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정치학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

문재인 정권의 5년간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는 냉전(冷戰)을 방불케 하는 최악의 대결국면이었다. 문 정권에서 일본과 시비를 다툰 논점에는 원론적으로는 과거사 문제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문제를 풀어갈 생각보다 반일감정을 자극해 정치적 반사이익을 계산한 좌파적 외교술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 일본과는 자유민주진영에 공존하면서 냉전기에는 국익과 실리를 위해 안보와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중시했다. 탈냉전기에는 과거사 문제로 한일 양국 간 갈등이 증폭하면서 해결의 기미가 없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양상으로 평행선이다.

이러한 한일 양국의 대립과 갈등은 하드웨어적인 충돌이 아닌 것은 다행이나 소프트웨어적으로 지속되면서 경제와 문화예술, 관광 및 청소년 교류분야 등 전반적인 비정치적 민간분야에서 불편한 한일 관계를 조성하고 있다. 더욱이 21세기 들어 북핵의 현존 위협으로 등장한 동북아의 안보환경에서 북한이라는 ‘공공의 적(敵)’을 상대하기도 버거운데 한일 양국은 상호 협력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갈등국면으로 빠져드는 것은 아닌지 한일 양 국민은 말은 못하지만 정치권을 불신하고 있다. 최근 한일우호국민협의회(김홍규 의장)가 창설되는 것은 바람직한 움직임으로 기대가 된다.

이러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대변하는 고사(古事)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일 것이다. 사이가 나쁜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뜻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생사가 걸린 위험 앞에서도 이성을 잃고 상대방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끝내 물이 새는 같은 배에서 적개심(敵愾心)으로 돕지 않다가 침몰해 죽는다는 역설적 해석으로도 알려진 고사성어이다. 그러니까 한일의 공적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위협을 당하면서 언제까지 아웅다웅 싸우고만 있을 것인가를 묻는 우화(寓話)로만 보기에는 심각한 안보적 의미를 담고 있다.

정말 심각한 국가존망의 쓰나미가 다가오는 위기를 앞에 두고도 한일 간의 정치권에서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징용문제, 독도영유권 불법주장문제 등 많은 문제를 다투고 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편협하고 졸렬한 속내를 보이는 점을 언제까지나 들쑤시고 지적해야 하는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전향적인 해법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소위 과거사 사과요구 문제도 과거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 공식적으로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밝힌 것으로 종결하는 수용자세로 대한국인의 도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첫 단추가 풀어져야 다른 갈등도 풀 수 있다고 본다. 반복되는 사과 문제를 풀면 다른 문제에 일본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일본 역시 북한의 절대적 무력 도발 개연성을 무시한 채 끊임없이 한국과의 외교관계를 갈등으로 방기(放棄)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아집(我執)이라는 점에 공감할 것이다.

지난 15~16일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공식방문은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결단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를 들여다보면 “과거 우리의 자유를 되찾고 지키기 위해 정치적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대상이었던 일본은 이제 세계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야 하는 이웃입니다”라고 일본의 과오를 넘어서 현실적 국제정세를 통해 포용하는 국제정치력을 보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누군가 결자해지의 지도력을 보여야 할 시간이 온 것으로 본다면 이제 대한민국은 일본이 다시는 경시(輕視)할 상대도 아니고, 오히려 국력차원에서 일본을 압도하는 강한 이웃이라는 점을 자평(自評)할 수 있지 않은가? 사족(蛇足)이지만 임진왜란이 ‘10만 양병설’의 미비로 당했다면 지금은 60만 대군이 방향만 바꾸면 일본열도 정도는 과거사를 되갚아 줄 수도 있다.

다만 일본의 강점시대의 책임을 자책(自責)하는 ‘식민사관’이 노출된 것은 유감스럽다고 본다. 그 점은 대통령의 연설 작성 측면에서 반론의 빌미를 제공했다. 도대체 대통령실의 외교라인과 박진 외교부 장관은 대통령의 연설문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일본 방문으로 이어지는 국제외교에서 적어도 기시다 총리의 상응담화나 현안해법의 성과가 제시되는 막전막후 외교채널도 없었나? 윤석열 대통령의 고뇌에 찬 역사적 결단을 참모진으로서 무엇을 준비했는지 미숙한 외교라인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래야 “역사를 팔아서 미래를 살 수 없다”는 야당의 주장을 “역사문제를 해결해서 막힌 미래를 열 수가 있다”는 외교로 대응할 수 있다. 대통령의 방문외교는 완벽한 외교적 성과를 전제하고 가는 것이 외교부의 책무임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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