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지난달 필자는 여성들이 가장 존중받고 살았던 신라국 고도 경주를 다녀왔다. 선덕여왕과 관련 있는 ‘향가’ 취재를 위해서였다. 향가 제목은 ‘풍요(風謠)’로서 영묘사(靈妙寺)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묘사는 바로 선덕여왕이 세운 절로 알려진 유적으로 본래는 신라 불교의 시원지인 이차돈의 순교지 흥륜사다.

왜 신라 사람들은 이 향가를 ‘바람의 노래’라고 했을까. 풍요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라 가요다. 지은이를 알 수 없으나 양지(良志)가 영묘사의 장육존상(丈六尊像)을 만들 때 부역 온 성내 남녀들이 불렀다는 노래로 알려져 있다.

풍요는 이두를 전공한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필자는 이 노래를 불교적 의미로 의역해 보았다.

‘여래가 오시네, 오시네, 오시네/ 님이 오시자 내 눈동자에 슬픔이 사라졌네/ 많은 무리들도 슬픔을 넘어/ 오시는 님과 공덕을 닦네’

선덕여왕은 매우 아름다워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영묘사에는 조각가인 ‘지귀’라는 청년이 있었다. 학자들은 노래를 지은 ‘양지’가 지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여왕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었으며 마음속으로 사모하게 되었다.

여왕과 백성은 감히 사랑을 할 수 없는 사이. 청년은 상사병을 앓게 된다. 그러다가 그만 죽음 직전에 도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여왕은 영묘사로 달려가 누워있는 청년의 가슴에 팔찌를 빼 놓아준다. 여왕의 이런 행동은 백성에 대한 평범한 대우를 넘어선다. 여왕도 영혼이 맑은 지귀를 마음속에 넣고 완쾌를 빌지 않았을까. 여왕의 아름다운 팔찌를 가슴에 안은 지귀는 열정이 타올랐다. 그러나 그 불은 영묘사를 모두 태우게 된다.

신라인들은 선덕여왕이 중생을 구제하는 여래불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지귀는 여왕을 여래로 보았다. 그녀가 영묘사에 오는 날 기쁨이 넘쳐 슬픔이 사라졌다. 많은 무리들과 함께 여왕을 맞으며 공덕을 빌었다.

신라는 전통적으로 모계사회였다. 하늘에 지내는 왕실 제사도 공주를 천관으로 삼아 주관했다. 아버지가 벼슬이 낮아도 어머니가 귀족이면 높은 대우를 받았다. 우리 역사상 세 분의 여왕을 배출한 것도 신라다.

이런 전통이 고려에 이어지고 유교 사회까지 계승된다. 조선 사회를 남존여비 시대라고 비판하지만 실지는 여성들이 존중받고 산 시대다. 남편이 정이품인 정승의 지위에 오르면 부인도 같은 품계인 ‘정부인’ 칭호를 받았다. 그래서 남편은 평상시 부인과 대화할 때도 반말을 하지 않고 존대했다. 하인들에게도 욕설이나 매질은 금지돼 있었다. 양식 있는 가문은 하인들을 가족처럼 대하고 자녀 중에 똑똑한 아이가 있으면 글을 가르쳤다.

국회의원직마저 잃은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이 출판기념회에서 말한 ‘설치는 암컷’ 발언은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키며 정치권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가 확산되자 민주당은 최 전 의원에게 당원 자격 6개월 정지 징계를 내렸다.

불경에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란 말이 있다.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참된 말’을 뜻한다. ‘구업’은 악구(惡口), 양설(兩舌), 기어(綺語), 망어(妄語)라고 한다. 자신이 지은 업(業)은 여러 겁을 지난다 해도 없어지지 않으며 인연을 만나는 어느 순간에 되돌려 받는다는 것이다. 바로 인연과보(因緣果報)라는 것이다. 정치인으로 국민들에게 존경받으려면 진정으로 여성을 존중하는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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