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강원과 영남 대표 누각(樓閣)인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가 국보로 지정됐다.28일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인 2건의 대형누각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를 국보로 지정했다고 밝혔다.‘삼척 죽서루’는 고려 명종(1171∼1197)대에 활동했던 김극기(金克己, 1148∼1209)가 죽서루의 풍경을 시로 썼던 것으로 미뤄 보아 적어도 12세기에는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안축(安軸, 1282~1348)과 정추(鄭樞, 1333~1382) 등의 시를 통해 처음에는 ‘서루(西樓)’로 불리다가 14세
대웅전, 현존하는 최고(最古) 목조건물절경 유명·기암괴석 풍부·절묘한 형상가요 ‘수덕사의 여승’으로 널리 알려져온천 겸한 가족 나들이 코스로 적합해[천지일보 충남=김지현 기자] 초겨울 속 단풍 풍경이 아직 남아 있어 만추(晩秋)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지난 21일 덕숭산(德崇山) 수덕사를 찾았다.덕숭산 중턱의 쪽빛 하늘 아래, 천년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수덕사(修德寺)는 삼국시대 백제 말에 창건된 사찰이다. 천년의 세월 가운데 수많은 시련을 버텨온 자연 속 나무와 바위들, 건물과 암자 등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보게 된다.맑은
[천지일보 여수=이봉화 기자] 전남 여수시가 문화·역사적 가치가 높은 고려가요 ‘동동(動動)’의 구전가요를 모티브로 한 동동북축제를 21~22일 용기공원과 선소 일원에서 개최한다.여수의 10월은 그야말로 온통 축제로 가득하다. 지난 6일 국제 남도음식문화큰잔치와 여수마칭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여수 동동북축제에 이어 오는 28일 여수 밤바다 불꽃 축제까지 앞두고 있다.◆여수의 숨은 역사적 인물 유탁장군 올해로 4회째를 맞은 동동북축제는 여수의 숨은 역사적 인물인 유탁장군(1311~1371)을 널리 알리기 위해 창안된 축제다. 유탁장군은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이색(李穡)은 1369(공민왕 18)년 6월에 숭록대부(崇祿大夫) 삼사우사(三司右使) 진현관대학사(進賢館大學士) 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知春秋館事兼成均大司成) 제점사천감사(提點司天監事)로 고쳐 임명되었고, 8월에는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삼장(三場)을 통고(通考)하는 법을 시행할 것을 청하였다. 1371(공민왕 20)년에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김잠(金潛) 등 33인을 선발하였으며, 가을에는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임명되고 문충보절찬화공신(文忠保節贊化功臣)의 호가 더해졌다.한편 그해 9월에 이색의 모친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1361(공민왕 10)년 11월에 홍건적(紅巾賊)이 왕경(王京)을 함락시킴으로써 승여(乘輿)가 몽진(蒙塵)을 하게 됐는데, 신료(臣僚)들이 허둥지둥해 대부분이 무너져 흩어졌으나 이색(李穡)은 왕을 호종해 곁을 떠나지 않고 일심(一心)으로 호위헸을 뿐 아니라 지병부사(知兵部事)가 되어서 군국대사(軍國大事)에 참가했다.그래서 마침내 1363(공민왕 12)년 2월에 이색은 왕을 호종해 송도로 귀환했으며, 윤3월에 호종일등공신(扈從一等功臣)의 칭호 증서를 왕이 하사하고 도형벽상(圖形壁上)의 은전(恩典)으로 논과 밭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이색(李穡)은 1355(공민왕 4)년 정월에 봉선대부(奉善大夫) 시내서사인 지제교 겸 춘추관편수관(試內書舍人知製敎兼春秋館編修官)에 승진됐다.5월에는 봉상대부(奉常大夫) 전의부령(典儀副令)에 전직을 했으며, 여름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임명돼 다시 베이징(北京)에 가게 됐으며, 8월에 한림원(翰林院)에 등용돼 겨울에 경력(經歷)으로 재임했다.이와 같이 원나라에서 관직생활(官職生活)을 하던 이색은 그 이듬해 정월에 고령(高齡)이신 모친(母親)을 봉양하기 위해 귀국했으며, 7월에 관제(官制)가 바뀌어 중산대부(中散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19세에 안동권씨(安東權氏)와 혼례(婚禮)를 치른 이색(李穡)은 그 이듬해에 원나라에 유학을 떠나니 그의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당시 원나라에는 그의 부친 이곡(李穀)이 원나라 조정(朝廷)에서 중서사전부(中瑞司典簿)로 재임 중이었는데, 베이징에 도착한 목은은 원나라의 국립대학(國立大學)이라 할 수 있는 벽옹(辟雍)에 입학했다.