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중국 고대 동진시기 축영대 미인의 설화는 남장 여인의 비련을 담고 있다. 여자들은 공부를 깊게 할 수 없어 미인은 남장을 하고 서원에 입학해 양산백이라는 청년을 만난다. 양산백은 그녀가 여자인 줄 모르고 친숙한 벗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여자는 사랑의 감정이 생겨 자신의 여동생이 있는데 소개해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안에서 혼사를 주관한 양산백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됐다. 그가 현령이 돼 임지로 가는 날 여자는 자결해 남자가 지나는 길에 무덤에 묻혔다. 광풍이 불어 양산백이 말에서 내려 잠시 쉬는 동안 무덤이 갈라지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후에 무덤에서는 한 쌍의 남녀시신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서울 중랑천 남장 처녀의 설화는 지극한 효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집이 가난한 처녀는 부친이 병이 들자 남장을 하고 대신 부역에 종사했다. 나중에 관아에서 그녀가 처녀로 밝혀지지만 효심을 인정받아 부역을 면했다고 한다.

고전 이춘풍전은 한량인 남편을 위해 남장을 하고 위기를 면하게 해준 부덕을 다룬 작품이다. 춘풍은 호조에서 빌린 2천냥과 부인이 모아둔 5백냥을 가지고 물건을 사오겠다며 평양으로 떠난다.

평양에 온 춘풍은 기생 추월의 미모에 빠지고 말았다. 추월도 춘풍이 돈이 떨어지자 박대하고 다른 남자를 맞아들이게 된다. 춘풍은 추월의 집에서 하인으로 전락했다.

남편의 소식을 들은 부인은 평양감사로 부임하는 지인에게 사정해 비장으로 남장을 하고 평양으로 간다. 추월을 규탄하고 춘풍을 질책한 후 돈을 찾아주며 어서 물건을 사서 서울로 돌아가라고 호령한다.

드라마 가운데는 남장 여자를 소재로 한 사례가 많다. 작가들이 사료를 무시하고 흥미 위주 상상으로 만든 창작물이다. 여장 생원을 그린 ‘성균관 스캔들’이나 도화서 화원 혜원 신윤복을 남장 여자로 그린 영화 ‘미인도’ 등이 그것이다.

여자가 남장을 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면 풍기를 어긴 죄로 극형감이다. 남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도화서 화원으로 여자가 들어간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신윤복은 대대로 도화서 화원을 지낸 집안의 장남으로서 나중에 무관직인 첨정이라는 직을 제수받기도 했다.

국민적 영웅이 됐던 전 펜싱 국가대표가 20대 나이의 남장 여자와 혼인을 둘러싼 사기 범죄로 온통 나라가 들끓고 있다. 언론의 흥미 위주 추측성 보도까지 겹쳐 사건은 점입가경이다.

구속된 남장 여자 전씨는 다른 남자는 물론 여자에도 손을 뻗쳐 결혼식도 했다고 한다. 재벌 2세로 속이고 여러 사람에게 17억원을 편취했다고 한다.

그녀가 평소 들고 다닌 통장은 51조가 찍힌 가짜였다. 이 통장에 펜싱 영웅도 마음을 뺏겼으며 여러 사람이 속고 말았다. 명품 가방과 고급승용차에 그만 이성을 찾지 못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을 갖고 검증했으면 전씨의 사기행각에 걸려들지 않았을 게다.

폰지 사기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 창궐 이후 비대면 온라인 거래가 증가하고,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죄의 수법이 지능화·고도화되고 있다. 최고의 지성이라고 하는 서울대학교 교수까지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한국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사기는 다단계로 수많은 사람을 울린 조희팔 사건이다. 피해자가 7만여명, 사기금액이 5조나 된다. 그가 아직 중국에서 살아있다는 설도 있다.

사기꾼들이 노리는 대상은 분에 넘치는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과욕을 버릴 때 사기의 덫에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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