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10월 31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50개국이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에 서명했다. 한국은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앞서 한국은 10월 6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인권 침해 의혹에 대한 토론회 개최안에는 찬성했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인가?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상황에 변화가 있었나? 아니면 한국 정부가 새롭게 고려해야 할 뭔가가 있었나? 외교부 대변인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인간의 세계관과 생활양식 자체를 생태중심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큰 자아실현과 생명 중심적 평등을 추구하는 생태주의사상을 심층 생태주의 또는 근본적 생태주의라고 한다. 심층 생태주의에는 두 가지 핵심 규범이 있는데 하나는 개체적 자아를 벗어난 큰 자아실현(self-realization)이고 또 하나는 생명 중심적 평등(biocentric equality)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큰 자아실현이란 인간이 자신을 자연이라는 더 큰 전체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으로 자신을 자연과의 상호 연관 속에서 이해
송병승 충효예문화운동본부 공동총재 참회(懺悔)는 ①뉘우쳐 마음을 고쳐먹음 ②불교에서 과거의 죄악을 깨달아 뉘우침, 또는 죄악을 뉘우쳐 부처에게 고백함 ③개신교에서 죄를 뉘우쳐 하나님에게 고백함이다. 뜻이 통하는 단어로 회개(悔改), 사죄(謝罪), 사과(謝過)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관된 철학으로 올곧게 처신해 참회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의든 타의든 시행착오를 겪어 참회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진정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참회의 가치가 판가름(결정)난다. 재차 강조하면 입만 살아 건성으로 내뱉는 거짓, 위선의 참회
종교는 약속(예언)이 있어야 하며, 그 약속 또한 성취된 게 있어야 한다. 종교생활은 곧 신앙생활이며, 신앙(信仰)의 뜻은 뭔가 자기가 믿는 것이 정한 때가 되어 이뤄져 나타날 것을 바라보며 기다린다는 의미다. 만일 신(神)께서 약속하신 게 없다면 신앙인이 이를 기다릴 이유가 없고 소망도 믿음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것이 되고 만다. 신앙인이 바라고 기다리는 희망과 소망이 자신의 종교의 예언(약속) 안에 있기 때문에 이를 지키고 기다리며 믿는 것이니 이를 일컬어 종교생활 내지 신앙생활이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면에 빼 놓을 수 없는 두 여인이 있었다. 하나는 중전 소헌왕후였고 둘째 딸 정의공주다. 저명한 한글학자 전 고려대 정광교수도 이 점은 인정하고 있다. 궁궐안의 여인들이 한글의 일부를 완성한 것이라고 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2년 전 청주 초정약수를 다녀왔다. 실록을 보면 두 번이나 다녀 왔는데 초정에서 묵은 날은 모두 121일이나 됐다. 그런데 초정 행차에는 소헌왕후를 대동했다. 총명한 정의공주를 데리고 갔다는 기록은 없다. 정의공주는 이미 출가한 몸이었으므로 동행이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6세기 백제의 부흥을 꾀하기 위해 부여로 천도한 성왕(聖王)은 문화국왕이었다. 백제라는 국호를 남부여로 고친 성왕은 북으로는 만주일대의 북부여 고토를 수복하고, 바다 건너 왜국을 아우르는 대 왕국을 꿈꿨다. 지금의 공주 웅진성에서 부여로 이도한 성왕은 새 수도 건설에 힘을 쏟았다. 왕궁과 인공 호수정원인 궁남지를 연결하는 대로(주작대로라고 함)를 만들고 그 통로에 정림사라는 큰 절을 지었다. 도시를 바둑판처럼 구획해 한나라 장안의 도시건설 방법을 수용했다. 이 같은 왕도건설과 경영은 정신적 지주였던 양(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소만수(蘇曼殊, 1884~1918)는 근대 중국의 풍류남아이자, 혁명문학단체 ‘남사(南社)’의 일원이었다. 1909년에 소주(蘇州)에서 창립한 남사는 북정(北庭) 즉 북경의 청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부친 소걸생(蘇杰生)은 일본 고베의 찻집 종업원이던 일본여자와의 사이에서 만수를 얻었다. 그러나 생모가 곧바로 사라지자, 아버지의 첩이 길렀다. 그는 자신을 ‘숨겨진 아이’라고 말했다. 고베의 대동학교를 거쳐 와세다대학에 진학했다가 혁명활동의 참가자로 수배령이 떨어지자 출가했다. 만수는 법명으로 문수의 음역이다.
