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는 ‘전쟁종식 국제법 제정’과 ‘종교대통합’이라는 평화의 답을 제시하며 획기적인 평화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6.25 참전용사이기도 한 그는 “전쟁 없는 평화 세계를 이뤄 후대에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자”며 지구촌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평화운동에 동참시키고 있다. “평화, 하면 된다”는 메시지로 지구촌에 감동과 희망을 선사한 한국인 평화운동가 이만희 대표의 평화순방을 1차부터 31차까지 재조명한다.

2014년 1월 24일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을 체결을 이끈 이만희 HWPL 대표와 협약서에 서명한 가톨릭 이슬람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2014년 1월 24일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을 체결을 이끈 이만희 HWPL 대표와 협약서에 서명한 가톨릭 이슬람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천지일보 2021.8.11
ⓒ천지일보 2021.8.11
ⓒ천지일보 2021.8.11
ⓒ천지일보 2021.8.11

기획연재|다시보는 8차 평화순방 필리핀 종합

한국인 평화운동가가 이룬 기적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HWPL 이만희 대표, 84세에 오직 ‘평화’ 위해 이역만리 민다나오 방문

40년간 주민 12만명 사망한 유혈분쟁터에 목숨 걸고 가 평화협정 이뤄

“주민들, 이만희 대표와 정치인 차이 금세 알아봐… 진정성이 이룬 성과”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이만희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대표는 ‘지구촌 전쟁종식·평화를 이루라’는 천명(天命)을 받고 2012년부터 세계평화순방에 나섰다. 2013년 9월 6차 평화순방 중 필리핀에서 만난 안토니오 레데스마 카가얀데오로 가톨릭 대주교는 이 대표에게 민다나오 분쟁 종식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민다나오는 유혈분쟁이 반복되는 전쟁터였다. 가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대표는 이듬해 1월 84세의 나이로 이역만리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오직 ‘평화’를 위해 평화사절단과 함께 방문했다. 이 대표는 당시 이곳을 찾은 이유로 “평화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평화를 위해 와 달라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실 것을 믿고 향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2014년 1월 24일 페르난도 카펠라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 교구 전 가톨릭 대주교가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식에서 전쟁종식 세계평화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2014년 1월 24일 페르난도 카펠라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 교구 전 가톨릭 대주교가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식에서 전쟁종식 세계평화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창조주의 뜻은 전쟁 아닌 평화”

민다나오 현지 방문 후 가톨릭-이슬람 지도자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뤄진 평화협정 과정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믿기 어려운 기적의 연속이었다.

2014년 1월 24일 이 대표는 민다나오 제너럴 산토스 시내 호텔에 정부 및 시민사회단체 지도자들을 비롯해 청년단체, 대학교수 등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창조주의 뜻은 전쟁이 아닌 평화”라고 강조했다. 이어 참석자들에게 “평화를 원하는지 전쟁을 원하는지” 묻고 평화를 원한다면 손을 들도록 했다. 참석자 전원이 손을 들자 이 대표는 “그렇다면 평화협약서에 서명하라”며 현장에 참석한 가톨릭-이슬람 측 인사를 앞으로 불렀다.

즉석에서 이뤄진 평화협정엔 페르난도 카펠라 다바오 교구 전 대주교, 민다나오 마긴다나오 주지사가 참석했으며, 양측은 전쟁종식 세계평화 협약서에 서명했다. 40년 유혈분쟁 종식의 서막을 연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은 이렇게 누구도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이뤄졌다.

2014년 1월 24일 민다나오 마긴다나오 주지사가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식에서 전쟁종식 세계평화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2014년 1월 24일 민다나오 마긴다나오 주지사가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식에서 전쟁종식 세계평화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협정 직후 가톨릭, 이슬람 측 인사들은 협정결과를 바로 정부군과 이슬람군 측에 전달했다. 민간 평화협정 소식을 접한 필리핀 정부와 이슬람군(모로이슬람해방전선, MILF)은 바로 다음 날인 1월 25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40년간 내전의 종지부를 찍는 평화협정에 합의했다. 당시 합의는 17년간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던 양측의 협상과정 중 가장 큰 진전으로 평가됐다.

