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좌절은 있기 마련이다. 청춘기에 그것도 경기 기록이 중요시되는 운동선수에게 있어 그 좌절을 이겨내고 재기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 좌절이 선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일 때는 개과천선해서 부단히 노력하면 재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정치권력이나 조직 상부층에 엮여 미움을 받는다면 십중팔구는 헤어날 수가 없다.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일들이 다반사인데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최순실 사건과 연관돼 또 하나 사건이 불거져 나왔으니 수영의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에게로 향한 견제구였다.

마침 박 선수가 일본 도쿄 다쓰미 국제수영장에서 열리는 10회 아시아수영대회에서 4관왕을 거머쥐었다는 쾌보가 날아든 날에 또 하나 국민 마음을 일그러지게 하는 사건이 터져 나왔다. 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나 검찰에 구속된 신세가 됐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정부의 문화체육부 차관을 지내면서, 당시 체육계를 쥐락펴락 했던 김종 차관이 박태환 선수에게 압력을 넣고 협박했다는 이야기는 체육계 인사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박 선수가 89년생이니 올해 27세의 나이로 어린 편이다. 그 선수가 수영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복용한 약물이 문제돼 국제수영연맹으로부터 징계 받은 사실이 있다. 대한체육회에서는 그것을 빌미삼아 징계 기간이 끝난 박 선수에게 제31회 리우올림픽 남자수영 대표단에 제외키로 했고, 박 선수는 그 문제를 법정 다툼으로 가져가 서울동부지법으로부터 국가대표 지위를 되찾아왔던 것이다. 그게 정부쪽에서는 눈에 거슬렸던지 딴지를 걸었던 모양이다.

알려진 바로는 지난 5월 말경 ‘체육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며 위세 당당했던 김 전 차관이 그 당시 대한체육회 관계자와 박태환 소속사 관계자와 함께한 자리에서 “(박태환 선수가)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면 기업 스폰서와 연결해주겠지만, 출전을 고집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박 선수가 선수생활을 마치면 단국대 교수를 원할 게 아니야” 하면서 박 선수가 출전을 포기하도록 회유한 내용이 박태환 측이 작성한 녹취록에서 담겨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박 선수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며 압박했는데, 박태환 선수는 끝내 체육계 황태자의 말을 거역하고 리우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선수가 운동 이외의 사안으로 많이 시달렸고, 법정 소송이나 출전을 위해 소비한 헛된 시간의 소비로 인해서인지 리우올림픽 출전 종목에서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자신의 주종목인 400m에서도 예선 4위의 성적으로 전체 10위를 해 8명만 나가는 결승 무대에 서지 못했던 것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박 선수에 거는 기대는 컸다. 시간이 다소 흘렀지만 마린보이로 불린 그는 2006년 제15회 도하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따 국민의 환영을 받았고, 그 2년 후에 열린 국제무대, 제29회 베이징올림픽 수영 남자 400m 자유형에서는 금메달을 딴 데 이어 2012년 제30회 런던올림픽에서도 두 개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으니 말이다. 리우올림픽에 출전한 박태환 선수의 경기 장면을 보면서, 끝내 무관(無冠)이 돼 쓸쓸히 귀국한 박태환 선수에 대해 그를 아끼던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간에 일어났던 말 못할 사정이나 힘든 사정을 몰랐던 혹자들은 비난하기도 했지만 박 선수는 귀국 일성으로 4년 후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에 대비해 열심히 연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서는 지난 17일 일본 도쿄 다쓰미 국제수영장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수영대회에서 보란 듯이 재기했다.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는 그 다짐대로 리우올림픽 이후 첫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100·200·400·800m에서 4관왕에 오르며 화려한 부활을 알린 것이다.

특히 박 선수의 자유형 200m 우승 기록 1분45초16은 괄목할 만하다. 이 기록은 올해 세계랭킹 2위 기록에 해당되며, 리우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리스트 채드 르 클로스의 기록(1분45초20)보다도 앞선 기록이 아닌가. 박 선수는 도쿄올림픽 출전을 희망하지만 4년 후 31세 나이로 과연 출전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기는 하다. 하지만 올해 31살인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는 결혼한 상태에서도 리우올림픽에서 수영 5관왕에 올랐으니 마린보이라고 해서 못할 리도 없겠다.

이번 아시아수영대회를 통해 박 선수는 국제 경쟁력을 과시했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여러 가지 사유로 리우올림픽에서는 저조한 기록을 보였던 마린보이가 그간의 악몽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찾았다는 소식이니,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기대를 가져다주게 한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들이 각자 삶을 살면서 실패·좌절을 맛본 뒤에 재기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기록경기 수영에서 젊은 선수가 조직의 횡포와 압력을 이겨내고, 제 컨디션을 찾아 호기록을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린보이는 국민영웅으로 자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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