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가 독자참여코너로 가로세로 낱말 퀴즈를 연재합니다. 낱말 퀴즈는 가로세로 낱말퍼즐 저자로 잘 알려진 김수웅 선생이 직접 출제한 퀴즈가 격주로 게재됩니다. 퀴즈에 응모하는 독자 중 5분을 추첨해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증정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 4월 20일/몸이나 마음에 장애나 결함이 있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받는 사람3. 4월 25일/국민의 준법정신을 높이고 법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정한 날5. 특수한 장치를 이용해 남의 이야기, 회의의 내용, 전화 통화 따위를 몰래 엿듣는 일7. 관찰이
한국과 쿠바가 양국 유엔 대표부가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공식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번 쿠바와 수교로 한국 수교국은 193국으로 늘어났다. 유엔 회원국 중 미수교국은 중동의 친북 국가인 시리아 한 곳만 남게 됐다.쿠바는 1949년 대한민국을 승인했지만 1959년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 이후 양국 간 교류는 단절됐다. 공산 국가가 된 쿠바는 1960년 북한과 수교하고 ‘참호를 공유한다’는 특수 관계를 유지해 왔다. 북한을 방문한 쿠바 카스트로는 “하나의 조선만 있다”며 김일성을 지지하기도 했다.쿠바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 불
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대만은 인구 2400만명으로 섬나라다. 중국은 대만을 항상 자기 영토라고 천명한다. 한국과 1992년 8월 24일 수교할 때 미국과 1979년 1월 1일 외교관계를 수리할 때도 전제 조건이 있었다. 중국의 일부분이며 유일한 국제법상 합법정부는 중국 중앙 정부다라는 것이 수용돼야만 했다.세계 어떤 국가와도 마찬가지로 “대만은 분리해야 분리할 수 없는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것이 용돼야만 수교를 했다. 혹시 어느 특정 국가가 수교 후에 중국이 실질적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니 대만의 분리를 인정하거나 대만에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한때 북한의 외교적 공세가 찬란하던 시절도 있었다. 적어도 1970년 말까지였다. 그 당시 남북한의 외교적 역량은 도토리 키 재보기였다. 특히 1970년대 중반 비동맹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저 아프리카 등 좀 문명이 뒤떨어진 나라들에서 평양정권의 인기는 괜찮았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을 평양으로 불러들여 체육관이나 건설해주고 농기계 몇백대 집어주면 김일성 만세를 부르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무덤으로 가 버렸다. 북한 경제가 무너져 내리며 국제적 위신도 함께 하강했다. 고난의 행군을 겪은 1990년대 중반 이
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국제관계, 외교관계, 인간관계, 사회관계 등등 ‘관계’라는 표현을 무수히 많이 쓴다. 도대체 이 관계라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성이론은 관계를 설명하는 대표적 이론이며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개념이다. 존재가 있기에 관계가 성립되고 존재는 관찰자 인간이 개입해 규정함으로써 존재의 의미가 있다.138억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가 빅뱅을 통해 실체화됐다. 우주 대공간에서 끊임없이 유성들 사이 관계 속에서 충돌과 아니면 인간이 알지 못하는 사건이 터지고 상호 관계 속에서 변천되면서 인간이 개입해 변화되거나 진화된
장순휘 정치학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과거 2020년 10월 23일 중국 시진핑의 6.25 전쟁 관련 망언이 있었다.시진핑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식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이라고 지칭하며, “중국인민지원군(The Chinese People’s Volunteers)이 북조선의 요청을 받고 참전해 승리를 거뒀다”고 억지 주장했다. 당시 강경화 외교장관은 문재인 정권의 무대응(無對應)을 항의하는 질의에 “제반 사항을 고려한 판단”이라는 국격 없는 발언으로 어영부영 넘어간 적이 있었다.문재인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교통수단의 발달과 인터넷의 확산으로 지구는 일일생활권으로 가고 있다.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여권이 갖는 힘이 세계적으로 수위를 다툴 만큼 커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여권 파워는 국가 간의 외국인에 대한 입국허가인 비자를 짧은 기간 체류하는 경우 면제하기로 한 국가의 수를 기준으로 결정한다. 비자면제협정이 많이 체결되면 국민이 많은 국가를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고, 이는 국력이나 국가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체결 국가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관계도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싱하이밍 중국대사의 중국패배 베팅 공개 발언이 정치권을 흔들었다. 