바른불교재가모임 불사추진위원장 백도영 14일 자승(이경식)이 회주로 있는 봉은사 입구에서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하던 조계종 노동조합원 박정규씨에 대해 봉은사 기획국장인 승려 지오와 성명불상의 승려 2명에 의한 집단폭행사건이 발생했다. 폭력에 가담한 승려들은 미리 준비한 똥물을 박정규씨에게 끼얹고, 목을 잡아채 땅에 패대기 치고, 주먹으로 가격하고, 따귀를 때리고, 넘어진 박씨에 발길질을 했다. 이 모습은 공중파를 비롯한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불교시민단체들은 21일 봉은사 앞에서 첫 규탄집회를 열어 자승(이경식)의 공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일본에 불교를 전래해준 백제 성왕(聖王, ?~554 AD)의 죽음에 대해 일본서기는 동기와 사실을 소상히 적어 남겼다. 서기를 쓴 사람이 백제에서 일본에 온 사람에게 사건 전말을 듣고 소상하게 적은 것이다. 우리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대 신라군과 백제군이 고리산성(지금의 옥천)에서 격전을 벌인 끝에 죽음을 당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성왕을 체포해 목을 벤 신라군의 이름과 직책까지 적고 있다. 보은 삼년산성에서 출전한 고간(高干)도도(都刀)가 구천을 지나는 성왕을 사로잡아 참수한 것이다. 도도는 그가 포로로
김영복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원장진흙탕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향기롭고 청초한 꽃을 피워내는 신비스런 식물이 연(蓮)이다.이것을 불교에서는 ‘추(醜)’에서 ‘미(美)’를 드러내는 미묘법이라 하고, 꽃을 피움과 동시에 열매 맺는 것은 인과(因果)의 법칙이라 부르고 연꽃 봉오리 모양이 부처님 앞에 합장한 수인과 닮았다하여 만다라화(曼茶羅華)로 칭해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다.연을 부르는 명칭은 부거(芙蕖), 부용(芙蓉), 우화(藕花) 등 다양하며 중국의 고서 ‘고금주(古今注)’에는 하화(荷華), 수지(水芝), 택
흔히들 진리를 말한다. 과연 ‘진리’가 뭔지 알고 말하기나 하는 걸까. 이를테면 밭에 콩씨를 심었으면 콩이 열리니 이것이 진리며,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넘어가니 이것이 곧 진리며 만고의 이치다. 이처럼 진리는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고, 나아가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할 수 없다.세상적 차원뿐만 아니라 종교적 차원에서도 들여다보자.종교마다 경서가 있고, 자기 종교가 주장하는 경서(약속)가 없다면 애초부터 그 종교는 종교가 아니었다.어쨌든 경서에 기록된 말씀(약속)을 일컬어 ‘진리’라 한다. 기독교에서도 불교(眞理=金剛)에서도 공히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청렴연수원 청렴강사강진군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을 걷는다. 이 길은 유학과 불교의 만남, 정약용(1762∼1836)과 혜장 선사(1772∼1811)가 걸었던 길이다.1800년 6월에 정조가 갑자기 붕어했다. 정약용은 천주교 박해에 연루돼 1801년 11월 하순에 강진으로 유배 왔다. 그런데 그에게 거처를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고맙게도 읍내 동문 밖 주막집 노파가 토담집 방 한 칸을 내주었다. 1802년 초봄부터 정약용은 아전 자식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는데 ‘사의재’라 했다.1805년 봄, 바깥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격안관화는 전국책(戰國策)의 ‘휼방상쟁(鷸蚌相爭) 어옹득리(漁翁得利)’에서 유래됐다.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알려진 이 고사를 두고 당의 선승 건강(乾康)이 지은 시다. 격안홍진망사화(隔岸紅塵忙似花), 당헌청장냉여빙(當軒靑嶂冷如氷). 건너편 언덕의 단풍은 꽃처럼 피어나는데, 집 앞의 가파른 푸른 산은 얼음처럼 차갑구나. 홍진의 화려함을 얼음처럼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상대의 싸움을 지켜보는 책략가의 날카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중봉광록(中蜂廣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생각이 은밀하면 행동도
