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서오릉의 ‘홍릉’은 제21대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의 단릉이다. 원래 영조는 정성왕후의 옆자리에 묻히고자 허우제(무덤의 옆자리를 비워두는 방식)로 했으나 결국은 정순왕후와 함께 원릉에 묻혔다. 영조와 정성왕후는 왕과 왕비의 부부로서 33년이라는 최장기 기록을 세웠다. 정성왕후는 영조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한몫했으나 자식이 없었다. 영조는 노론과 소론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탕평책을 펼쳤고 백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으로 나라를 편하게 다스렸다. 정성왕후는 정비임에도 영조의 총애를 받지 못했으나 어질고 너그러워
글·사진 이제철 풍산화동양행 대표 속리산, 내장산, 경주 기념주화(2019년)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자연환경의 아름다움과 생태 보전의 미래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기념주화를 발행하였는데 2017년 ‘지리산’ ‘북한산’을 시작으로 약 7개년에 걸쳐 발행할 계획을 수립하였다.2019년 세 번째 시리즈로 속리산, 내장산, 경주를 11월 14일에 발행하였다.▶ 속리산앞면 도안은 문장대와 정이품송을 묘사하였다. 문장대(1054m)는 속리산을 대표하는 고봉 중 하나로 화강암의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운장대
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고양 서오릉은 숙종과 그 부인, 며느리들이 함께 묻혀있다. 숙종과 인현왕후, 인원왕후(명릉), 인경왕후(익릉), 희빈 장씨(대빈묘)와 두 며느리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홍릉),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사친 정빈 이씨(수경원)가 능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동일구역 왕릉에 4명의 부인과 더불어 며느리까지 모여 있는 경우는 유일하다. 숙종은 4명의 왕비, 46년 재위, 초강력 왕권, 왕비와 집권세력 교체 등 다양한 모습을 가진 왕이다. 왕비를 폐하고 죽이고, 송시열과 같은 거물들을 일거에 처형하는 등 조변석
글·사진 이의준 왕릉답사가태릉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능이다. 태릉은 여느 왕후의 무덤과 달리 웅장할 뿐만 아니라 왕후의 무덤임에도 중국의 황제처럼 ‘태릉(泰陵)’의 묘호를 가졌다. 문정왕후는 봉은사 주지 보우와 의논해 장경왕후의 곁에 있던 남편 중종의 무덤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자신이 그 곁에 묻히고자 했다. 그러나 아들 명종은 왕후를 태릉에 묻었다. 문정왕후는 중종, 인종, 명종 대를 거치며 27년간의 왕비와 8년의 수렴청정, 21년의 대비의 역할을 하며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왕후는 전임 단경왕후나 장경왕후와 달리
글 사진 이제철 풍산화동양행 대표 ‘한국의 문화유산’ 시리즈 3차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역사유적지구’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채택하였으며, 이를 통해 신라와 백제 왕조의 찬란한 문화를 비교하여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경주역사유적지구앞면 도안은 경주 동궁과 월지(東宮과 月池)의 전경으로, 신라 문무왕 14(674)년 때 창건된 별궁과 인공 연못으로 왕자의 거처 및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1980년에 복원되었다(사적 제18호).뒷면 도안은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七佛庵 磨崖佛像群)으로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해인사 장경판전, 남한산성 기념주화 (2014년)한국은행은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한국의 문화유산 시리즈’ 기념주화를 2013년 창덕궁, 수원화성, 한글 기념주화를 시작으로 4년간 4차에 걸쳐 발행하였다.201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해인사 장경판전’ ‘남한산성’을 도안으로 우리나라 기념주화 최초로 원형 외에 사각형과 삼각형의 형태로 제작함으로써 주화 제조 신기술과 조형미의 조화를 도모하였다.원형은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글 신현배옛날 그리스의 ‘아르카디아’란 나라의 왕 이아소스는 아들을 얻고 싶었다. 그 때 아내인 클리메네 왕비가 딸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바로 아탈란테다.왕은 너무도 실망이 컸다. 왕한테는 딸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왕비가 또 딸을 낳았으니 그 기분이 어떻겠는가.왕은 시종을 불러 명령했다.“저 아이를 산속에 버려라. 궁전에서 멀리 떨어진 산에 가서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두고 와야 한다.”시종은 왕의 명령을 어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아탈란테를 버리고 궁전으로 돌아왔다.그런데 그때 곰 한 마
글, 사진 서상진 세계잡지연구소장은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조총련계가 일본어로 만든 종합잡지이다. 그간 여러 이유로 우리나라 잡지사에서 빠져 왔기에 이번에 소개하고자 한다.필자가 소장한 잡지는 1946년 창간호부터 1949년 9월 통권 31호까지 9권이다. 최종적으로 몇 호까지 나왔는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그 당시로는 드물게 31호까지 간행된 것으로 보아 꽤 장수한 잡지로 볼 수 있지 않을까?창간은 1946년 4월 1일인데 창간호에서 특징적인 것을 보자면 문단의 괴짜 시인 을파소 김종한의 유고시 외 1편
글, 사진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3.1운동기념사업회 회장만주라는 땅만주는 중국 동북의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과 내몽고자치구를 포함하는 지역이나 원래 동쪽으로 러시아의 연해주와 북쪽으로 아무르주, 하바롭스크 주변지역까지 포함한다. 비옥한 평원을 가진 만주는 역사적으로 그 경계와 지배세력이 정세에 따라 크게 변동을 겪어왔다.고대 만주는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땅이었다. 만주는 한민족 5000년 역사의 3/4 기간 동안 역사무대였다. 중국 대륙에 진(秦, BC221~BC206)나라를 시작으로 전한(前漢, BC201~AD4
