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朴 선생! 지금쯤 설악산은 절정기를 지나 단풍이 남쪽의 산야로 내려가고 있겠지요. 이곳 이국땅에서도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답니다. 우리 일행은 어저께 우시를 거쳐 쑤저우로 와서 즐거운 여행을 계속 이어가고 있지요. 상하이 바로 위쪽에 위치한 쑤저우는 “인간천당(人间天堂)의 아름다운 명예, 저명하고 문화의 이름 있는 도시”라는 명색에 맞게 중국 최고의 관광지 중 한 곳이랍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抗) 즉 ‘위에는 천당이 있고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겠지요.

쑤저우(苏州)라고 하니 마침 생각나는 게 있네요. 재작년 어느 봄날, 집사람과 함께 이곳에 와서 멋진 풍광을 처음 접하고서 ‘쑤저우(苏州)의 화사한 봄 풍경을 보냅니다’(2014. 3. 31자 본지게재) 제하의 소식을 올렸는데, 글을 읽고서 박 선생이 “언젠가 한번 인간천당에 가고 싶다”는 말을 내게 한 적 있지요. 그 생각을 하면서 이곳은 상춘 풍경이 아름다웠지만 다시 와서 도시거리를 거닐거나 관광명소를 들르면서 가을이 익어가는 날의 서정도 혼자 간직하기엔 아까워 자연이 빚어낸 풍경에 여정(旅情)을 더해 또 한 번 서신을 띄운답니다.

여기 시내를 둘러보면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임을 단번에 알 수가 있지요. 서울 면적보다 14배나 크고 인구가 1050만명이나 되는 이곳은 관광도시다운 면모뿐만 아니라 신도시에 들어선 건물들이 쑤저우의 발전상을 잘 말해주고 있지요. 우리 형제자매들은 쑤저우에 4일간 머물면서 주어정웬(拙政园), 스즈링(狮子林), 후치우꿍웬(虎丘公园), 류웬(留园) 등 이름난 명승지를 천천히 둘러보았답니다. 이번 여행은 열두명이나 되는 인원으로 부득이 21인승 버스를 빌렸는데 하루 임차비가 500위안(한화 8만 7500원)이니 저렴한 가격에 편하게 이용해 좋았지요.

주어정웬은 쑤저우의 많은 관광지 가운데 으뜸이랍니다. 중국 검색 포털사이트인 바이두(百度, www.baidu.com)에 들어가서 ‘suzhou’라 치면 주요 볼거리들이 나오는데, 가장 앞서 소개되는 만큼 관광 천당에서도 최고 인기 있는 장소이지요. 주어정웬은 같은 도시 내에 자리한 류웬과 베이징의 이허웬(颐和园), 청드의 비수산장(避暑山庄)과 함께 중국 4대명원으로 꼽히면서 ‘천하원림의 어머니(天下园林之母)’로 통하고 있지요. 이곳 풍경을 글로써 아무리 표현해도 모자랄 판이니 언제가 박 선생이 중국여행을 할 요량이라면 쑤저우에 들르는 게 정답이겠지요.

류웬, 루이광타(瑞光塔)를 관람한 다음날에는 교외에 있는 저우꽝(周庄)에 갔답니다. 쑤저우는 물의 도시라서 수향(水乡)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저우꽝과 퉁리(同里)가 유명하지요. 중국제일수향이라고 하는 이곳은 역시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지요. 원주민이 노를 젓는 나룻배를 타보고 풍경 구경을 하면서 현지음식도 맛보았지요. 점심식사 후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우리 형제자매들은 사전에 계획했던 가족 윷놀이대회를 했는데, 지나가던 중국관광객들이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신기한 듯 우리가 노는 모습을 눈여겨보더라고요.

朴 선생! 쑤저우에 머무는 마지막 날엔 주어정웬과 스즈링, 후치우꿍웬에 갔답니다. 특히 주어정웬에는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은지 발 디딜 틈이 없었지요. 천하원림 속을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는 내내 멋진 풍경들이 연출됐지요. 고색창연한 고건물과 정자, 갖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 때로 가을바람이 불라치면 파르르 떠는 호수의 물결과 그 수면위로 비치는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들, 그러기에 이곳 군데군데에서 풍광을 캔버스에 담는 화가들이 유달리 많았답니다.

이밖에도 쑤저우는 역사적 볼거리가 풍성한 여행지이지요. 여기가 춘추시대 월나라의 수도였고, 오나라와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으니 갖가지 전해져 내려오는 사연들이 아주 많지요. 후치우꿍웬 중앙에 있는 후치우타(虎丘塔) 아래 오왕 합려가 묻혀있다고 하지요. 또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와의 관계에서 생긴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나, 명재상 범려와 천하미인 서씨의 애련한 사랑이야기는 정사나 야사를 통해 수많은 세월을 두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요. 이번에는 들르진 않았지만 영암산 고소대 옛 건물에는 서씨의 한스런 자취들이 얼룩져 있겠지요.

낯선 곳의 이국 여행은 누구든 두렵게 느껴지지요. 하지만 평소에 그리운 가족 여럿이서 정을 나누며 함께하는 여행은 불편함보다는 즐거움이, 불안감보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며 삶의 활력소를 담뿍 주는 선물이랍니다. 며칠간 동행에 타인 사이 같으면 작은 트러블이라도 생겨나기 마련이지만 피붙이들과의 여행은 그렇지 않아 좋은 게지요. 이 말을 끄트머리에서 강조함은 기회가 된다면 朴 선생도 가족 외국여행을 한번 떠나보시라는 권유에서입니다. 인생에서 세월의 무게가 더욱 느껴지는 늘그막 나이에 여기저기 떨어져 사는 형제자매 가족들이 쑤저우의  하늘 아래서 가을정경을 보며 혈육의 정을 다지는 이 시간은 정말이지 행복한 순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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