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추석연휴가 끝나는 주말 아침에 라디오를 켜고 무슨 소식들이 있을까 하고 들어본다. 뉴스에서는 귀경길 차량지체나 지진 이야기가 나오고 벌써 단풍철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번 달이 평년보다 기온이 다소 높아 올해는 단풍드는 시기가 예년보다 1주일 정도 늦춰질 전망이라고 한다. 10월 중순경쯤 단풍철이 닥친다고 하니 한 달 후쯤 우리 주변에서는 설악산, 속리산 등 전국의 단풍이 곱게 물드는 명소를 찾아 떠나는 가을 여행에 또 북적될 그때를 예상해본다.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에서 철마다 곳곳에서 특별한 문화관광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자연 관광자원이 풍부한 까닭도 있겠지만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행사를 하다 보니 봄, 여름, 가을 가리지 않고 축제 행사가 남발된다. 딱히 테마가 없는 대도시에서 여름철에 ‘물총축제’ 행사조차 이루어지고 있으니 가히 축제 풍년이라 할 만하다. 지금은 축제행사의 춘추전국시대에 살고 있지만 옛적 같았으면 봄이면 상춘(常春), 겨울철이면 온천욕 등 몇 안 되는 나들이테마가 소문나서 많은 국민들은 ‘어느 지역은 무슨 명소다’ 하고 쉽게 떠올리곤 했다.

봄이면 꽃 피는 명소를 찾아 상춘을 즐기고,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해수욕을 떠나고, 가을이면 간단히 단풍놀이 다녀와도 즐거웠다. 또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유명온천을 찾아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푸는 정도면 만족했던 검소한 계절여행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여행패턴도 크게 변해 연휴가 있으면 가까운 해외로 나가 올 추석처럼 연휴가 계속될수록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으니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추석 연휴기간 중 해외를 다녀온 여행자가 140만명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여행은 각자의 견문을 넓히는 자기만족의 실현을 위한 행동이다. 그동안 바쁜 일상으로 인해 쌓여진 피로를 풀고 여가를 즐기기 위한 여행은 결국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나이가 지긋한 혹자들이야 여행은 아까운 돈 쓰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연휴가 이어지고 시간이 난다면 시시때때로, 경제사정이 안 좋더라도 다소 무리를 해 해외여행을 다녀오곤 하는데 견문 넓히기와 여가 즐기는 이것도 무형의 투자라 생각한다.

추석도 지났으니 얼마 있지 않아 가을향기가 우리 주변에 가득할 것이다. 여행하기 딱 좋은 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데, 사람에 따라 여행하는 패턴도 많이 다르다. 전혀 계획하지 않고 있다가 불쑥 여행을 생각하고선 혼자 훌쩍 떠나는 것도 재미있을 터, 그리움이 짙게 다가왔던 젊은 날에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거나 그려봤던 여행의 환상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홀로여행이 갖는 의미도 크겠지만 가족, 친구 등 여럿이 떠나는 단체 여행도 즐거움이 매우 크다.

여행패턴이 크게 변하고 있다. 지난 1983년에 50세 이상 국민에게 관광여권 발급이 허용되더니 1989년 1월부터 국민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조치 이후 해외여행이 증가 추세다. 그 전만 해도 특수층 또는 부유한 자들의 전유물이었던 해외여행이 점차 일반화되면서 이제는 많은 국민들이 해외여행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시골의 어지간한 노인들도 한 번 이상은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만 한때는 곗돈을 부어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모임이 유행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음식 등 문화가 다른 낯선 외국에서 느껴지는 사람의 정은 유별나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할 경우 그 정은 더욱 깊어지게 마련인데 나는 그런 경험의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서 지인들에게 여건이 되면 형제자매들과 해외여행을 해보라 권유한다. 각자 살기에 바빠 자주 만나지도 못할 터 그 미안함들은 해외여행을 한번 가져보면 더 큰 가족애, 형제들의 사랑으로 확인될 수 있으니 저마다에게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풍철이 닥치는 10월 중순께 나는 형제자매 부부 동행으로 10일간 중국 자유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울산에 사는 누님의 칠순과 올해 정년퇴직한 동생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한 가족 여행인데,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아내가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숙소를 정하는 등 준비를 맡았다. 이제 비자 신청해 발급받고 출발하는 일만 남았지만 전국에 흩어져 사는 형제자매 열두명이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별도 안내자 없이 준비하자니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지만 늘 함께하고 싶은 형제자매 부부가 동행하는 여행길이니 생각할수록 즐거움이 되고 기대감에 부푼다.

‘여행은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으로 전화(轉化)하는 것’이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이렇게 표현했지만,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오면 족한 게 여행이다. 저마다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줄 여행! 국내든 해외든 어디든 좋을 것이니,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한번 떠나보시라. 분명 여행은 시공(時空)에 잔뜩 숨겨진 보물을 찾는 계기로서 그대에게 슬며시 다가오리라.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