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1990년 겨울쯤인가 가족과 함께 외국영화를 봤는데, 오래 전의 일이라 영화 제목과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주인공이 홍콩의 번화가 거리를 걸어가면서 손에 든 전화기로 통화하는 모습이었다. 큼지막한 휴대전화를 든 주인공은 주변의 부러운 시선에 으스대면서 길을 걸으며 옆 사람이 들어보라는 듯 큰 소리로 떠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가져보지 못한 귀한 물품을 갖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만했다. 가정집 전화도 귀했던 시절에 바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선 손전화라. 나는 저런 전화기도 다 있을까 신기해했던바 휴대전화 천국이 돼버린 지금 기기와 비교해보면 그 전화기는 영 볼품이 없는데도 말이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 일상에서 전화는 필수적인 생활용품이다. 60~70년만 해도 전화는 부(富)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희소성으로 인해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구쳤던 60년대 자유롭게 판매가 가능한 백색전화 1대 값은 260만원이었다. 당시 서울의 잘 사는 동네 50평짜리 집값 230만원에 견줘보면 백색전화는 당연히 투기대상이 되리만큼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전화기 회선을 증설하는 것이 민생정책의 급선무였다. 1975년 100만대를 돌파해 비로소 안정을 찾았고, 전화보급이 일반화된 80년대에야 투기대상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국내서 휴대용 전화가 보급되면서 ‘셀룰러폰(cellular phone)’으로 부르기도 하다가, 어느덧 모바일 폰으로 변하더니만 이제는 핸드폰으로 호칭되고 있다. ‘손(hand)’과 ‘전화(phone)’가 합성된 이 용어가 정확한 게 아니더라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사용되는 대세이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휴대전화나 손전화로 순화돼야 한다는데 그것보다 휴대폰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필요한 생활도구로 자리 잡았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길거리든, 지하철이든 통화하거나 게임 또는 뉴스를 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라도 휴대폰 미소지자보다는 손에 꺼내들고 작동하는 사용자들이 훨씬 더 많으니 휴대폰의 유용성은 인류가 각종 문명 이기품(利器品)들을 만들어 낸 이후 가장 크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내게는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통화 기기로서보다는 필요한 자료를 찾고 뉴스나 야구중계 청취 등으로 휴대전화를 켜는 게 다반사인데, 폰이 더욱 인간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용기(用器)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영화 ‘터널’을 관람하고서다.

평범한 영업사원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터널이 무너져 갇히게 된다. 외부와 차단된 상황에서 주인공의 필사적인 생존 의지가 전개되는 영화 속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도 어쩌면 발생될 수 있는 재난이다. 가장 현실적인 재난영화로 인정받고 있는 이 영화는 8월 10일 개봉된 이후 한 달이 조금 지난 9월 11일 현재, 누적 관객수 7백만명을 넘었고, 이 영화를 본 국민들이 공감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물론 영화가 가상적이긴 해도 재난상황에 대처하는 재난대응조직의 어설픔이고, 한국사회의 어둠의 한 단면인바, 가뜩이나 우리나라의 안전사고가 국가·사회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현실을 잘 비쳐주고 있다.

안전사고 통계를 보면 2014년 기준으로 2만 9349명이 사망했으니 하루에 80명꼴이다. 19개 OECD 국가 중 안전사고사망률 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이니 ‘안전불감증의 나라’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전될수록 안전사고의 발생 위험은 더 가중될 터인데, 그렇게 본다면 가상적이라 해도 ‘터널’ 영화는 비단 터널뿐 아니라 사회 전역에서 도사리고 있는 각종 시설 등에서 발생될 안전사고에 대한 향후 대응책에 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으니 국가재난 대응기관인 국민안전처가 이 문제를 두고 노심초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우리 시대에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휴대전화의 배터리 수명 문제다. 매일 사용 후 충전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배터리 기능이 향상돼 그 수명이 장시간 연장될 수 없을까 하는 바람이다. 이는 비단 혼자만이 아닌 휴대전화 사용자들의 한결같은 기대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터널 속에 갇힌 주인공 정수의 남아 있는 휴대폰 배터리량은 78%였다. 칠흑 같은 붕괴 현장 속에서 정수는 이 휴대폰으로 사고의 긴박함을 알리고 구조상황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데 만일 휴대전화가 없었다면, 또 배터리가 소진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찔하다.

생활필수품 휴대전화의 유용성은 복합적이다. 처음 상용화될 때만 해도 단순한 통화 기능과 녹음과 사진기 기능이었는데, 이젠 인터넷과 연계돼 만능 기능이 장착됐으니 휴대전화는 누구에게나 매력 만점의 상용기다. 더군다나 국민안전처에서 폭우나 폭염 등 자연재난까지 개개인의 휴대전화로 알려주고 있으니 재난 대응면에서도 유용성이 크다. 그렇더라도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말처럼 편리성 못지않게 위험성도 따르기 마련인즉, 휴대전화 중독 등 역작용과 함께 갤럭시노트7의 불량 배터리 폭발이 그 좋은 사례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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