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맷돌 - 정 겸
[마음이 머무는 詩] 맷돌 - 정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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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돌

정 겸(1957 ~  )

고향집 근처 실개천
암맷돌 숫맷돌 징검다리 놓여 있다.
어처구니는 사라지고 암쇠와 수쇠는 보이질 않는다.
깊이 패인 홈은 모두 마모되어 민낯이다.
한평생 마주 앉은 두 사람 들숨 날숨 맞춰가며
서로 보듬고 의지하며 볼 비비는 회전 마찰음
휑하니 뚫려 있는 구멍 속으로 몇 가마니 쌀과 보리쌀
몇 말의 콩이 산화되어 나의 빈속을 채워주었을까.
자식들 손발에 물 묻히지 말라고
가시고기가 되어 버린 저 맷돌
흐르는 물속에 반쯤 묻힌 채 야윈 등 내밀며
어서 밟고 건너가라 하네.

 

 

[시평]

고향은 늘 그리운 곳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혹 비록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고 해도, 그 부모님에 대한 그리운 체취가, 정다운 모습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에 고향은 우리 마음의 본향이 아닐 수 없다.

고향에는 작은 동산도 있고, 실개천도 있다. 고향에 가기 위해 실개천을 건너는데, 암맷돌 숫맷돌이 징검다리로 놓여 있는 게 아닌가. 그렇지 부모님들께서 한평생 마주 앉아 들숨 날숨 맞춰가며, 휑하니 뚫려 있는 구멍 속으로 몇 가마니 쌀과 보리쌀 몇 말의 콩을 넣고, 서로 보듬고 의지하며 돌리던 그 맷돌. 그래서 자식들 빈속을 채워주시던 곡물을 갈고 갈던 그 맷돌.

지금은 어처구니도 암쇠도 수쇠도 사라져 보이질 않는, 깊이 팬 홈도 모두 마모되어 민낯인 채, 흐르는 물속에 반쯤 묻혀 있는 맷돌. 마치 이 등 밟고 가라고 하시는 부모님 마냥, 야윈 등 내밀며, 잠겨 있는 맷돌. 우리들 모두 그렇게 부모님이 내 주신 등을 밟으며 발에 물 묻히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온 것 아닌가.

고향 시냇물에 징검다리로 놓여 있는, 마치 부모님 모습 마냥, 깊이 팬 홈마저 모두 마모되어 민낯으로 놓여있는 맷돌, 고향 길 시냇물 건너기 위하여 징검다리로 놓여있는 맷돌을 무심코 밟으며, 문득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메어온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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