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2016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두산 베어스가 NC 다이노스를 누르고 승리했다. 0대 0 점수가 계속되던 연장 11회말 공격에서 오재일 선수의 끝내기 희생타로 1점차로 이긴 진땀승이었다. 선발투수들의 호투 속에서 결판을 내지 못한 채 연장전에 들어갔던 경기가 두산 베어스의 11회말 무사 1루 찬스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김재호 선수가 친 평범한 뜬공을 수비팀 중견수가 놓친 것이 화근이 돼 1사 2, 3루가 됐고, NC 다이노스의 만루책이 나왔지만 오재일 선수의 희생 플라이가 결승타가 돼 두산 베어스는 신승(辛勝)을 거두게 된 것이다.

희생플라이로 승부가 갈린 것은 한국시리즈 사상 처음이라고 하니 그만큼 특이한 상황이었다. NC 중견수 김성욱 선수가 결정적인 실책을 한 상황은 정말 미묘했다. 주말 오후 2시에 시작된 경기가 연장전 11회말에 접어들었을 때 시간이 오후 5시 40분경으로 이때쯤이 통상적으로 외야수들이 수비에 가장 어려움을 느끼고 긴장하는 시간이다. 마침 잠실구장에서는 야간경기에 대비해 조명 라이트를 조금씩 켜고 있었는데, 중견수 바로 앞으로 날아온 공이 조명탑 불빛과 겹쳤고 뿌연 저녁 하늘과 공이 겹치면서 김성욱 선수는 낙구지점을 놓치고 말았다.

평소 경기에서 발이 빠르고 폭넓은 호수비로 감독의 신임과 팬들의 인기를 차지했던 김성욱 선수가 평범한 뜬공을 잡지 못할 실력은 아니었지만 바로 앞으로 떨어진 공이 일몰시간의 상황과 겹쳐 보이지 않았으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타석에서 평범한 외야 뜬공을 날린 김재호 선수가 1루로 달리면서 잡혔다고 고개를 푹 숙였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1차전 패인의 멍에를 짊어진 김성욱 선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발생되지 않아야 할 상황이 벌어진 셈인데, 아마 그 일로 어린 선수는 밤잠조차 제대로 못 잤을 것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해도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두고두고 그 순간을 원망하고 자신에게 질책했을 것이 분명하다.

실책이나 과오에 대한 후회와 질책은 비단 운동경기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인생사나 사회에서 발생되는 모든 일이 그렇고 세상만사에서 잘못된 순간을 다시 돌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닌즉 그래서 매사에 신중히 처신해야 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누구라도 주변여건으로 인해 실책을 범할 우려가 있는 것이니 앞서 이야기했던 한국시리즈 1차전 경기에서처럼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시간 때라 야간경기에 준비해 조명들을 켰는데, 그 불빛 속으로 타구가 들어가 외야수의 실책이 연출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당시 김 선수는 야구글로브로 조명 불빛을 가리고 포구하려 애썼지만 결국 작은 실수 하나가 NC 팀에게 패배를 안긴 것이다.

각설하고, 지금 우리 사회는 ‘최순실 게이트’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됐다고 한다. 본디 이 말은 온몸이 성한 데 없는 상처투성이라는 뜻인 바, 아주 형편없이 엉망임을 형용해 이르는 말이다. 혹자는 ‘최고로 순진하고 진실하다’는 성명과는 다르게 국정농단 의혹의 장본인으로 우리 사회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고 분개한다. 사건이 터지고 언론에 보도되니 앞 다퉈 최순실 국정농단 사례들이 태풍처럼 밀려오고 있으니 국민 된 입장에서 최고지도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과 다르게 싸늘히 식어만 가고 있으니 ‘대한민국’호가 과연 어디로 갈지가 걱정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와의 40년 지인 관계에서 비롯된 일들이 국정농단의 불씨가 되고 결과론적으로 권력 옹호를 빚어낸 게이트로 이어졌다고는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보도에서 드러난 지금까지의 일들에서, 대통령 연설문의 빨강 펜이나 비선실세의 광폭(廣幅) 행보 사례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농락당한 기분이 역력하다. 민주주의 시대에서 봉건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많은 국민들은 비선실세에 의해 국정이 농락당하고, 사회질서조차 엉망진창이 됐다고 회의할 지경이다. 자고 일어나면 더 번지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를 푸는 열쇠는 연관된 당사자들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있었던 그대로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박 대통령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통령의 대국민사과에도 불구하고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들이 우리 사회를 드리우고 있다. 상처받은 국민들은 전대미문의 사건의 전모가 그대로 밝혀져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국가·사회가 하루빨리 안정되기를 원하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분노는 매우 커서 어물쩍 넘어갈 사안은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해서 가려질 하늘이 어디에 있겠는가. 많은 국민들은 절대 권력의 비선실세 보호가 아니기를 바라지만 각종 언론보도에서 알려진 바대로 사정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최고지도자의 국정수행 능력이 바닥권을 헤매는 지금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 사회에서 혼돈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영원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직당국과 정치권에서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신념으로서 그대로를 파헤쳐 병폐가 있다면 치유해서 ‘대한민국’호를 재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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