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며칠 전 지인을 만나 이야기하던 중 그가 대뜸 “이제는 돈을 좀 벌어봐야겠다”고 말했다. 일정한 직업 없이 그가 가진 재산으로 평소에 문화사업과 사회봉사활동을 많이 해온 내력을 아는지라 불쑥 뱉는 그 말이 내게는 이상하게 들렸다. 평소에 그는 경제력보다는 사회로부터 얼마나 인정받는가 하는 것은 부(富)의 소유, 경제력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해왔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바꿔 돈의 중요함과 경제의 위력을 내세우고 있으니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경제력에 의해 사람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말을 듣고 내가 긍정도 부정도 못할 지경에서 오래전 서울지하철에서 본 어떤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이로 봐서 마흔 살 정도로 보이는 그 승객은 차내 손잡이를 잡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요즘 세상은 돈이 최고다. 배움이나 지식도 다 헛것이다”는 말을 반복하는데, 자신이 서울대를 나왔지만 돈 앞에는 다 소용이 없다는 투의 말이었고 많은 승객들은 그를 그저 광인(狂人) 취급하면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나는 장년 시절이었고 공직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보내던 바쁜 때라서 지하철 내에서 그 광경을 보고선 일류대학을 나와 신분상승을 위해 오래도록 고시공부에 매달렸지만 실패한 낙오자의 하소연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또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돈이 인생의 최고’라 떠들던 지하철의 그 사람이나 ‘이제 돈을 벌어봐야겠다’는 지인의 말을 연상하면서 돈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 운영의 기본이지 그것 자체가 인간 삶의 목적이 될까 의구심을 가져본다. 그런 한편으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인 경제력의 위력을 지레짐작해본다.

사회가 분화되고 다기능화 된 요즘은 어느 누구도 일확천금(一攫千金)을 얻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개천에 용이 난다’는 말이 통했던 몇십 년 전만 해도 가난한 집안 출신도 공부를 잘해 고시합격 등으로 사회적 신분 상승이 가능했고 운 때만 잘 맞으면 벼락출세가 가능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러 받지 못한 소위 ‘흙수저’ 젊은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와 같은 성공 신화를 거둘 수가 없다고 불평한다. 그처럼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 돼버렸고, 돈이 위력을 발휘하는 경제력 우선의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가 돼버린 현실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부자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시중의 인사말조차 경제 우선으로 변해버렸다. 누구를 만나거나 어디에서든 인사가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가 아니라 ‘부자 되세요’ 말이 대세를 이룬다.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들의 대개가 부자가 아니어서 스스로에게 돈 많이 벌기를 다짐하는 투다. 누구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잠재적인 욕망이 의식에 남아 있는 한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인데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비단 나 혼자 생각뿐만이 아니리라.

‘돈만 있으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이 가장 살기 좋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내가 오래전에 그 말을 듣고서 ‘정말 그럴까’ 의심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는 돈이 잘 통한다는 것인지, 만사가 돈으로 해결된다는 말인지 아리송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개인적 경제력의 유무가 신분을 구분하고 위상을 가려주는 기준이 됐다. 부동산 졸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경제적 풍요함이 개인적 삶의 가치에서 최고 잣대가 되는 물질만능시대가 돼버렸다.

국민 중 1%인 50만명이 전국 토지의 55%를 소유하는 현실에서 부(富)가 2대, 3대로 대물림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 요즘 젊은이들이 토로하는 ‘금수저, 흙수저’로 일컫는 수저계급론에 일리가 있다. 그들의 자조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빈부의 격차가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 현실에서 근원적 결정론도 가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오죽 했으면 ‘개인의 노력보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에 따라 인간의 계급이 나뉜다’는 말을 젊은 그들이 신봉했을까.

정부나 정치지도자들은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권력자들의 비정상 권력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에서 정말 열심히 일해도 입에 풀질하기 바쁜 서민들에게 그 말은 말장난에 불과해서,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을 이미 알아버린 성난 젊은 세대들의 말마따나 부모를 잘 만난 금수저들은 오랫동안 위세를 떨칠 것이고, 그렇지 못한 흙수저들은 자신의 위치를 원망하면서 아예 청운의 꿈조차 꾸지 못하게 됐으니 아무래도 시절이 하수상하다는 변명을 늘어놓아야 할 판이다.

하여 나는 글머리에 언급한 지인의 ‘이젠 돈을 벌어야지’라는 말을 듣고서 갑자기 오래전의 지하철에서 상심했던 행인을 생각해냈고, 물질만능인 세태에서 부모의 재산 다소에 의한 신분결정론에 분노하는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마음까지 헤아리며 한 마디 거들어본다. 가난이 죄가 아니지만 불편한 건 틀림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분명 알아야 할 것이 있으니 흙수저의 짐을 지고 있는 젊은이들이여!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무렴 인생을 잘 사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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