 국정을 처리한 인물이다.

신흠은 낙천적 성품 때문인지 겨울에서 보석을 찾았다. 그의 작품 ‘대설’을 보면 설경이 흡사 수정궁(水晶宮)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골 메우고 산 덮어 온천지가 하나 되니/ 아름다운 옥 세계 반짝이는 수정궁궐/ 인간 세상에 화가들 무수히 많다지만/ 음양의 변화가 이룬 것을 다 그리기 어렵다네.’

조선 조 최고의 명필인 완당 김정희가 생각한 겨울은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 잣나무였다. 역관 이상적은 추사의 제자가 돼 서울에서 제주, 서울에서 북경 수천리길을 넘나들며 사제의 도리를 지켰다. 추사는 제자에 대한 의리로 불후의 명작을 선물한다.

국보 ‘세한도’가 아닌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뜻깊은 세한도는 한국인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에 이런 정과 의리가 살아나야 한다. 지난주 첫눈이 내리더니 찬 겨울이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권력 잡기 경쟁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는 온정은 따뜻하기만 하다.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는 한국적인 정이 되살아나고 있다. 울산시의 김장 나눔 행사에서는 지역 농업인들이 가꾼 농산물로 김치를 만들어 800상자를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에 전달했다. 충남 보령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벌이고 있는 ‘행복 나눔 릴레이’가 추운 겨울 온기를 더해 준다. 이 운동은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기부 챌린지다.

정치인, 재벌기업, 단체가 모두 힘을 모았으면 한다. 올겨울 이런 운동이 확산되면 대한민국은 춥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의 시 ‘겨울’이 가슴에 와닿는 때, 모레가 눈이 많이 내린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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