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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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50개국이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의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에 서명했다. 한국은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앞서 한국은 10월 6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인권 침해 의혹에 대한 토론회 개최안에는 찬성했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인가?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상황에 변화가 있었나? 아니면 한국 정부가 새롭게 고려해야 할 뭔가가 있었나? 외교부 대변인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중국 신장 인권 관련 공동 발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라고만 밝혔다.

‘여러 가지’ 상황은 무엇일까? 문재인 정부는 중국의 인권문제에 시종 침묵했으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와 한국이 처음으로 중국 인권문제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한 데 대해 중국이 반발한 것이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달 27일 대사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중국의 우호적 이웃이자 전략적 파트너인 한국은 신장문제와 관련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지만, 이번에 유엔의 특별토론 결의안을 지지하기로 결정했고, 중국으로서는 매우 유감이고 한국의 행동은 실망스럽다”라고 했다. 그간 신장 위구르의 인권상황은 각종 증거와 증언 등으로 확인된 바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국제사회와 연대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향하겠다고 하면서도 중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서는 지속적으로 러시아를 비난하는 유엔 결의안에 찬성했고 5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해 명시적으로 반러시아 전선에 동참했으며, 최근에는 한국이 제3국을 거쳐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에 푸틴 대통령이 우려를 표명한 데 대해 ‘주권’을 내세우며 꿈쩍도 하지 않은 윤석열 정부가 중국의 한 마디에는 꼬리를 내린 것인가?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굴종이 워낙 심해 우리는 대중국 굴종을 소위 ‘진보’정권하고만 연결시키는데 과거 보수 정권도 중국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행사해야 할 권능을 행사하지 않은 경우까지 있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을 때 티벳 인권상황을 규탄하고 독립을 지지하는 평화적 시위를 벌이는 대한민국 시민들을 중국 유학생들이 집단폭행했는데 한국 경찰은 지켜만 봤고 한국인들이 한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인 폭력배를 피해 도망을 다녀야 하는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중국인 폭력배를 처벌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중국 어선들이 수십년째 우리 수역에서 불법으로 조업해 우리 어민들의 원성이 자자해도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 그나마 나포한 선박과 선원에 대해 중국 정부가 한마디 하자 사법절차를 중지하고 풀어준 사례도 있다. 수십만에 달하는 불법체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에 속하는, 1천만 불교 신자들의 숙원인 달라이 라마 초청도 중국 눈치를 보느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는 여전히 근대 이전 동아시아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는가?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가? 북한이 중국에 여러모로 아쉬운 것이 많아도 중국이 자존심을 건드리는 경우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런데 중국이 한국을 가볍게 보는 데는 한국 언론이 일조하고 있다. 한국 언론 매체들은 주한 중국대사의 기를 살려주지 못해 안달이라도 난 듯하다. 모 매체는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가 사드 문제 관련 중국을 비판하자 이를 반박하는 중국대사의 글을 실어줬고, 어떤 매체는 정기적으로 중국 인사들의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실어주고 있다. 또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에 대해서는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다’며 중앙 일간지들은 거의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관훈클럽이 중국대사를 초청했는데 중국대사는 ‘한국 일부 언론의 지나치게 부정적 보도가 양국 간 불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세상에 어느 나라의 언론 매체들이 외국 대사를 초청해 자국을 비난하는 말을 듣는가?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주한 중국대사의 오만방자하고 국제법을 거스르는 언행을 질타하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다. 이게 과연 주권국가인가? 오래전부터 중국 언론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공한증(恐韓症)’이 있다. 한-중 축구 경기에서 2022년 7월 현재 통산 전적 36전 21승 13무 2패로 한국이 압도적으로 우세해 중국 선수들이 한국팀에 대해 갖는 두려움을 뜻한다. 한국 정부는 ‘恐中症’에 걸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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