글, 사진 서상진 세계잡지연구소장예견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2020년 5월 4일 문화재청에서 불교계 대표 잡지인 ‘佛敎’를 국가등록문화재(782호)로 지정한 일이 그것이다. 잡지 ‘佛敎’는 1924년 7월 15일 창간되어 1933년 108호 종간되었는데 그 서지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발행겸 편집인 : 권상노(1879~1965) - 인쇄소 : 한성도서주식회사 - 인쇄인 : 노기정 - 발행소 : 불교사 - 정가 : 20전 - 면수 : 78면항상 창간사에는 특별한 뜻을 담는 법이라 조금 살펴보기로 하는데, 일제강점기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맥국의 고지·춘천의 역사 강원도 춘천은 고대 맥국(貊国)의 땅이라고 한다. 우리 역사에서 잃어버린 맥국은 실재 존재한 왕국이었을까. 지배자들이 살았던 왕성은 어디일까. 문화는 어떠했을까. 글마루 취재반과
글•사진 이제철 한국은행은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의 자긍심 고취, 해외 홍보 등을 위해 2010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 기념주화 시리즈를 발행했다. 2010년 ‘종묘’, 2011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이어 세 번째 주화인 ‘석굴암과 불국사’ 기념주화를 발행했다. 경주 토함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은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의 핵심으로 신라 법흥왕 15년에 나라의 안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하여 세워졌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건물은 물론 값진 보물들이 거의 불에 타거나 약탈되었으나 지속적인 원형복구 및 보수로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인들이 앞다퉈 사랑한 용인 형승조에도 “용인은 왕도(漢陽)와 가까워서 옛부터 빈객들이 모여드는 땅”이라고 했다. 조선 세조 때 문신인 김수녕(金壽寧)이 지은 신정(新亭) 기문에 사통팔달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천험의 요새 고구려 포곡식 성 문수산성은 해발 376m의 문수산(文殊山)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성이 갑곳진(甲串鎭)에 닿았다고 되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옛날 강
42기의 조선왕릉 중 2기(제릉, 후릉)는 북한 개성에 있다. 이성계의 첫 부인 신의왕후 한씨와 2남 정종 부부의 무덤이다. 한씨는 남편(이성계)을 내조해 6남 2녀의 자식들과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젊은 경처 강씨의 뒷전에서 묵묵히 조강지처의 역할을 다했다. 아들 정종은 권력에 욕심을 부린 왕이 아니었다.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전투에 나서고 효성과 형제애를 보였다. 이처럼 나라와 가정의 초석을 세운 모자이지만 신의왕후는 신덕왕후에, 정종은 태종 이방원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이들이 잠든 북한 개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강원도 평창군은 고구려 시대 ‘욱오현(郁烏縣)’ 혹은 ‘우오(于烏)’라고 불렸다. 한자사전에서 ‘郁’의 뜻을 찾아보면 성할 욱, 울창할 욱으로 나온다. 성하고 창성하다는 뜻이니 지금의 군명 평창(平昌)과
2019년부터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하고 있는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 답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 글마루 임계면 송계리 고구려 산성과 고분군 송계리산성은 강릉·동해지역으로부터 정선으로 넘어오는 길목인 삽당령과 백복령이 한눈에 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성도 고구려계의 석축 모습이 완연하다.
지역사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 곳곳의 역사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흔하게 역사 교과서 등에서 볼 수 있는 주제가 아닌,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지역을 지켜줬던 과거의 흔적들을 찾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이 글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알고 이곳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다시금 감사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이 있네. 이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하더라도 이 또한 행복 아닌가. 남의 눈에는
영·호남과 충청 ‘삼남의 통로’흥타령관·천안삼거리공원까지흥과 함께 정취에 취하다 복합 문화공간 ‘천안박물관’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유물들을 한자리서 보다[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천안 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으로 시작되는 흥타령(천안 삼거리) 민요와 태조왕건 하면 떠오르는 지역. 바로 천안이다.특히 천안삼거리는 옛날 영남과 호남과 충청도에서 한양(서울)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북쪽으로는 서울, 남쪽으로는 경상도인 대구·경주 방향과 서쪽으로는 전라도인 논산·광주·목포 방향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삼남대로의 분기점으로 알려
역사는 기록된다. 역사는 미래를 바라볼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겨진 유물은 그 당시 상황을 말해 주며 후대에 전해진다. 이 같은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 보관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장소가 박물관이다. 이와 관련, ‘이달에 만나본 박물관’ 연재 기사를 통해 박물관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1만번의 망치질 거쳐 탄생치장보단 예리한 날이 생명‘一片心’ 글자 장도정신 담아[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길이는 한 뼘 정도. 은으로 장식돼 있고 노리개와 함께 옛 여인네들이 늘 품에 매달았던 작은 칼. 바로 ‘은장도’다. 절개의 상징이던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