주한 중국 특명 전권대사다. 한국어에 능통하다. 북한 사리원농업대학에 중국 정부 파견 유학생으로 가 젊었을 때부터 한반도와 인연이 깊다.1988년에 북한주재 중국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시작해 한중 수교 당시 1992년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3등서기관 등을 거치면서 중국 내 한반도통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에는 북한 중국대사관 대사대리도 역임했고 2008년 주한중국대사관 근무, 2020년부터 중국대사로 한국에 주재하고 있다. 순수 20
흔히 말하기를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는 역사 그 자체에 함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역사는 거울과 같으니, 역사를 오늘의 스승 곧 반면교사 삼자는 의미다. 따라서 역사 속에는 오늘이 있고 나아가 내일이 있는 것이다.이를 바꿔 말하면, 오늘과 내일이 없다면 역사는 필요치 않으며 아예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요즘 윤석열 대통령 내지 윤 정부의 대일본 외교노선이 핫이슈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나라 일본과의 외교관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과 같이, 스포츠 문화 경제 군사
장순휘 정치학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지난 5일 한일우호국민협의회(김홍규 초대의장)가 발족돼 창립총회를 거행했다. 한일우호국민협의회를 단체명에서 보듯이 ‘한국과 일본의 우호증진을 위해 국민이 구성한 협의회’라고 보면 된다. 한일 양국이 주재 전권대사급 외교관계를 전제하자면 국가 간 얼마든지 직접 소통할 채널이 충분하지만 지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래로 과연 58여년간 자유민주진영의 우방국으로서 화해와 신뢰를 구축해 왔는가에 대해 반신반의(半信半疑)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작금의 한일외교갈등의 평행선에는 양국의 입장
장순휘 정치학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문재인 정권의 5년간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는 냉전(冷戰)을 방불케 하는 최악의 대결국면이었다. 문 정권에서 일본과 시비를 다툰 논점에는 원론적으로는 과거사 문제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문제를 풀어갈 생각보다 반일감정을 자극해 정치적 반사이익을 계산한 좌파적 외교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 일본과는 자유민주진영에 공존하면서 냉전기에는 국익과 실리를 위해 안보와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중시했다. 탈냉전기에는 과거사 문제로 한일 양국 간 갈등이 증폭하면서 해결의 기미가 없는 이전투구
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1627(인조 5)년 1월 후금(後金)은 아민이 3만명의 군대를 이끌고 광해군(光海君)이 폐위(廢位)된 것에 대한 복수를 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했다.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점령한 후금의 주력부대는 용천, 선천을 거쳐 안주성 방면으로 남하했으며 일부 병력은 가도의 모문룡(毛文龍)을 공격하였다.이러한 후금의 침략에 대응하여 조선군(朝鮮軍)은 곽산의 능한산성(凌漢山城)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후금의 주력부대(主力部隊)를 막으려 했지만 실패하였으며 가도의 모문룡도 신미도로 패주(敗走)하게 되었다. 후금의 침략이
이병진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위원 미·중 관계가 좋아야만 한다. 항상 좋을 수는 없지만, 양국 간 긴장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세계의 질서 있는 평온과 발전에도 순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트럼프 집권 이후부터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한 양국 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서 냉각의 온도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특히 한국의 안보와 평화 나아가 한반도의 통일에 결정적으로 관계되는 북한의 안정적 관리는 냉정히 분석하면 현시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는 미·중의 불편한 관계의 지속과 정비례하는 국제관계