2014년 5월 필리핀 의회에서 민다나오 이슬람 자치구를 인정하는 이른바 방사모로기본법이 입법 절차에 돌입했고, 지난 2018년 8월 두테르테 대통령이 이 법안에 최종 서명하면서 입법절차가 마무리 됐다.

2014년 1월 25일 민다나오 주립대학교에서 진행된 청년평화세미나 전경.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2014년 1월 25일 민다나오 주립대학교에서 진행된 청년평화세미나 전경.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李대표, 평화 향한 진정성이 이룬 성과”

민다나오 유혈분쟁 종식의 서막이 올라가는 현장은 필리핀 국영방송 PTV와 민영방송 등을 통해 보도됐다. 평화협정 소식을 접한 라모스 필리핀 전 대통령은 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감사를 전했다.

2014년 1월 29일 이만희 대표가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과 만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라모스 전 대통령은 민다나오 평화협정에 대해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이라고 평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2014년 1월 29일 이만희 대표가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과 만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라모스 전 대통령은 민다나오 평화협정에 대해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이라고 평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2014년 1월 이만희 대표의 중재로 성사된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소식을 전했던 필리핀 PTV 엘리자베스 카친 기자는 본지와의 두 차례 인터뷰에서 극적인 평화 성과의 배경으로 이 대표의 ‘평화를 향한 진정성’을 꼽았다.

카친 기자는 “이만희 대표와 정치인들은 달랐다. 이 대표는 오직 평화를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민다나오까지 이역만리를 왔다”고 했다. 이어 “분쟁에 지친 민다나오 주민들은 정치인과 이 대표의 차이를 금세 알았다. ‘평화’를 향한 이 대표의 진정성이 그들을 움직였다”면서 “이만희 대표이고, HWPL이었기에 평화협정이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리핀 언론은 “그동안 수많은 평화협약을 통해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으나 또 다른 분쟁은 늘 있어 왔다. 이를 위해 많은 평화운동가들이 활동했지만 실질적인 열매를 맺은 것은 한국에 본부를 둔 HWPL”이라고 보도했다.

2015년 5월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이 체결됐던 마긴다나오주에서 이만희 대표의 평화업적을 기리기 위한 ‘HWPL 평화기념비’ 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2015년 5월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이 체결됐던 마긴다나오주에서 이만희 대표의 평화업적을 기리기 위한 ‘HWPL 평화기념비’ 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민다나오에 세워진 ‘HWPL 평화기념비’

2015년 5월 민다나오 마긴다나오주는 이 대표의 평화업적을 기리기 위한 ‘HWPL 평화기념비’를 세웠다. 현장에는 평화를 위해 정부와 MILF를 대표하는 평화회담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과 지역 대표자들이 대거 참여해 민다나오의 평화 유지와 발전에 힘쓸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이 이뤄진 1월 24일을 ‘HWPL DAY’로 지정하고 ‘전쟁에서 평화로 해방된 날’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세계 만민 앞에서 다시는 분쟁을 하지 않을 것’과 ‘HWPL과 평화의 사자가 될 것’을 약속했다.

2016년 1월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2주년을 맞아 MILF 주둔지인 민다나오 술탄 쿠다랏에도 ‘HWPL 평화기념비’가 세워졌다. 민다나오 평화가 HWPL을 통해 이뤄졌음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평화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MILF 주둔지를 찾은 이 대표 일행은 민다나오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끝없이 이어진 환영인파는 민다나오 주민들이 얼마나 ‘평화’를 고대했는지를 대변했다.

HWPL은 협정 이후 현지인들의 평화정착과 일상, 교육 회복을 위해 꾸준한 지원활동을 펼쳤다. 이들의 환영은 일상으로의 회복을 가능케한 한국인 평화운동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대변했다.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은 이 대표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많은 평화상을 수상한 이 대표는 “진정한 상은 평화”라며 ‘전쟁종식 세계평화’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평화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밝힌 바 있다.

2016년 1월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2주년을 맞아 이슬람군 MILF 주둔지인 민다나오 술탄 쿠다랏에서 ‘HWPL 평화기념비’ 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2016년 1월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2주년을 맞아 이슬람군 MILF 주둔지인 민다나오 술탄 쿠다랏에서 ‘HWPL 평화기념비’ 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제공:HWPL) ⓒ천지일보 2021.8.11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