덧붙이면 벽옹은 중국 주나라 때 천자(天子)가 도성에 건립한 대학으로서 주위의 형상이 벽과 같이 둥글고 물이 둘러 있었다고 하여서 그 명칭을 벽옹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난초 그림인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金正喜 筆 不二禪蘭圖)’ 등 조선시대 불화・동종・전적 총 4건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28일 문화재청은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를 비롯해 ‘기장 고불사 영산회상도(機張 古佛寺 靈山會上圖)’ ‘파주 보광사 동종(坡州 普光寺 銅鍾)’ ‘불조삼경(佛祖三經)’ 등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고 밝혔다.보물로 지정 예고된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는 10대 때부터 묵란(墨蘭)을 즐겨 그렸던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난초를 서예의 필법으로 그려야 한다는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본 칼럼에 소개하는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는 17세기 조선(朝鮮)의 관인(官人), 유자(儒者)로서 숙종(肅宗) 대(代)에 당파(黨派)를 초월(超越)하여 능력(能力)에 따라 인재(人材)를 등용(登用)하자는 탕평론(蕩平論)을 최초(最初)로 주장(主張)하였다.박세채는 1695(숙종 21)년 향년(享年) 65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생애(生涯)를 12회에 걸쳐서 소개(紹介)한다.박세채의 본관(本貫)은 반남(潘南)이며, 자(字)는 화숙(和叔)으로서 1631(인조 9)년 한성부(漢城府) 서부(西
[천지일보 밀양=윤선영 기자] 경남 밀양시가 조선 후기의 대표적 건축물인 영남루의 국보 승격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밀양시는 지난 17일 문화재청 및 문화재위원의 영남루 국보 지정가치 조사를 위한 현지실사가 진행됐으며 심의를 거쳐 국보 승격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고 28일 밝혔다.시에 따르면 영남루는 고려말인 1365년 밀양에 지군사(知郡事)로 내려온 김주에 의해 관영 누각으로 중창된 이후 650여년 동안 건축형식을 단절 없이 계승 발전시켜 온 목조 누각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누각 건축연구의 귀중한 자료이자
대모산 기슭 헌릉(서초구 내곡동)은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다. 타고난 정치적 기질과 승부수로 ‘왕의 자리’를 차지한 태종과 그가 머뭇거리면 등 떠밀고 위험을 모면토록 ‘코칭’하던 원경왕후가 나란히 자리한 곳이다. 부부는 왕좌에 이르고자 의기투합했으나 많은 부부 갈등을 겪었다. 특히 왕후는 많은 후궁이 들며 심한 고통을 겪었다. 부부는 세상을 뜬 지 600년이 지난 지금 후궁 없는 이곳에서 오붓한 부부의 정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강력한 군주 태종의 위세와 달리 헌릉은 옛날의 흔적이 많이 사라져 주변의 능지는 잘려 나갔고 제실
조선 개국 초기 30년의 역사에서 단연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태종. 그는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살다 간 왕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양극으로 갈린다. ‘주어지는 왕의 자리보다 기어코 왕위를 손에 움켜쥔 왕’으로서 똑똑한 머리와 끓어오르는 가슴으로 주변을 쥐락펴락했다. 조선왕 중 유일하게 과거급제한 그는 조선 초기의 국가 제도를 정비하고 최고의 임금 세종을 만들었다는 치적과 함께 냉혈의 군주로서 인정사정없이 정적은 물론 이복형제와 처남들, 며느리의 친정까지 멸문에 이르게 한 점에서 양극단의 처세를 보였다. 태종과 함께 정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함왕산성의 웅자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해발 1031m 함왕산에 정상과 능선을 이용하여 구축한 고성이 있다. 이 성을 양근성(楊根城) 혹은 함왕산성(咸王山城), 함씨 대왕성이라고 부른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양평군의 고구려 역사 경기도 양평 땅은 고구려시대 양근군(楊根郡) 또는 항양군(恒陽郡)이라 했다. 신라 경덕왕 때 빈양(濱陽)이라고 고쳐 기천군(沂川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빈양은 ‘바로 물가에 있는 산
