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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학위복장(1914년). 이화여전 최초의 졸업생(왼쪽부터 이화숙, 김애식, 신마숙)들이 졸업식 가운을 입은 모습이다. 여성들은 교육에서 제외되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 어렵게 공부하고 그 결실을 맺은 이들의 모습이 당차고 아름다워 보인다. 사진을 유심히 보면 졸업식 가운 안에 치마저고리를 받쳐 입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모습이 서구문물과 서양학문이 우리 안에 서서히 녹아들고 있던 개화기의 시대상과 맞물리면서 묘한 분위기를 전한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4.04.26.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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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기 예복(1900년대). 흔히들 기녀, 기생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나 조선시대 기생들은 노래와 웃음은 팔지언정 지조는 팔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멋과 풍류를 아는 자신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이들은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와 춤은 물론 거문고와 가야금 등 악기를 다루는 데도 능했다. 또한 고관대작이나 상류층 인사들을 대하는 만큼 시서화(詩書畵)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사진 속 기녀는 관기로서 화관을 쓰고 몽두리와 한삼을 입었다. 화관에는 5색 구슬 등 여러 가지 장식품을 부착했으며 수공화들로 장식해 화려하게 꾸몄다. 소매 끝에 달린 한삼은 춤을 출 때의 그 운치를 더했으며, 치마, 저고리 위에 입은 몽두리 위에는 수대를 사용해 뒤로 매듭을 묶어 여밈 처리를 했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4.04.26.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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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동(박에스더), 박유산 부부(1900년대). 한국 최초의 여성 과학자 겸 의사로 알려진 박에스더와 남편 박유산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박에스더의 본명은 김정동이었으나 세례를 받은 뒤 이름을 에스더로 바꿨으며, 18세에 결혼 후 서양 풍습을 따라 남편의 성인 ‘박’을 사용했다.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쪽을 지었고, 남편 박유산은 흰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모습이다. 두 사람 다 앞쪽에 신을 놓고 사진을 찍은 모습이 특이하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서약하는 느낌을 준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4.04.26.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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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부부 나들이(1900년대). 두루마기와 장옷을 입은 서민 부부의 모습이다. 구한말 신혼부부의 모습으로 보이며, 여자는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4.04.26.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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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정장(1910년). 당의와 대란치마를 차려 입은 조선왕조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모습이다. 대란치마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비빈이 대례복으로 입는 치마다. 금박을 찍은 단을 따로 만들어서 두 층으로 붙이는데 길이는 바닥에 한 자 덩도 끌리게 하고 폭은 보통치마보다 한 폭을 넓게 만든다. 당의는 조선시대 여성예복의 하나로 간이예복 또는 소례복으로 평복 위에 입었으며,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 입기도 했다. 당시 공주와 옹주는 10세가 지나면 처녀로서의 옷차림인 치마와 저고리를 착용했으며, 평상시에도 궁중의 품위와 체통을 지키기 위해 당의를 입었다고 한다. 머리에 쓴 족두리는 부녀들이 의식 때 예복에 갖춰 쓰던 관(冠)의 일종으로 영, 정조 때 가체 금지령이 내려진 후 성행했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4.04.26.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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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부부의 복장(1910년대). 구한말 서민 부부의 모습이다. 을미년(1895년) 단발령이 선포되고 망건 사용이 폐지되면서 머리 모양의 변화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관모도 달라지게 됐다. 상투머리 대신 짧은 머리, 중머리, 하이칼라머리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나 여전히 의관을 소중히 여겼던 이들은 탕건이나 정자관을 쓰기도 했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4.04.26.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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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복식(1900년대). 흥선대원군의 복식 간소화와 사치 금지 이후 실용화되고 평등화된 복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이다. 갓과 탕건 등이 실용화됐으며 도포에서 두루마기로의 변화 등이 눈에 띈다. 맨 왼쪽은 대한제국 시기 순검(포졸에서 바뀜)의 복장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4.04.26.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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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유적연구원 답사반과 홍천역사유적연구원 및 홍천문화원 홍천학연구소 일행의 답사 모습 ⓒ천지일보 2024.04.26.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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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승려 정원이 쓴 수타사 '사적기' ⓒ천지일보 2024.04.26.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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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석탑 부재가 뒹굴고 있는 홍천군 동면 신봉리 절터 유적 ⓒ천지일보 2024.04.26.

2024-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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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봉틀과 삯바느질 여인(1920년). 손재봉틀과 손으로 바느질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 속 여인들의 치마와 저고리의 색이 화려하다. 당시 여염집 여인들은 황색이나 다홍색 치마를 주로 입었으며, 저고리의 경우 초록이나 노란색, 분홍색, 옥색 등을 사용했다. 사진은 인쇄 과정 중에 채색을 입힌 것이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4.04.23.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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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여인의 트레머리(1900년대). 구한말 조선의 서민 여인을 찍은 사진으로 카메라를 향한 시선이 자연스럽고 당차보이기까지 하다. 자세와 표정에도 여유가 있어 보인다. 여인의 복장을 보면 저고리는 짧고 품도 작다. 질끈 동여맨 치마 위로 젖가슴이 살짝 드러나 보인다. 당시 구한말부터 개화기에 이르는 시기에 이런 복장(가슴이 드러나는)을 한 여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미니저고리는 1700년대에 처음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조선 후기부터 1930년대까지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복장이 유행했다. 젖가슴을 드러내는 것이 수치스럽다거나 성적인 것으로 풀이되지는 않았으나 이러한 복장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여인의 머리를 보면 당시 유행하던 트레머리(얹은머리)를 볼 수 있다. 트레머리는 두발을 땋아 앞 정수리에 둥글게 고정시키는 머리모양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볼 수 있다. (제공: 정성길 기록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24.04.23.

202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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