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길은 외줄기/남도 삼백리//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 놀//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박목월(朴木月)의 시 ‘나그네’다. 쓸쓸하면서도 정다운, 나그네 걸어가는 풍경이 펼쳐지고, 술처럼 가슴이 익어 훈훈해지는, 명작이다. 우리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부르고 읊었을 민요 한 자락 같은, 정다운 시다. 눈물 속에서도 술 빚어 위안 삼을 줄 알았던 소박하고 정겨웠던 시절의 풍광이 되살아나고, 소나기 쏟아지자 훅 밀려오는 흙냄새처럼 토속의 향기가 느껴
정라곤 논설실장/시인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병원에 가보면 정말 사람들이 많다. 동네의원에는 대기석 의자까지 차 있고, 종합병원이나 상급병원에 가더라도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환자들과 보호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진료 접수처 앞, 오가는 병원 복도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에스컬레이터 대기줄이 넘쳐난다. 마치 시민들이 병원에 다 모인 것 같이 착각할 정도다. 도중에 만나게 되는 어린이 환자가 엄마에게 “아프다”며 진통을 호소하는 장면이라도 볼 양이면 마음이 안쓰러운데,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하루빨리 쾌유해 부모
별 하나이준관(1949 ~ )별을 보았다.깊은 밤혼자바라보는 별 하나저 별은하늘 아이들이사는 집의 쬐그만초인종문득가만히누르고 싶었다. [시평]‘별 하나’는 동시이다. 외로운 한 소년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진 동시이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한밤중에 홀로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저 밤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저 별들은 마치 지상의 이 소년에게 눈빛을 보내는 듯하다. “너 잘 있지, 나도 잘 있어” 하는 마음과 함께.그래, 소년은 저 별, 별, 별 하나, 하나에는 나와 같은 아이가 살고 있겠지,
맷돌정 겸(1957 ~ )고향집 근처 실개천암맷돌 숫맷돌 징검다리 놓여 있다.어처구니는 사라지고 암쇠와 수쇠는 보이질 않는다.깊이 패인 홈은 모두 마모되어 민낯이다.한평생 마주 앉은 두 사람 들숨 날숨 맞춰가며서로 보듬고 의지하며 볼 비비는 회전 마찰음휑하니 뚫려 있는 구멍 속으로 몇 가마니 쌀과 보리쌀몇 말의 콩이 산화되어 나의 빈속을 채워주었을까.자식들 손발에 물 묻히지 말라고가시고기가 되어 버린 저 맷돌흐르는 물속에 반쯤 묻힌 채 야윈 등 내밀며어서 밟고 건너가라 하네. [시평]고향은 늘 그리운 곳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나이가 들어가며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5가지 요소로 건강, 무던한 배우자, 약간의 할 일, 어느 정도의 쓸 돈, 그리고 여생을 동행할 친구가 제안되고 있다. 이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잘 챙겨나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집콕’하는 시간에 흐르는 물처럼 쉼 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아쉬움에 잠겨 앞으로 다가올 삶의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실천하며 살아가고픈 명제들을 떠올려본다.경자(更子)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아름답고 행복한 미래의 삶을 위한 지침으로 주변
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무병장수를 누리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그래서 인터넷을 열어보면 행복한 삶을 위한 지침으로 ‘행복 10계명’이 많이 제안되고 있다. ‘행복은 습관이고, 연습할수록 커진다’는 말을 떠올리며 행복한 삶을 위한 ‘십계명’을 정리해본다. 제1계명: 1주일에 3회 그리고 30분 이상 자신의 체질에 맞는 운동을 하자. 누구나 건강한 삶을 위해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평소 운동을 게을리 하던 사람이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좋은
엄마가 오고 있다조명뚜벅뚜벅 걷는 소리 아니어도우리 엄마 오는 소리 알 수 있다과일 향 꽃향기 아니지만알싸한 박하 향 엄마 냄새지친 하루 고단함 덜어볼까파스 한 장 등에 업고 터벅터벅땀 냄새 이기는 사르르 그 향기엄마가 천천히 집으로 오고 있다.[시평]엄마는 일을 하러 나가고, 혼자 남은 어린아이, 하루 종일 심심하게 하루를 보내며, 엄마는 언제 오시나, 언제 오시나 종일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매일 매일 그 시간만 되면, 저 멀리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 풍겨오는 엄마의 냄새. 어린아이는 그 소리와 냄새만으로도 이내
최상현(주필) 아무리 해변의 전등불이 훤히 불을 밝혀도 항구의 밤바다는 어둡다. 전등불은 인간의 발명품이다. 설사 그 전등불을 수천 개, 수만 개를 켜놓는다 한들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은, 동쪽 하늘에서 얼굴을 내미는 순간 단박에 어둠을 몰아내는 해와 달, 그 자연의 위대한 능력에 비해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다. 이 밤, 부둣가를 밝히는 전등불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여전히 발을 내딛기는 조심스럽고 밤바다는 어두워 멀리 볼 수가 없기에 얼핏 스치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그래도 이 얘기
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G20 정상회의가 열린 11일, 점심을 함께 먹던 N군이 말했다. “오늘 출근길에 송해 봤어요.” 묵묵부답. 묵묵히 제 밥그릇에 코를 박고 있을 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장동건도 아니고….” 뭐, 이런 생각들이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N군이 젓가락을 든 손을 휘저으며 또 말을 했다. “진짜라니까요!” 그제야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N군을 응시했다. N군이 옳다 싶었던지, 목소리를 확 끌어올렸다. “제가 도곡에서 타잖아요. 근데 다음 역 매봉에서 봤어요. 바바리코트 쫙 빼입고 서 있던데….” N군이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21일 서울․인천․경기 등 중부지방에 200㎜가 넘는 최악의 폭우가 내려 2명이 실종되고 1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모처럼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야 할 명절이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날이 된 것이다.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퍼붓는 폭우로 인해 광화문, 청계천 일대도 한때 물바다가 됐으며, 강서구와 신월동 일대도 배수 문제로 지하 가옥이 물에 잠기고 교통이 마비되는 등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서울 서남부 지역은 기상청이 예상했던 강수량의 3배가 넘는 200㎜ 이상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 /처음 만나서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1969년에 발표돼 공전의 히트를 한 패티김의 노래 이다. 작곡가 길옥윤 씨가 작사까지 한 이 노래는 과거 서울에서 큰 행사가 열릴 때마다 행사의 말미를 장식하곤 했을 정도로 서울을 대표하는 노래였다. 힘차게 도약하는 서울의 밝은 면을 잘 묘사한 가사에다 흥겨운 가락이 잘 어울리는 명편이다. 패티김, 길옥윤 콤비는 이 노래 말고도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