왕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조선의 왕들께 묻고 싶은 질문이다. 왕의 직분과 개인 삶의 조화를 이룬 왕이 바람직하겠지만 다수는 불행했고 심지어 왕의 자리는커녕 목숨까지 잃은 왕들도 있다. 이 점에서 정종은 독특한 왕이다. 카리스마, 장기 재위, 업적 면에서 내노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삶은 조선의 왕들이 부러워할 정도였다. 동생 이방원의 들러리로 잠시 왕을 했다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끼고 인정했던 동생에게 ‘무거운 짐은 네가 져라’ 하듯 왕위를 물려주고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어갔다. 행복의 아이콘이라 할 정종의 진면목을 알게 된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강화 땅 옛 시인들의 노래 인천광역시 강화군은 역사 유적의 보고(寶庫)이자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불린다. 우리민족의 시조 단군 설화가 어린 참성단(塹星壇)이 하늘과 맞닿은 듯한 명산 마리산(혹은 마니산
42기의 조선왕릉 중 2기(제릉, 후릉)는 북한 개성에 있다. 이성계의 첫 부인 신의왕후 한씨와 2남 정종 부부의 무덤이다. 한씨는 남편(이성계)을 내조해 6남 2녀의 자식들과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젊은 경처 강씨의 뒷전에서 묵묵히 조강지처의 역할을 다했다. 아들 정종은 권력에 욕심을 부린 왕이 아니었다.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전투에 나서고 효성과 형제애를 보였다. 이처럼 나라와 가정의 초석을 세운 모자이지만 신의왕후는 신덕왕후에, 정종은 태종 이방원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이들이 잠든 북한 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답사기② 출세와 행복은 동전의 양면인가. 천하의 권력자나 자산가 중에는 ‘평범한 행복’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흔하다. 태조 이성계는 519년 조선왕조를 세운 위업에도 말년에 가장 불행한 세월을 보냈다. 57세의 태조는 든든한 대신들, 젊은 왕비, 듬직한 자손들과 백년대계를 꿈꾸며 보냈다. 그러나 가혹한 운명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왕세자 책봉 이후 벌어진 갈등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막아내지 못했다. 사랑했던 신덕왕후의 옆에 묻히고자 했지만 이 또한 자식이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지금 건원릉에 홀로 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400여년 전 류성룡의 일상이 담긴 ‘대통력’이 일본에서 국내로 환수돼 언론에 공개됐다. 이는 국내에 현존하지 않는 경자년(1600년) 대통력으로, 가책된 표지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전사 정황에 대한 내용도 담겨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 ◆1600년 조선의 책력, 일본서 환수 24일 문화재청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본에서 환수한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경자, 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
주말의 동구릉은 남녀노소, 가족과 단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구릉(경기도 구리)은 동쪽 9개의 왕릉을 말한다. 이 중 제1호로 조성된 왕릉이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建元陵)’이다. 태조는 백전백승 장군에서 나라를 세운 창업 군주가 되고, 6명의 부인과 13명의 자손을 두어 72세가 넘게 장수했다(최장수 영조에 이어 두 번째, 조선 국왕의 평균 수명 46세). 하지만 그는 혹독한 노년을 거쳐 지금 단릉(單陵)에 홀로 누워 있다. 주변 능에 자리한 후대 왕과 왕비들에게 체면이 말이 아니다. 승승장구하며 사랑과 권력을 양손에 움켜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