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지나고 농사 앞둔 3~4월줄다리기로 ‘풍년·평안’ 기원한국·캄보디아·필리핀·베트남2015년 유네스코에 공동 등재[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전통놀이인 ‘줄다리기’. 해마다 겨울이 지나고 농사를 준비하는 계절인 3~4월이 되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우리 선조들도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줄다리기를 했다. ‘기지시줄다리기’ ‘영산줄다리기’ 등 지역적 특성을 담은 줄다리기는 오늘날 꾸준히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줄다리기는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캄보디아와 베트남, 필리핀 등
‘자연환경 대응 지혜’ 가치 인정[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우리나라 주거생활의 기본이 되는 ‘온돌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 신규 종목으로 지정 예고했다.문화재청(청장 김종진)에 따르면, 온돌문화는 청동기 시대를 거쳐 원삼국 시대 부뚜막 식 화덕과 연도(烟道, 연기가 빠져나가는 통로)가 설치된 원시적 형태의 난방방식에서 기원한 것으로, 기원전 3세기~1세기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원시적 온돌 유적들이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 점들로 미뤄 보아 한반도에서 온돌문화는 2천년 이상 전승됐다고 추정된다.우리 온돌은 서양의 벽난로와 다르게 연기를 높은
청백리(淸白吏)를 아는가. 청렴결백한 공직자를 의미하며, 오늘날 청백리상을 수여할 정도로 유명하다. 청백리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200여명의 청백리가 배출됐다. 도덕·효·인 등의 덕목을 겸비, 이상적인 관직자인 조선의 청백리를 알아보자.[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중기 문신이자 청백리 중 한 사람인 김상헌 선생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군수 김생해(金生海)이고 아버지는 돈녕부 도정(都正) 김극효(金克孝)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선조 23년(1590) 진사시에 합격하고 159
한중연 ‘조선 군대 생활사’ 발간단종 폐위 등 수차례 사화 발생재건 5년 후 길한 날 택해 옮겨궁궐 호위·숙위에 특히 신경 써[천지일보=장수경 기자] 1592년 임진왜란 발발 후 경복궁과 창덕궁·창경궁의 세 궁궐은 모두 소실됐다. 광해군 2년(1610) 창덕궁은 재건됐고 법궁이 됐다. 하지만 광해군은 재건된 창덕궁에 가기를 꺼려했다.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긴 것은 낙성하고도 5년이 지난 후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행궁 생활 열악, 궁궐 중요성 강조한국학중앙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인정사정, 조선군대 생활사’ 자료에 따르면, 임
청백리(淸白吏)를 아는가. 청렴결백한 공직자를 의미하며, 오늘날 청백리상을 수여할 정도로 유명하다. 청백리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200여명의 청백리가 배출됐다. 도덕·효·인 등의 덕목을 겸비, 이상적인 관직자인 조선의 청백리를 알아보자.[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조선의 청백리 중 한 사람인 기건 선생의 본관은 행주(幸州), 호는 청파(靑坡)․현암(眩菴)이다. 시호(諡號)는 정무(貞武)다. 할아버지는 직장(直長) 기중평(奇仲平)이고 아버지는 공조전서 기면(奇勉)이다.기건 선생의 집은 청파의 만리현에 있었다
청백리(淸白吏)를 아는가. 청렴결백한 공직자를 의미하며, 오늘날 청백리상을 수여할 정도로 유명하다. 청백리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200여명의 청백리가 배출됐다. 도덕·효·인 등의 덕목을 겸비, 이상인 관직자인 조선의 청백리를 알아보자.[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조선 전기의 문신인 구치관(1406~1470)선생은 대표적인 청백리이다.할아버지는 개성 부윤 구성로(具成老)이고 아버지는 목사 구양(具楊)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세종11년(1429)에는 생원시에 합격했다. 세종16년
동지 고사·지신밟기·팥떡 나눔 이어져[천지일보=지승연 기자] 22일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이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은 동지를 맞이해 동지 행사를 개최했다.22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동지 행사가 진행됐다. 행사는 동지 고사·지신밟기 공연·동지 팥떡 나눔 등으로 구성됐다.동지는 24절기의 22번째 절기로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동짓날 저녁에 동지 고사를 지냈다. 동지 고사에서는 액운을 없애고 복을 불러들이는 목적으로 집안 곳곳에 팥죽을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인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로비에서 동지팥떡 나누기 행사가 진행 중이다.동지팥떡에 대한 설명을 들은 홍콩 관광객은 “우리나라에서는 팥을 묻히지 않은 동그란 떡을 만들어 먹는다”며 “동지 풍습이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인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로비에서 동지팥떡 나누기 행사가 진행 중이다.이날 박물관을 찾은 외국인에게 국립민속박물관 직원이 동지팥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인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로비에서 동지팥떡 나누기 행사가 진행 중이다.올해는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든 애동지다. 애동지에 팥죽을 하면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말이 있어 애동지에는 팥죽대신 팥떡을 해먹는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인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앞에서 시민들이 동지고사 지신밟기 공연을 구경하고 있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인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 오촌댁에서 동지고사가 진행되고 있다.동지고사는 팥죽을 솔가지에 묻혀 집 울타리 안에 뿌려 잡귀의 침입을 막기 위해 행하는 고사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22일은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이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 오촌댁에서 동지고사가 진행됐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인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 오촌댁에서 동지고사가 진행되고 있다.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인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동지고사를 앞서 지신밟기 공연단이 이동 중이다.
포천서 출생, 조선 전기 문신김정희ㆍ한호와 조선 3대 명필가산수 좋은 변방 골라 외직 활동[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우리나라 사람이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 시조의 작가는 봉래 양사언(1517~ 1584) 선생이다.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한 양사언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인이며 서예가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응빙(應聘), 호는 봉래(蓬萊)·완구(完邱)·창 해(滄海)·해객(海客)이다. 아버지는 주부(主簿)를 지낸 희
청백리(淸白吏)를 아는가. 청렴결백한 공직자를 의미하며, 오늘날 청백리상을 수여할 정도로 유명하다. 청백리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200여명의 청백리가 배출됐다. 도덕·효·인 등의 덕목을 겸비, 이상적인 관직자인 조선의 청백리를 알아보자.[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조선의 청백리에는 대표적으로 김종순 선생(1405~1483)이 있다. 김종순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시호는 공호(恭胡), 본관은 경주(慶州)다.그는 조선 개국공신이자 좌찬성을 지낸 김균의 손자다. 아버지는 김계성, 어머니는 강원도관찰사 이
아픔 담긴 장소지만 관광객 이어져인조, 남한산성 남문 통해 산성 들어가청나라 12만 대군 주둔한 곳 훤히 보여수어장대, 옹성 등 군사적 시설도 남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치열했던 47일간의 역사를 담은 남한산성 이야기가 최근 영화로 제작됐다. 개봉 7일 만에 300만명을 돌파하는 등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엄동설한인데다 식량부족까지 덮친 악조건. 싸워야 할지, 항복해야 할지 조선의 왕 인조는 선택해야 했다. 밤낮없이 고뇌로 씨름해야 했던 남한산성의 현장에서 그날의 숨결을 다시 한번 느껴봤다.◆정묘호란에 이어진 병자호란경기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추석 황금연휴를 맞아 문화재청이 10월 9일까지 열흘간 주요 문화유산을 휴무일 없이 무료 개방한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는 시민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