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2012년 3월, 취재 기자 시절 오랜 인연을 쌓았던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겸 대한체육회장과 함께 태릉 육군사관학교를 같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필자와 공수 부대 시절 중대장과 부중대장으로 같이 근무했던 박종선 당시 육사 교장의 초청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육사 교정 내에 있는 육군박물관에 들어서면서 방명록에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 중령 김운용’이라고 서명했다. 그가 6.25전쟁 참전용사로 수차례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역전의 용사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김 전 부위원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77차 유엔총회가 20일(현지시간) 열린 가운데 각국 지도자들은 위기와 갈등으로 악화하는 세계 질서와 이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현실을 평가했다. 이날 코로나19 유행으로 2년 만에 많은 대통령, 총리, 군주, 외교 장관 등이 직접 모여 얼굴을 맞댔으나 이들의 연설 어조는 축하와는 거리가 멀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가 어마어마한 기능적 장애에 갇혀있다며 “세계는 위험에 처해 있고 마비돼 있다”고 평가했다. 일반토의 10번째로 단에 오른 윤석열 대통령도 “오늘날 국제사회는 힘에 의한
국제사회에서 적과 동지는 수시로 뒤바뀔 수 있다. 굳이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을 적용하는 것은 그만큼 국익을 건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혈맹을 넘어 ‘경제동맹’까지 선언했던 미국이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한국경제에 큰 손실을 입혔다. 미국이 한국의 뒤통수를 때렸다는 비판도 나왔다. 앞으로 언제든 경제적으로는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미국에 더 가까이 다가섰던 윤석열 대통령만 난처하게 되고 말았다. 국제사회가 이처럼 국익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외교전을 펼치고
양국이 즐겨 쓰는 ‘화이부동’ 같은 한자성어 해석 정반대 中 “서방에 좌지우지 말아야” 韓, 한미동맹 숙명 우회 표현 정권 따라 對중국 정책 달라져 국제 위상 걸맞는 언행 요구돼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은 24일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삼십 이립(三十 而立)’이라고 했다. 유교 사상을 걷어낸 지 오래인 중국이지만 만나 교분을 다져온 지 30년째 되는 날, 하필 공자(孔子)의 경험담을 덕담의 소재로 꺼낸 것이다. 당대 최고 중국 외교관의 덕담 화법에는 2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이 덕담이 갖는 형식논리다.
1992년 8월 24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이상옥 당시 한국 외무장관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역사적인 한중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이로써 한국과 중국은 한국전쟁 시기의 적대적 관계를 뒤로하고 협력과 상생의 새로운 길을 마련한 것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지금까지 외교적 성과로 꼽고 있는 ‘북방정책’의 대미를 장식한 셈이다. 24일로 한중수교 30년을 맞았다. 그 새 한중관계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를 이룬 듯 눈부신 발전과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도약했으며, 중국은 ‘빅
을지연습이 22일부터 내달 1일까지 진행된다. 최근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한 경제협력 방안을 담은 ‘담대한 구상’ 속에서도 군사력 강화는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힌다. 윤석열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 발표 후 북한은 조롱과 원색적 비난으로 답했다. 하지만 북한 외교관 출신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남한 대통령의 제안에 김여정 부부장이 조목조목 반박한 것과 사흘 만에 신속 반응한 것을 두고 윤석열 정부의 담대한 구상이 김정은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담대한 구상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북한식 관심의 표현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30~50클럽 국가들(1인당 소득 3만불 이상, 인구 5천만명 이상) 가운데 그 나라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것 같다. 특히 주한 중국대사를 대하는 한국 언론의 태도를 보면 그러하다. 외교의 세계에서 대사들은 조용히 주재국 정부를 접촉, 자국의 정책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거나 요청을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방송에 출연하고 그것도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국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행동이다. 그런데 왜 한국 매체들은 중국대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