시골집 가을 풍경이은자찬 이슬 내린다는 절기 백로(白露)아침부터 비 내리더니수수 알 쪼던 참새들 날아가고살진 방아깨비 한 마리장독대위에 앉아 햇볕 쬐고 있다.아기 낳는 날 언제일까거친 숨소리도 잠잠하고방아깨비, 방아깨비친정엄마 기다리나?파리를 낚아채는 두꺼비한가롭게 낮잠 즐기는 한낮송장메뚜기 한 마리푸르르 날아와 흙담 위에 앉는다. 약력작사가제22회 한민족예술대전 우문부 최우수상제32회 찬불가요가사 공모 당선2007년 불교문학시문학상 수상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대선이 끝났다. 당선자의 과거 면모는 협객이 연상됐다. 근대에 이르자 중국은 자본주의를 앞세운 서양과 일본의 침략을 받고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재기를 꿈꾸던 사람들은 중국문화가 서학에 억눌리는 상황에서 벗어날 길을 모색했다. 세상을 구한다는 사명감을 임무로 여겼던 사람들이다. 시대를 담당한다는 정신과 비장한 의식을 품은 이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사대부 출신이었지만, 기꺼이 유협을 자처했다. 생존방식과 행위준칙은 묵협(墨俠)에 따랐다. 담사동(譚嗣同)이 대표적이다.“묵학은 두 개의 학파가 있었다. 첫째는 임협(任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중국 산동성 제남시 대명호 동북쪽 기슭에 수면에서 높이 약 7미터인 언덕에 제남의 유일한 도교사원 북극각(北極閣)이 있다. 1280년에 처음 지은 이래 74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했으며, 지금 보는 것은 1981년에 중수한 것이다. 이 사원의 특징은 정전에 안치한 진무(眞武)와 거북, 뱀 등 두 장수의 조각상이다. 중앙의 불감(佛龕)에 진무의 좌상이 있고, 양쪽에 금동(金童)과 옥녀(玉女)가 시립하고 있다. 전하방에는 화장(火將), 수장(水將), 구장(龜將), 사장(蛇將)이 있으며,
법고 소리김광규(1942 ~ )하필이면 쇠가죽으로 만들었나부처님 앞 법고(法鼓)아침저녁 서녘 산에서 들려오는둥 둥 둥 외로운 북소리평생의 구업(口業) 갚을 길이 없는울음일까 아니면묵언 공양일까오늘도 가슴 깊이 울려오는황갈색 법고 소리 [시평]‘법고(法鼓)’는 자금은 절에 있는 북을 일컫지만, 예전에는 승려들이 가지고 다니던 작은 북이었다. 우리나라의 세시풍속(歲時風俗)에 관해 적어놓은 책인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돈이나 쌀 등의 물건을 내주는 시주(施主)에게 부처님과의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글인 모연문(募緣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석수신(石守信 928~984)은 북송의 개국공신으로 태조 조광윤과는 결의형제였다. 그의 아들 석보길(石保吉)은 태조의 둘째딸 연경(延慶)공주와 결혼했다. 일찍이 후주의 세종 시영(柴榮)을 따라 남당을 정벌할 때 선봉으로 전공을 세운 이후 황제의 친위대인 금군의 주력부대를 지휘했다. 시영이 서거하고 아들 시종훈(施宗訓)이 계위하자 의성군절도사겸전전도지휘사로 임명됐다. 석수신은 조광윤이 우두머리인 ‘의사(義社)십형제’ 가운데 이계훈(李繼勛), 조광윤에 이어 3번째 자리를 차지했다.그는 오랫동안 조광윤의 부하이자 가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다. 종교마다 그 종교의 교리나 지향하는 목표가 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실천덕목은 내적 신앙(신행)이나 전도(포교)일 것이다. 안으로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실현하기 위한 신앙생활이 있으며, 밖으로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파하여 같은 신앙공동체적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종교적 신념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교리적 논쟁은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계시적 종교들은 초월자나 창조자를 믿을 것이며, 불교나 도교 유교 같은 종교는 철저하게 자신의 내면의 통찰을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백제는 고대 삼국 가운데 어떤 나라였을까. 삼국사기를 엮은 김부식의 사론을 보면 결국은 망하게끔 돼 있는 나라라고 정의한다.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의 안이한 안보관에다 황음이 패망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백제본기 의자왕조의 마지막 기사는 거짓 역사, 즉 위사(僞史)라는 지적이 많다. 의자왕은 해동증자라고 불릴 만큼 인자하고 효성이 극진한 인물이었다. 신라통일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망한 역사로 꾸민 것이다.5세기 말엽 고구려 장수왕이 침공해 한성 백제를 멸망시키기 전 백제는 가장 강성했다. 한강 위례성에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