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승 충효예문화운동본부 공동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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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懺悔)는 ①뉘우쳐 마음을 고쳐먹음 ②불교에서 과거의 죄악을 깨달아 뉘우침, 또는 죄악을 뉘우쳐 부처에게 고백함 ③개신교에서 죄를 뉘우쳐 하나님에게 고백함이다. 뜻이 통하는 단어로 회개(悔改), 사죄(謝罪), 사과(謝過)가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일관된 철학으로 올곧게 처신해 참회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자의든 타의든 시행착오를 겪어 참회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진정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참회의 가치가 판가름(결정)난다. 재차 강조하면 입만 살아 건성으로 내뱉는 거짓, 위선의 참회를 하지 말라는 경고요 충고이다.

우선 조선왕조에서 참회를 하지 않고 충성한 위인을 조명한다. 7대 왕 세조(世祖) 때 6대 왕 단종(端宗)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처형당한 여섯 충신(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유성원, 하위지, 이개) 곧 사육신(死六臣)은 충성이 임금과 백성 사랑이라며 한 임금을 섬긴 지조 있는 신하였다.

8대 왕 예종(睿宗) 때 남이(南怡)는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했고 여진족을 정벌한 공이 있는데, 뜻하지 않은 역모죄(逆謀罪)로 능지처참당했다. 남이는 간신들의 모함이었으므로 참회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조 때의 사육신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신숙주(申叔舟)는 명석한 두뇌로 거짓 참회를 하면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의 평가는 장단점이 있어 생략한다. 세종 때의 명재상 황희, 맹사성, 김종서는 참회와 거리를 둔 충신이다. 이 중에 김종서(金宗瑞)는 세종과 5대 왕 문종(文宗)의 하명을 받고 단종을 보호하다 죽임을 당했다. 참회와 거리를 둔 일편단심의 삶이다.

그런데 한명회(韓明澮)는 세조 때부터 9대 성종(成宗) 때까지 거짓 참회를 하며 충신과 간신으로 둔갑해 부귀영화를 누렸다. 여기에 유자광(柳子光)이 끼어들어 세력다툼을 하며 위선적 참회를 하며 간신의 서열 1, 2위를 다퉜다.

16대 왕 인조(仁祖) 때 김자점(金自點)은 인조반정에 관여해 출세했는데 불리할 때는 거짓 참회하고 이로울 때는 충신으로 돌변, 결국 간신으로 몰락하면서 처형당했다. 거짓 참회의 정점에 14대 왕 선조(宣祖)와 이완용(李完用)이 있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겪으며 백성을 보호한다면서 정작 개성, 평양, 의주로 피신했다.

성웅 명장 이순신(李舜臣)의 빛나는 승전을 치하하기는커녕 시기했고 간신 기질이 있는 원균(元均)을 가까이했다. 그는 거짓 참회로 일관했다.

결정적 근거가 아들 15대 왕 광해군(光海君)에게 신위(神位) 약속을 15차례나 했는데 지키지 않았다. 왕의 자질이 부족했다. 이완용은 26대 고종(高宗), 27대 순종(純宗) 두 왕을 모시면서 오히려 겁박하고 친러, 친미, 친일로 오가며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賣國奴) 중의 매국노다. 5작위 중에 2등 작위 후작을 받으며 부귀영화를 누렸다. 참회는 결코 없었다.

참회는 위선적 참회가 아닌 진정한 참회를 해야 한다. 아니면 침묵하면 된다. 영웅이 참회한다면 어떤 참회를 했을까. 우리 후손들은 헤아리고 자나 깨나 애국심으로 뭉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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