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朴 선생! 여행하기 딱 좋은 계절입니다. 단풍잎이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가을에는 어느 곳이든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마련이지요. 여행지를 다니다보면 같은 풍경이라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감흥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이곳 풍경들은 봄·여름과는 달리 한껏 계절의 성숙함을 담고 있는 것 같아 새롭답니다. 본디 여행이라는 것이 낯설음과의 만남이라서 여행객 누구에게든 두려움이 없진 않겠지요. 그렇지만 미지의 세계를 넘나드는 재미도 따르는 것이어서 마음 한편으로는 설렘이 가득 우려나기도 하지요.

피붙이 형제자매들과의 중국 자유여행. 오랫동안 구상하고 준비했던 터라 이번 여행은 유달리 기대감이 크지요. 전에는 집사람과 둘이 다녔던 외국 자유여행이라 생활의 일상처럼 느껴진 여정(旅程)에 마음 편했지만 그와 다르게 지금은 볼거리여행과 무사 귀국해야 하는 책임감으로 신중함이 따르지요. 그것은 열두명이나 되는 형제자매 가족들이 안내자 없이 떠나온 자유여행이라는 부담에서랍니다. 지난 초여름부터 준비한 가족끼리 여행 일정이건만 느릿느릿 시간이 어느덧 닥쳐 우리 가족들은 지난 화요일 상하이를 거쳐 첫 여행지 우시에 도착했지요.

우시(无锡)는 중국 장쑤성 남부에 자리 잡은 인구 651만여명(2015년)의 큰 도시지요. 그 면적이 서울(605㎢)보다 7.5배나 큰 이곳은 상공업이 잘 발달돼 중국 내에서 ‘작은 상하이’로 불리고 있답니다. ‘우시’란 이름이 만들어진 내력이 재미있는데, 예전 이곳은 주석이 많이 생산된 곳이었지만 그 광물질이 없어지고 난 뒤 ‘없을 무(無), 주석 석(錫)’자를 쓴 현재 지명이 생겨났답니다. 그리고 이곳 관광지로는 단연 타이후(太湖)와 메이웬(梅园), 리웬(蠡园)을 꼽는답니다.

우리 일행은 먼저 영산승경을 다녀왔지요. 이년 전에 집사람과 함께 다녀갔지만 이번 여행에서 형제들에게 꼭 보여주기 위해 다시 찾았는데, 샤오링산(小灵山) 중턱 자리 잡은 88m 높이의 세계 최대 불상이 볼거리지요. 이곳은 중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는 우시의 신흥 명소랍니다. 한국 여행객들이 우시를 관광하게 될 경우 영산대불(灵山大佛)은 필수 코스인 바, 비단 불교도가 아니라하더라도 관광지로서 영산대불은 중국이 자랑하는 거대 작품으로 널리 소문나 있는 곳이라지요.

두 번째 날은 타이후(太湖)를 구경했지요. 이 호수는 중국 5대 호수 가운데 하나로 세 번째 큰 담수호랍니다. 호수 면적이 워낙 넓어(2200㎢) 마치 바다처럼 보이지요. 춘천 소양호(70㎢)보다 70여배 크다고 하니 쉽게 비교가 되지요. 여기 북쪽 끝에는 마치 자라머리 모양처럼 생겨 이름 붙어진 위안토우쭈(鼋头渚)공원이 유명하답니다. 한없이 넓은 호숫가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웃고 다정스레 이야기 나누는 형제자매들의 모습을 볼 때에 나는 행복한 마음이 절로 들었지요.

타이후 주변에 있는 삼국성에도 다녀왔답니다. 이곳은 1993년 중국 CCTV에서 방영된 ‘삼국 연의’ 드라마 촬영지인데 그 후에도 인기가 높아 관광객들에게 개방을 한 곳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끈 드라마 방영이 끝나면 촬영장소가 한동안 뜨는데, 삼국성처럼 20년 이상 꾸준하게 관리하면서 관광객들이 찾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관광명소는 드물지요. 그만큼 우시의 삼국성과 그 옆에 만들어놓은 수호성은 사후관리가 잘돼 있고, 방송국과 시정부에서 적극 홍보해 타이후 관광객들에게 안성맞춤의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우리가 본받을만하지요.

타이후 자락에 있는 리웬(蠡园)은 사랑이야기가 질펀히 묻어있는 곳이랍니다. 우리가 곧잘 쓰는 사자성어에서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이 있지요. 직역하면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뜻인데, 정확한 의미는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이해 때문에 뭉치는 경우를 비유한 말’로 쓰이지요. 한때 오왕 부차의 여자가 됐던 월나라 출신 천하미인 서시(西施)가 오나라가 망한 후에야 평생의 연인 범려와 함께 리웬에서 은거했다는 이야기는 세월이 흘렀어도 전해지고 있네요.

메이웬(梅园)도 우시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명소입니다. 사실 우시의 가장 큰 공원이기도 한 메이웬은 봄철 구경이 딱 맞는 곳이지요. 그것은 이곳에 주로 갖가지 종류의 매화가 심어져 있어 꽃이 피는 봄철 풍경이 절경을 이루는 까닭이겠지요. 우리 일행은 메이웬 구경보다는 아무래도 타이후를 끼고 있는 리후즈꽝(蠡湖之光)의 풍경이 더 멋있을 것 같아 그리로 발길을 옮겨 호수가 길을 산책했지요. 가을이 익어가는 날에 평생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산보하는 것도 기쁜 일이지요. 호수공원에 군데군데 낙엽이 물드는 수목들은 고운 자태를 새길 때면 또 다른 맛의 여정(旅情)이 넘쳐나지요.

朴 선생! 이제 우시여행을 끝내면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곳 여정은 타이후로 상징될 것 같네요. 여기 머무는 내내 어딜 가도 타이후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지요. 아쉬움 속에 우시여행을 마치고 쑤저우로 향하려는 마음 한가운데는 또 설렘이 물결치듯 일렁입니다. 그 까닭은 물론 누님의 칠순과 동생 환갑을 축하하기 위한 이번 중국여행이 깊게 익어가는 계절만큼이나 형제애가 더욱 두터워지고, 먼 훗날 두고두고 좋은 추억꺼리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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