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G20 정상회의가 열린 11일, 점심을 함께 먹던 N군이 말했다. “오늘 출근길에 송해 봤어요.”
묵묵부답. 묵묵히 제 밥그릇에 코를 박고 있을 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장동건도 아니고….” 뭐, 이런 생각들이었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N군이 젓가락을 든 손을 휘저으며 또 말을 했다. “진짜라니까요!”

그제야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N군을 응시했다. N군이 옳다 싶었던지, 목소리를 확 끌어올렸다. “제가 도곡에서 타잖아요. 근데 다음 역 매봉에서 봤어요. 바바리코트 쫙 빼입고 서 있던데….”

N군이 또 말했다. “근데 오늘 지하철에 사람 엄청 많았어요. 발 디딜 틈이 없었다니까요. 송해는 아마 못 탔을지도 몰라요!”

K양이 말했다. “아 오늘 G20 회의 하는 날이라고 일부터 지하철 타러 나왔나 보다, 그 아저씨, 아니 그 할아버지!” 듣고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N군이 인터넷을 뒤졌다. N군이 봤다는 송해가 바로 그 송해 맞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하철에서 그를 목격했다는 글들이 올라와 있었고 그가 지하철에 앉아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올려놓았다. N군의 증언은 사실이었다.

알고 보니 송해 선생은 20년 넘게 지하철을 타고 다녔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건강을 지켜온 비결이었다. 선생은 이날도 G20과는 상관없이 늘 하던 대로 지하철로 이동하는 중이었고 이것이 N군의 목격담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영원한 스타는 없다고 했다. 인기를 먹고 산다는 연예인의 운명을 두고 하는 말이다.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가도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인기의 덧없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연예인은 아이들 장난감 같다는 말도 있다. 아이들은 아무리 좋은 장난감이라도 그보다 더 좋은 게 생기면 미련 없이 던져 버리듯, 대중의 취향 역시 그러해서 연예인의 운명 또한 장난감에 다름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어서 연예인 중에서는 그런 속설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들도 있다. 평생 봐 왔어도 변함없이 정다운 사람이 있는 것이다. 송해 선생이 그런 사람이다. KBS 1TV <전국노래자랑>이 1980년 11월 9일 첫 전파를 탄 지 올해로 꼭 30년이 됐다.

국내 최장수 오락 프로그램의 기록을 세운 이 프로의 터줏대감은 역시 송해 선생이다. 그동안 몇 차례 사회자가 바뀌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송해 선생이 다시 사회를 맡고 나서야 <전국노래자랑>이 비로소 <전국노래자랑> 같았다.

일요일 점심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늘 들어왔던 친숙한 멜로디였다. 빰빠라라 빠밤~ 빰빠라바라 빠밤~. 중간에 딩동뎅뎅~ 하고 실로폰을 두들겨 주는 그 센스도 여전하다.

<전국노래자랑>은 B급 문화의 원조 격이다. 정통 아트의 격에서 벗어나 보다 친근하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이른바 하위문화를 B급 문화라고 한다면, 가식 없이 웃고 즐기는 일반 대중들의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는 <전국노래자랑>이야말로 B급 문화의 원류랄 수 있겠다.

올해 84세의 연세임에도 국민 MC로 또 영원한 오빠로 맹활약하고 있는 송해 선생,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딩동뎅뎅~ 소리를 울릴 수 있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건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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